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아내와 딸 하은이와 함께 외식에 나섰다. 월급날 한번, 아쉬울 때 한 번씩 가는 고깃집인데, 사장님 내외와 따님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맛도 맛이지만 친절함이 좋아 이제는 가면 아주 친근하게 맞아주신다. 주문의 루틴도 늘 같다. 고기 3인분, 된찌 하나, 공깃밥 하나, 구이용 치즈 하나. 나는 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을 제일 좋아하고, 아내는 상추 겉절이와 기름장을 좋아한다. 하은이는 구이용 치즈를 독식한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달라 싸울 일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 보다 더 즐겁다. 배는 부르고 바람은 선선해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아이와 함께 달리기 시합도 하고, 깔깔깔 웃다 보면 어느새 집에 다다른다. 잠들기 전, 고기냄새 잔뜩 베인 옷들은 밖으로 내보내지고,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다.
최근 들어 배가 많이 불러온 아내는 안방으로 들여보내고 오늘은 하은이와 함께 작은 방으로 갔다. 하은이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가 좋아하는 책 5권을 들고 왔다. 늘 이렇게 많이 들고 오지만 막상 읽어주는 건 한 두 권에 불과하다. 너무 많아서 못 읽는 탓도 있지만, 침대에 누워 읽어줄 때 숨이 많이 찬다. 나의 신체화장애가 이런 때 참 불편하다.
"하은아, 오늘도 너무 고생 많았어. 많이 피곤할 텐데 씩씩하게 따라와 줘서 고맙고, 늘 밝게 웃어줘서 고마워."
잠들기 전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칭찬 주고받기도 한다. 뭐 딱히 어디서 본 건 아니지만, 서로 칭찬을 해주면 좋은 기분으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셋이 잘 때는 릴레이 칭찬도 하는데, 이게 은근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아빠도 음, 음, 하은이한테 예쁘게 말해줘서 고맙고, 음음 그리고 음음 맛있는 것도 만들어주고, 음음 그리고 음 책도 읽어주고 음 사진(영상)도 보여줘서 고마워요"
나의 칭찬을 받은 하은이는 나에게 칭찬해 준다. 칭찬을 들으면 또 좋은 게 하은이가 평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내가 몰랐던, 내가 신경 쓰지 않았던 걸 하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새벽에 화재가 발생해 잠을 거의 못 잤던 나는 책 한 권도 다 못 읽고 곯아떨어졌다. "하은아 미안한데, 오늘 아빠가 너어무 피곤해서, 이것만 읽고 자도 될까?", "네, 아빠" 다행이다. 나는 얼른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피곤해도 깊게 잠드는 게 늘 어려운 나는 잠든 지 3시간 만에 잠에서 깨었다. 팔을 뻗어 더듬어 보았지만 옆에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너무 놀라 침대에 벌떡 앉았고, 달빛을 조명삼아 침대 전체를 스캔했다. 스캔결과 아이 없음. '혹시 침대 밑에 떨어졌나!!!' 몇 초 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악몽을 꿨던 탓에 심장은 더욱 요동쳤다. 침대 주변 바닥 스캔 시작! 스캔결과? 아이 없음! 큰 일이다. 뭐지 뭐지 뭐지.
프로 불안러인 나는 얼른 거실로 향했다. 거실 없음. 화장실 확인. 혹시 화장실에 아이가! 화장실 클리어. 남은 건 이제 안방이다! 안방으로 향한 나는 긴장하며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하은이였다. 커다란 엄마 옆에 하은이가 자고 있었다. 자신의 베개와 이불까지 가져갔나 보다. 이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전 생각에 잠겼다. 고기 냄새가 심해서 간 건가... 엄마랑 자고 싶어서 간 건가... 아니면 내가 코를 좀 골았나...
아침이 되어 일찍 일어난 아내가 나에게 왔다.
"랭랭이 어제 무슨 일 있었는 줄 알아?", "응? 우리 하은이 사라졌던데?" 잠에서 막 깬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제 하은이, 아빠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심해서 대피했어 ㅋㅋㅋㅋㅋ"
코를 많이 골아서 자다가 짜증을 좀 낸 적은 한번 있었는데, 베개랑 이불, 애착인형 2개를 들고 아예 대피를 해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시에 깬 하은이가 나의 발을 간지럽히며 말을 보탰다.
"아빠, 내가 아빠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대피했잖아~"
스스로 자신의 짐을 챙겨 안방까지 대피하는 모습에 나는 미안함 보다는 대견하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 이제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고, 생각한 대로 실천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는구나. 그렇게 커가는구나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