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달라야 한다! 시대를 읽자!
올해로 유학 업무 22년 차.
누군가에게 배워서 시작한 일이 아닌, 처음부터 내가 스스로 부딪치며 배운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누군가에게서 배운 후, 독립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어쩌다 보니 일을 하기 시작 되었고, 어쩌다 보니 사업자를 내서 유학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일의 시작은 2002년 월드컵 이전의 일이다. 어쩌다 알게 된 싱가포르 친구를 만나러 간 게 처음 싱가포르와 인연이 되었다. 당시에는 무비자가 3개월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입국 시에는 1개월의 비자를 줬다. 대신 1개월을 넘게 체류하려면 이민국에 가서 얼마를 내고 사유서를 제출하면 1개월씩 두 번 연장을 해 줬다.
그리고 싱가포르 사회는 거의 일본 기업으로 장악이 되어 있었다. 도요타 택시, 시내 도심에 크게 들어선 다카시마야 백화점 등 '내가 지금 일본에 와 있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싱가포르 인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North?' 하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나마 조금 아는 사람들은 '김치'정도 말을 해줬다. '안녕하세요'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번 TV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북한 핵이야기였기 때문에 싱가포르 사람들은 남한보다 북한에 더 익숙했었던 것이었다.
2002년 싱가포르에 놀러 갔던 나는 종종 오가다가 2004년에 본격적으로 싱가포르행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정착할 계획으로 학원 등록 후 학생비자도 신청을 했다. 싱가포르 출국 전, 비자 문제도 있고 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 시청 근처에 위치한 한 유학원에 방문을 했다. 당시 싱가포르 유학원은 없었다. 그분 역시 중국 유학원인데, 겸사겸사 싱가포르, 대만 등의 유학일도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분도 사실상 업무를 정확히 모른 채 나의 일을 착수하신 거였다.
그 유학원장님은 또 알고 보니 고향 선배였다. 처음 만나서 '안녕하세요' 하는 순간부터 말투가 구수한 것을 보고 '고향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냥 같은 충청도만이 아닌,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
이게 계기가 되어 나는 싱가포르에 가서, 의도치 않게 유학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그 원장님이 한국에서 조기유학 손님을 보내면 내가 싱가포르에서 받아서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나야 뭐 막상 '싱가포르에 가면 뭐 하고 먹고살지..'하고 고민했던 차라 조건 없이 그냥 수락을 해 버렸다.
그리고 도착한 싱가포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그래도 유학원에 일정 비용이라는 걸 납부했는데, 같이 일을 한다는 핑계로 내가 나의 일을 전부 다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온라인상에 정보라도 많지만,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지금처럼 많이 쓰이지 않았을뿐더러, 싱가포르 유학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었다. 그나마 싱가포르인 친구가 있어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씩 하나씩 해결을 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게 나의 큰 자산이 된 것이다.
그렇게 2004년의 나의 싱가포르 생활은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