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요르단 출장기, 페트라부터 전세기까지
잘 놀았으니 일해야지. 7일 월요일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홍명보호가 오후 12시 30분쯤 입국한다고 해서 아침 일찍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다음 숙소에 짐을 갖다놓은 뒤 인근 도넛 가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 스타벅스에서 기사를 좀 쓰다가 올 시간이 되어서 입국장 앞으로 갔다. 퀸 알리아 공항의 입국장은 크기가 크지 않아서 누가 나오는지 못 볼 수가 없는 수준이다. 입국장 앞에는 요르단 한인회에서 나오신 분들이 계셨다.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들어보니 요르단에는 유적지, 특히 성지가 꽤나 많았다. 사해를 포함해 전부 방문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페트라를 다녀왔다고 하니 그럼 요르단을 다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국 대표팀이 요르단에 오는 게 역사적인 일이라며 기뻐하시는 모습에기분이 좋아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대표팀이 도착했다. 홍명보 감독과 미디어 담당자가 나와서 인사와 악수를 하고 기사거리가 될 만한 사진을 찍었다. 요르단 한인회 사람들은 대표팀 버스가 떠난 이후에도 버스 뒤에다 손을 흔들며 홍명보호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이후에는 선발대로 오신 타 매체 선배를 만나 다시 암만으로 이동했다.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떼우고 훈련장으로 갔는데 그날 대표팀은 암만 시내의 교통 정체로 인해 결국 실내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이 없으니 할 일이 있나, 저녁을 먹고 첫날을 마무리했다.
둘째날인 8일에는 훈련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오전에 기사를 조금 쓰고 훈련 시간에 맞춰서 훈련장에 갔다. KBS에서도 선발대가 오셔서 다같이 20여분 정도 훈련을 봤다. 다행히 훈련에 앞서 홍명보 감독 인터뷰가 있어서 기사거리가 좀 나왔다. 공식 기자회견은 질문들이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훈련장 인터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홍 감독이 훈련장 인터뷰인데도 답변을 잘해줘서 감사했다. 10분 좀 안 되게 인터뷰를 한 것 같다.
9일에는 오전부터 사전 기자회견이 있었다. 암만 시내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서 진행됐는데, 요르단 대표팀이 이곳을 숙소로 쓰는 것 같았다. 우버를 타고 가는데도 보안 검색을 해야 호텔 입구로 진입할 수 있었다. 보안 요원이 차 트렁크도 열어보고, 창문을 내려 나보고 왜 왔냐고 물어봤다. 미디어 컨퍼런스가 있다니 그제서야 표정이 풀렸다.
메리어트 호텔은 내가 요르단에 온 이후 본 건물들 중 가장 시설이 좋았다. 밖에서 본 요르단 사람들은 쓸데없이 말을 붙이려고 하거나, 호객행위를 하거나, "니하오"라면서 무례하게 굴었는데 메리어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달라도 달랐다.
기자회견 중 한국 축구의 부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요르단 방송사의 질문도 나오는 등 이슈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요르단축구협회 관계자와 기자회견 담당 통역이 와서 대신 사과했다. 통역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이재성 선수에게 하나 더 질문하고 싶었는데 기자회견 진행을 담당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직원이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끝내서 당황했다. 다행히 홍명보 감독이 이재성 선수에게 질문을 하나 더 해도 된다고 허락했고, 이재성 선수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줬다. 내 마음 속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는 이재성이다.
9일은 밤에 한국에서 타 매체 기자들이 팬들과 함께 전세기로 오는 날이었다. 훈련까지 챙기고 선발대 셋이 압달리 몰에서 마감을 한 뒤 식당에서 마지막 만찬처럼 저녁을 먹었다. 디저트 가게에도 갔었는데, 디저트가 얼마나 단지 당이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숙소로 이동해서는 후발대를 기다렸다가 숙소에서 함께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다들 비자 때문에 여권을 걷어가느라 버스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다행히 안면이 있고 몇 번 대화를 했던 선배와 같은 방을 썼다.
