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글쓰기 머신을 발견하다
브런치에 입문한 후로 나는 계속 글을 써왔다. 글쓰기 머신으로는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폰,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최고의 머신은 스마트폰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생각을 적어가니 글을 쓰는 게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뇌와 나누는 대화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글에 집중하며 20년 동안 고통받던 불안장애 신체화 증상 중 하나인 호흡곤란도 꽤 많이 회복되었다. 실로 놀랍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스마트폰을 폴드 4로 바꾸면서 나의 글쓰기 머신 순위가 바뀌었다. 폴드 4는 접혀있을 때 무거워서 타이핑을 오래 하지 못했다. 가로길이도 짧아 오타가 많이 발생했다. 펼쳤을 때의 쿼티 패드도 가운데 부분에 수로가 생겨 오타가 심각했다. 결국 나는 조용한 풀타입의 키보드를 하나 구입했다.
키보드는 스마트폰을 대체하지 못했다. 나는 자투리 시간에 주로 글을 쓰는 편인데, 가방에서 마치 총기를 꺼내듯 그 묵직한 키보드를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꺼내면 괜히 주목만 받는다. 어디 거냐. 쳐봐도 되냐. 애완견도 아닌데, 만지는 거야 상관없지만 그사이 나의 글감은 휘발되고 만다.
그러다 이번에 좋은 기회에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어 원고를 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몇 해전 공모전 사은품으로 받은 게이밍형 노트북이 있었지만, 게임에 특화되어있다 보니 키보드 배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타가 자주 발생했다.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데스크톱을 들고 다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충전기를 꽂지 않으면 금세 화면이 어두워졌다. 조금만 열을 받으면 항공기를 띄우는(펜 돌아가는 소리) 사춘기 소년 같은 이 노트북이 나의 글쓰기 머신으로는 어쩐지 부적합한 것 같았다.
노트북을 수배했다. 원고를 쓰는 동안만, 딱 3개월 정도만 버텨줄. 하지만 그 의사결정의 끝에는 최종보스몹(?)인 아내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식사를 할 때, 기분이 좋으실 때, 조금씩 언급해 보았지만 그렇잖아도 많은 디바이스에 노트북을 또 추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대화는 비폭력으로 끝이 났지만 나의 등에는 한 줄기의 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결국 글쓰기 최종 디바이스로 맥북 m1 간택되었다.
맥북 M1 2021 기.본.형. (와이프님 보고 계신가요?)
오랜 세월 갤럭시만 써오고, 한컴오피스의 한글만 써오던 나였지만 적응은 금방 했다. 한글의 수많은 단축키를 다 쓸 필요가 없는 단순한 타이핑 위주의 작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머신으로써의 노트북을 고를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가벼워야 한다.
어디서든 툭 꺼내어 쓸 수 있는 가벼운 디바이스여야 한다.
2. 배터리가 오래가야 한다.
3. 키감이 좋아야 한다.
사무실에 그램이 많이 있어 써 보았는데, 그램도 아주 준수했다.
하지만 1번과 2번 때문에 맥북으로 왔다.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고, 차에서든 벤치에서든 어디서든 꺼내어 '두두두둑' 쓸 수 있는 그런 디바이스, 배터리 충전기 없이 몇 시간이고 쓸 수 있는 디바이스. 키보드를 좀 세게 치는 편인데, 많이 가볍지도 많이 무겁지도 않은 디바이스. 그런 디바이스가 바로 맥북이었고, 맥북중에서도 가장 혼이 덜 날 수 있는 가격대(기본형은 40~50만 원대 형성, 30은 사기가 많음)인 M1이 내겐 안성맞춤이었다.
맥북을 사기 시작한 후로는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갤럭시 S21울트라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그때의 감동을 지금 다시 느끼고 있다.
일상을 위협하는 맥북.
정말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