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대가> 죄수의 딜레마와 ‘워맨스’의 함정

너를 믿느니 차라리 로또 1등을 믿지

by 월하문

1. 배신은 국룰, 신뢰는 호구?


인간관계에 대한 가장 냉소적이면서도 정확한 격언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경제학 교과서를 펼치겠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 건조한 문장을 연애나 우정에 대입해 보자. 내가 너에게 밥을 사는 건 네가 나중에 술을 살 거라는 기대 때문이고, 내가 너의 비밀을 지켜주는 건 내 비밀도 안전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즉, 모든 관계는 '암묵적 거래'다.

그런데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는 이 거래의 판돈을 '목숨'으로 올려버린다. 살인 사건으로 얽힌 두 여자, 안윤수(전도연 분)와 모은(김고은 분). 이 둘의 관계를 두고 세상은 아름다운 '워맨스(Womance)'라 포장하고 싶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들은 시한폭탄을 서로의 허리에 묶고 달리는 '공범'들이다.


2.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이 붕괴되는 순간


여기서 경제학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이론, [죄수의 딜레마]가 등판할 차례다. 상황은 이렇다. 경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다. 두 용의자가 모두 입을 다물면 증거 불충분으로 가벼운 형벌만 받는다(최선). 하지만 형사는 딜을 건넨다. "먼저 자백하고 상대를 불어버리면 너는 바로 석방, 상대는 무기징역."

존 내쉬(John Nash) 박사가 무덤에서 일어나 조언한다면 답은 명확하다. "배신해라." 상대가 의리를 지킬 때 배신하면 나는 즉시 자유(최고의 이득)를 얻고, 상대가 배신할 때 나만 의리를 지키면 나만 독박(최악의 결과)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배신'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내쉬 균형'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두 여자는 이 완벽한 수학적 해답을 보란 듯이 비웃는다. 서로의 약점을 쥐고 흔들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을 닫거나 서로를 구원한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비합리적인 바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이성적인 선택에서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왜?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세상은 지옥보다 끔찍하다는 것을.


3. 워맨스? 아니, 공멸의 왈츠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 서사가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언니가 지켜줄게" 식의 모성애적 연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윤수와 모은의 관계는 차라리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에 가깝다. "내가 무너지면 너도 죽어." 이 살벌한 전제 위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이것을 '생존을 위한 강박적 유대'라고 부르고 싶다.

모은(김고은)이라는 캐릭터는 이 불안한 게임의 '조커'다. 그녀는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안윤수(전도연) 입장에서 모은을 믿는다는 건, 전 재산을 코인 잡주에 몰빵하고 기도하는 심정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윤수는 베팅한다. 왜냐하면 법(시스템)이 그녀를 버렸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민(혹은 멱살을 잡은) 존재가 바로 그 '미친 여자'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워맨스'는 달달한 로맨스가 아니라, 벼랑 끝에서 추는 '공멸의 왈츠'가 된다. 둘은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다. 놓치면 떨어져 죽으니까. 겉보기엔 포옹이지만, 실상은 서로의 뼈가 으스러지도록 붙들고 있는 절박함이다.


4. 신뢰라는 이름의 도박


우리는 왜 타인을 믿을까? 사회생물학적으로 보면 신뢰는 '비용 절감' 행위다. 매번 상대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냥 믿어버리는 편이(설령 배신당할 위험이 있더라도) 생존에 유리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백의 대가>는 묻는다. "당신의 목숨이 걸려도 그 효율성을 택할 텐가?" 두 여자는 끊임없이 서로를 시험한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도 덩달아 의심병 환자가 된다. "저 눈빛 봐, 배신할 거야." "아니야, 이번엔 진짜야." 드라마는 신뢰가 얼마나 취약하고 허상에 가까운지 보여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허상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꼬집는다.


5. 에필로그: 지옥에서 온 파트너십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제발 경찰한테 가서 다 불어버리고 광명 찾아!" 그것이 내쉬 균형이고, 합리성이고, 이 지옥을 탈출하는 유일한 비상구니까.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그 비상구를 외면한다. 그리고 손을 잡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쩌면 인간됨의 조건이란, '합리적인 배신' 대신 '멍청한 신뢰'를 선택하는 그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대가(Price)는 혹독하겠지만. 이 지독한 관계성, 사랑일까 전략일까? 아마도 '혼자 죽기는 싫은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 쯤으로 해두자. 지옥불도 둘이 쬐면 좀 따뜻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진실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는다 : 자백의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