경기 당일인 10일 오전에는 호텔 조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이게 4성급 호텔인지 싶은 수준의 조식이 나와서 조금만 먹고 말았다. 사실 화장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도 시원치 않았는데, 사람이 많고 1층 방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여튼 조식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룸메이트 선배를 모시고 전날 갔던 카페에 갔다. 직원분이 영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카페였지만 커피 맛이 정말 좋아서 다시 방문하고 싶었다. 직원이 나를 알아보고 웃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두 잔 시켜서 마셨는데, 선배가 마셔보더니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바샤 커피'와 맛이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바샤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서 그냥 맛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래서 뭐든지 많이 경험하고 알아야 하는구나 싶었다.
이후에는 여행사에서 준비한 관광 프로그램을 따라다니다 경기가 열리는 요르단 국제경기장으로 향했다. 입장 과정에서 조금 문제가 있었다. 협회증을 보여주면서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질 않았다. 결국 협회 직원분이 AD카드를 들고 오고 나서야 펜스를 넘어갔다. 취재석 입장 전에도 엄청 꼼꼼하게 검사를 당했는데, 어떻게 보면 홈 텃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 선배는 기념품으로 산 컵 때문에 입장이 막히기도 했다.
다행히 경기 1시간 30분 전에 취재석에 앉았다. 그런데 누가 취재석에 있는 모든 의자에 물을 쏟았는지 축축했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한참을 알려주지 않았다. 불쾌하고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나는 요르단 사람들마다 아시안컵 준결승 얘기를 꺼내면서 또 자기들이 2-0으로 이길 거라는 조롱을 했었는데, 그날은 우리나라가 2-0으로 이겼다. 알타마리가 부상이고 알나이마트가 제 컨디션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는 이재성이 맞다. 황희찬과 엄지성이 부상을 당했지만 배준호라는 보석을 발견한 경기였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기자회견과 믹스트존을 담당할 사람들을 나눠서 일을 하고 곧바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타서 마감을 했다. 평생 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흔들리는 버스에서 타자를 치려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게 40여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 수속을 밟고 곧장 전세기를 탔다. 시간이 촉박했다. 간신히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 전에 선수들이 기내를 돌면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하지 않았다. 주변에 앉은 팬들이 신나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와중에 그냥 앉아 있자니 조금은 뻘쭘했다. 믹스트존에서 따로 인터뷰를 했던 배준호 선수가 나를 보자 "어? 안녕하세요"하고 지나갔다.
사실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오려고 했는데, 누가 기내식에 수면제를 탔는지 잠이 쏟아지더니 그대로 7~8시간을 잤다. 일어나니까 인천까지 4시간 정도 남았다고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넷플릭스를 켜서 흑백요리사를 세 편 정도 봤다.
원래 18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경유 없이 직항으로 오니까 정말 편했다. 아시아나 항공은 이코노미 자리도 넓었다. 에티하드 항공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A380은 달라도 달랐다. 기내식도 맛있게 잘 먹었다. 대표팀을 위한 전세기여서 안내 영상에 선수들이 나오고, 승무원 분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도 새로웠다.
홍명보 감독이 공항 입국장에서 입국 인터뷰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입국 게이트가 너무 멀고 취재진이 비행기 뒤편에 앉느라 늦게 내려서 우리는 결국 하지 못했다. 녹음 파일을 받아서 카페에서 정리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서 곱창전골 밀키트를 사서 얼큰한 국물로 저녁을 먹었다.
내 생애 두 번째 해외 출장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요르단은 기름이 나지 않는 중동 국가라 카타르에 비해 시설이 낙후된 곳이 많았고, 왜인지 몰라도 사람들도 썩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동 음식이 맞지 않아서 고생도 좀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가서 겪은 경험들은 내 평생 자산이 될 거다.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분명히 얻은 것들이 더 많은 7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