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아주 아주 굵었던...
싱가포르에 다시 왔다. 하지만 이번엔 놀러 온 게 아니다. 정착하러 왔다. 싱가포르 친구의 도움으로 다행히도 초반에 잘 정착을 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판단 밸리 인근의 한국인 가정이 살고 있는 콘도에 방을 하나 얻었다. 옆방에는 코트라 인턴으로 나왔던 내 또래의 친구가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다행히도 한국인 가정에, 옆방 한국인 친구, 그리고 나의 정착을 도왔던 싱가포르인 친구, 이렇게 비교적 당시에 한국인이 별로 없었던 싱가포르에서 나의 초반 정착은 순조로웠다.
지금과는 사뭇 다르지만, 당시 2004년에는 싱가포르는 지하철이 레드라인, 그린라인, 딱 두 개였다. 그래서 나의 주 교통수단은 버스였다. 한국에서는 시내버스를 타도 15~20분이면 상당히 멀리 가는 것 같은데, 싱가포르는 버스가 꼬부랑꼬부랑 다녀서 체감 상 한국에서의 15~20분 거리는 30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체류하기 가장 좋은 비자는 아무래도 학생 비자로, 오차드 로드에 있는 가장 저렴한 어학원에 등록을 해서 학생비자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 유학원 원장님이 싱가포르로 유학생을 보낼 때면 싱가포르에서 숙소를 잡고, 시간에 맞춰 공항 픽업, 학생 비자를 받는 일을 도왔다. 나도 절차를 하나도 몰랐다. 그냥 내가 받아본 적이 있으니, 기억을 더듬어 시행착오를 하며 일을 했다. 다행히도 손님들이 다들 좋은 분들만 있어서 일은 할만했다.
당시 싱가포르 전문 유학원은 없었고, 한국에서는 나와 같이 일을 하시는 중국 유학원 원장 (편의상 K원장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분은 내가 지금까지도 이일을 하게 된 직접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과 싱가포르 현지에서 여행사 업무를 보면서 겸사겸사 유학일을 하시는 분들이 전부였다. 이후 싱가포르 유학원들이 몇 개씩 생겼다. 그리고 2004년 신문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습득할 수 있는 안전한 싱가포르'에 대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나오면서 싱가포르 유학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싱가포르에 살면서 유학 업무는 용돈을 벌기 위한 임시방편이었고, 취업을 해서 거주를 할 계획을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싱가포르인 친구가 여자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가 보니, 좀 더워서 그렇지 꽤 살만 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인들의 싱가포르 고용이 활발해져서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면 취업이 꽤 쉬었다. 영어를 못해도 심지어 회사에서 영어학원을 등록시켜주기도 했다. 한 번은 지하 푸드코트에서 혼자 앉아 육개장을 시켜서 먹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싱가포르인 부부가 나를 보고 한국인임을 눈치채고 말을 걸었다.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그리고 인맥을 통해서 싱가포르 항공 취업 소개를 받기도 하고 아무튼 나의 싱가포르 초반 생활은 꽤 괜찮았다. 여러 기회가 많을 것 같다는 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나는 그해 12월 짐을 싸서 귀국을 해야 했다.
다음 회에서는 싱가포르에서의 짧고 굵었던 약 5개월 간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