너를 믿느니 차라리 로또 1등을 믿지
인간관계에 대한 가장 냉소적이면서도 정확한 격언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경제학 교과서를 펼치겠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 건조한 문장을 연애나 우정에 대입해 보자. 내가 너에게 밥을 사는 건 네가 나중에 술을 살 거라는 기대 때문이고, 내가 너의 비밀을 지켜주는 건 내 비밀도 안전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즉, 모든 관계는 '암묵적 거래'다.
그런데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는 이 거래의 판돈을 '목숨'으로 올려버린다. 살인 사건으로 얽힌 두 여자, 안윤수(전도연 분)와 모은(김고은 분). 이 둘의 관계를 두고 세상은 아름다운 '워맨스(Womance)'라 포장하고 싶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들은 시한폭탄을 서로의 허리에 묶고 달리는 '공범'들이다.
여기서 경제학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이론, [죄수의 딜레마]가 등판할 차례다. 상황은 이렇다. 경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다. 두 용의자가 모두 입을 다물면 증거 불충분으로 가벼운 형벌만 받는다(최선). 하지만 형사는 딜을 건넨다. "먼저 자백하고 상대를 불어버리면 너는 바로 석방, 상대는 무기징역."
존 내쉬(John Nash) 박사가 무덤에서 일어나 조언한다면 답은 명확하다. "배신해라." 상대가 의리를 지킬 때 배신하면 나는 즉시 자유(최고의 이득)를 얻고, 상대가 배신할 때 나만 의리를 지키면 나만 독박(최악의 결과)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배신'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내쉬 균형'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두 여자는 이 완벽한 수학적 해답을 보란 듯이 비웃는다. 서로의 약점을 쥐고 흔들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을 닫거나 서로를 구원한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비합리적인 바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이성적인 선택에서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왜?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세상은 지옥보다 끔찍하다는 것을.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 서사가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언니가 지켜줄게" 식의 모성애적 연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윤수와 모은의 관계는 차라리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에 가깝다. "내가 무너지면 너도 죽어." 이 살벌한 전제 위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이것을 '생존을 위한 강박적 유대'라고 부르고 싶다.
모은(김고은)이라는 캐릭터는 이 불안한 게임의 '조커'다. 그녀는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안윤수(전도연) 입장에서 모은을 믿는다는 건, 전 재산을 코인 잡주에 몰빵하고 기도하는 심정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윤수는 베팅한다. 왜냐하면 법(시스템)이 그녀를 버렸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민(혹은 멱살을 잡은) 존재가 바로 그 '미친 여자'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워맨스'는 달달한 로맨스가 아니라, 벼랑 끝에서 추는 '공멸의 왈츠'가 된다. 둘은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다. 놓치면 떨어져 죽으니까. 겉보기엔 포옹이지만, 실상은 서로의 뼈가 으스러지도록 붙들고 있는 절박함이다.
우리는 왜 타인을 믿을까? 사회생물학적으로 보면 신뢰는 '비용 절감' 행위다. 매번 상대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냥 믿어버리는 편이(설령 배신당할 위험이 있더라도) 생존에 유리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백의 대가>는 묻는다. "당신의 목숨이 걸려도 그 효율성을 택할 텐가?" 두 여자는 끊임없이 서로를 시험한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도 덩달아 의심병 환자가 된다. "저 눈빛 봐, 배신할 거야." "아니야, 이번엔 진짜야." 드라마는 신뢰가 얼마나 취약하고 허상에 가까운지 보여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허상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꼬집는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제발 경찰한테 가서 다 불어버리고 광명 찾아!" 그것이 내쉬 균형이고, 합리성이고, 이 지옥을 탈출하는 유일한 비상구니까.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그 비상구를 외면한다. 그리고 손을 잡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쩌면 인간됨의 조건이란, '합리적인 배신' 대신 '멍청한 신뢰'를 선택하는 그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대가(Price)는 혹독하겠지만. 이 지독한 관계성, 사랑일까 전략일까? 아마도 '혼자 죽기는 싫은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 쯤으로 해두자. 지옥불도 둘이 쬐면 좀 따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