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의 영생을 위하여 : 칸과 칸 사이, 잉여인간 처리

설국열차

by 월하문

'앞칸'의 스테이크는 왜 항상 '뒷칸'의 분노를 먹고 자라는가


1. 프롤로그: 지구는 영하 40도, 기차 안은 열혈 100도


기상 이변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오직 '윌포드'가 만든 노아의 방주 같은 기차만이 눈 덮인 지구를 달립니다. 그런데 이 방주, 승선권의 등급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앞칸은 캐비어와 샴페인이 넘쳐나는 유토피아인데, 꼬리칸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 하나에 목숨을 겁니다.

회계적으로 보자면, 이 기차는 극단적인 '희소 자원의 배분' 최적화 모델입니다. 한정된 연료와 식량이라는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은 꼬리칸 사람들을 '감가상각'조차 아까운 소모품으로 취급하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 기차가 계속 달릴 수 있는 건, 꼬리칸이라는 '저비용 노동력'이 하부 구조를 지탱하며 가끔씩 시스템의 과부하를 막는 '부품'으로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2. 윌포드의 철학: 질서(Order)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기차의 절대권력자 윌포드는 말합니다. "모든 것은 제 자리가 있다(Everything in its place)." 신발은 머리에 쓸 수 없다는 논리로 계급의 고착화를 정당화하죠.

이건 대학 시절 지겹게 읽었던 플라톤의 '국가론'을 아주 기분 나쁘게 비튼 버전입니다. 통치자, 전사, 생산자가 각자의 위치를 지킬 때 정의가 실현된다는 논리죠. 하지만 윌포드의 '정의'는 기차라는 시스템의 '계속기업가정치(Going Concern)'를 위해 개인의 존엄을 완전히 삭제해버리는 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에게 꼬리칸의 반란은 그저 인구수 조절을 위한 '회계적 조정(Adjustment)'에 불과하니까요.


3. 환경과 엔트로피: 닫힌계의 비극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닫힌계 내에서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합니다. 설국열차는 완벽한 닫힌계입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쓰레기는 쌓여갑니다. 이 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적이죠.

앞칸 사람들이 누리는 화려한 식물원과 수족관은 사실 지구 생태계의 복원이 아니라, 죽어가는 지구를 박제해 놓은 '전시용 자산'입니다. 그들은 환경을 사랑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환경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안락함을 연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AI가 모든 걸 해결해 줄 미래를 꿈꾸시나요? 글쎄요, 그 AI가 "시스템 최적화를 위해 당신을 단백질 블록으로 만드세요"라고 계산을 끝낼지도 모릅니다.


4. 심리적 지옥: 성자가 된 악당과 악당이 된 성자


주인공 커티스는 앞칸을 향해 진격하며 진실을 마주합니다. 자신이 존경했던 꼬리칸의 정신적 지주 '길리엄'이 사실은 윌포드와 한패였다는 사실을요.

심리학적으로 이건 '시스템에 의한 자아의 포섭'입니다. 저항조차 시스템이 설계한 시나리오의 일부였다는 허무함. 우리가 유튜브나 OTT 같은 '문화 소비'에 탐닉하며 세상에 반항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 사실은 플랫폼 자본주의의 매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우리는 거대한 알고리즘의 꼬리칸에서, 앞칸의 화려한 영상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심리적 노예'는 아닐까요?


5. 에필로그: 기차 밖으로 나갈 용기


영화의 끝에서 남궁민수(송강호)는 앞칸으로 가는 문이 아니라, 기차 밖으로 나가는 문을 폭파합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저게 벽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문이었다"는 말과 함께요.

이것은 기존의 대차대조표를 완전히 찢어버리는 '청산(Liquidation)'의 행위입니다. 시스템 내에서의 개혁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것. 자본도 없고 코딩도 못 하는 우리가 이 궤도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가끔은 우리를 가둔 그 익숙한 벽을 '문'으로 인식하고 박차고 나가는 무모함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한 줄 정산]


결론: 시스템은 당신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 오직 엔진이 멈추지 않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장단점: 앞칸에 가면 스테이크를 먹겠지만, 엔진의 부품으로 들어가는 어린아이들의 눈빛을 외면해야 한다.

한계: 기차를 부수고 나간 세상은 춥다. 하지만 적어도 바퀴벌레 맛 단백질 블록을 '영양식'이라 속이며 먹지는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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