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아빠, 떠나가는 법을 배우고 살아가는 법을 쓰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를 읽고

by 키랭이

삶과 죽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하는 참혹한 현장을 뛰어다니는 내가 유일하게

멈출 수 있는 시간은 바로 독서다. 수천, 수만 시간을 진하게 우려낸 작가의 문장 한


잔은 상처를 치료하는 좋은 약이 된다. 이 책을 발견한 ‘그날’도 역시 그랬다. 숨 막히는 재난 현장을 뒤로한 채 퇴근하던 길. 책을 한 권 처방받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발견한 독서 감상문 광고와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그래 이거다!”


며칠 후 새 책이 도착했다. 박스를 거칠게 뜯고 책을 바로 읽어 내려갔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책이 술술 읽혔다. 죽음을 연구하는 법의학자의 시선은 죽음을 매일 목격하는 나의 시선과 많이 닮아 있었다. 다만 작가는 죽음 이후의 상황을 통해 죽음 이전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는 죽음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아야 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소방관들은 PTSD에 강하게 노출된다는 점도 달랐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소방관으로 임용되기 전까지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경험도 없었고, 가족이나 친척을 떠나보낸 경험도 거의 없었다. 죽음은 늘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가 왜 소방관이 되려고 했을까. 왜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현장을 뛰어다녔을까. 누군가를 돕는 일. 나를 희생하는 일. 나는


그 숭고한 일을 가치 있는 일이라 믿었다. ‘살아야 한다면 가치 있게, 죽어야 한다면 의미 있게’를 가슴속에 새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겪은 고통 때문이었다. 죽음 앞에서 절망해 본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음과 눈물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나야말로 그 순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늘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과거 우울증을 앓았다. 중등도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심각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시절도 있었다. 20대에 겪은 교통사고는 씻을 수 없는 PTSD를 남겼고, 불안장애라는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금은 물론 잘 관리하며 살고 있지만, 그 어둠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제복을 입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맞지 않는 옷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잘 맞는 옷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을 겪었고, 불안을 경험했고, 어둠 속을 아주 오랫동안 홀로 걸어봤기 때문이다.


작가는 죽음을 바라보는 3가지 관점이 있다고 한다. 1인칭 죽음, 2인칭 죽음, 그리고 3인칭 죽음이다. 아직 오지 않았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1인칭 관점의 죽음,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상실감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2인칭 관점의 죽음이다. 마지막

으로 매체 등을 통해 ‘전해 들은’ 나와 관계없는 죽음이 3인칭 관점의 죽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3인칭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언젠가 다가올 1인칭과 2인칭 죽음에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책을 읽은 뒤 요즘 나는 아내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부쩍 자주 나눈다. 물론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다. “내가 죽거든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하소연이 아니다. “구급대원으로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죽음을 목격해. 그러다 보니 나도 생각이 많아져. 나는 어떻게 죽을까, 하고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우리도. 먼 훗날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후회 없이 웃으면서 떠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 아내는 고맙게도 덤덤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를 읽기 전의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눈이 바뀌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옮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살아가는 법과 떠나는 법을 동시에 가르쳐 준 최고의 교과서였다.


이제 나도, 작가의 유언처럼 나의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해.




“사랑하는 내 딸 하은아, 여보,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이 편지를 읽을 즈음에 저는 아마 먼 여행을 떠나고 있을 거예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저는 여러분들의 든든한 지원과 응원 덕분에 즐겁게 제 소명을 다 해냈으니까요.. 저로 인해서 한 분이라도 더 살 수 있었다면, 한 분이라도 더 웃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기억과 기억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거잖아요.


혹여나 제가 남긴 상처나 아픔이 있다면 장례가 끝나기 전에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라요. 눈물이 난다면 마음껏 울어도 좋아요. 대신, 일상으로 빨리 돌아와 건강하게 살아가 줬으면 좋겠어요.


여보! 당신 만나서 친구처럼 너무 즐겁게 잘 지냈어요. 우리 딸이랑도 친구처럼 서로 잘 보듬어 주고 아껴줘요.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요. 늘 응원할게요. 당신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요.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하은아!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 우리 하은아. 아빠가 곁에서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하지만 아빠는 소방관이 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단다. 먼저 떠나서 미안해. 사랑한다. 내 딸.






이 글은 2025년 가을, 시민 독서감상문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글입니다. 저는 해마다 작은 공모전이라도 참가하려고 하는 편인데, 각 시,군마다 진행하는 공모전이 있으니 우리 브런치 식구 분들도 한번 참여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어 대신 수상하신 어무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