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캄캄...
2004년 봄쯤이었다. 싱가포르에 완전 정착을 위해서 떠나 서쪽, 그리고 중앙, 그리고 동쪽 등 HDB아파트 (싱가포르 정부 아파트), 콘도 (민영 아파트), 일반 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살아 봤다. 아파트에 거대한 야외 수영장이 딸려 있어, 누구나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문화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워낙 싱가포르 정보가 많이 공유가 되고 있어서 덜 하지만, 당시에는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 절대적으로 의존을 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국인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서 종종 모임을 갖곤 했다. 당시에 만나던 한국인들은 싱가포르인과 만나서 결혼해서 정착한 분들,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해서 정착한 분들이 주를 이뤘고, 점차 초중학교 조기 유학이 활성화가 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유학 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싱가포르 유학은 그야말로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공항에 나가서 조기유학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픽업해야 했고, 싱가포르 현지 부동산 등과 연락을 해서 집도 구해주는 등 여러 일을 해야 했다.
보통 초등학교 3~5학년, 중1~2학년의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유는 초등학교 1~2학년의 저학년은 너무 어리고, 6학년은 PSLE (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라고 하는 초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르는 학년으로 입학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중학교 3, 4학년까지 있으며 (일부는 5학년까지 있음), 3학년은 너무 고학년으로 어렵고, 4학년은 중학교 졸업시험인 GCE O-Level 응시학년으로 또 입학이 불가했다.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는 JC (Junior College)는 2년 제로 입학 난이도가 최상이며, 아래의 O-Level 없이 바로 입학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워서 JC유학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국제학교의 경우, 싱가포르는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져서 인기 지역이긴 하나, 그중 인기 국제학교들은 주재원들 자녀에 의해서 우선적으로 입학이 되다 보니, 자비 유학생들은 수개월, 수년간의 대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사립학교가 있는데, 사립 초중학교 그리고 중고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입학에 있어, 당시 인기 순은 이랬다. 저예산의 경우 (당시 싱가포르가 대부분 이랬음), 1. 공립학교 준비 학원 등록, 2 공립학교 TO가 생기면 시험 후, 입학 (보통은 학년을 1~2년 낮춰서 입학을 했다.) 또는 학원에서 준비하기가 싫은 집은 1. 사립학교 입학 후, 2. 공립학교 TO가 나오면 시험 후, 입학.
예산을 높게 잡는 집은 1. 인기 국제 학교 웨이팅 리스트, 2. 바로 입학이 가능한 국제 학교 입학 후, 인기 국제학교에서 TO가 나오면 입학.
국제학교보다는 공립학교 입학 희망자 수가 많았다. 그리고 국제학교는 보통 학비를 회사에서 보조해 주는 주재원 자녀들이 많았다. 이는 또 한 아파트 단지 (보통 한국인들은 비슷한데 모여 삶) 내에서 계급을 나누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게 문제...
그럼 여기서 각자의 관점에서 우스개 소래로 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공립학교 유학생 집의 입장. '공부는 못하고 집에 돈은 있으니 국제학교에 가지.', 국제 학교 유학생 집의 입장, '돈이 없으니 공부를 좀 한다는 명분 삼아 공립에 가지'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둘 중 누가 이겨도 상관없다. 모두 나의 손님이었다.
당시에는 싱가포르 조기유학이 아주 붐이 이렀다. 특히 중국, 베트남 등에서 엄청난 학생들이 들어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공립학교 입학은 운이 좋으면 학교에 아이를 손 붙잡고 가서 바로 교장 선생님의 승인을 받아 입학도 가능했다. 조금 발전된 게, 학교별 입학시험을 진행을 했고, 이후 학교장 단체가 만들어져 해당 시험에 합격을 하면, 회원 학교로는 배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서 최종적으로 MOE (Minstry of Education, 교육부) 주도하에 AEIS (Admissions Exercies for International Students) 시험이 실시가 되어, 모든 국제학생들은 이 시험에서 합격을 해야 공립학교 배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행히도 싱가포르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소개를 받아서 이런 정보들을 싱가포르인 친구들에게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싱가포르에서 생활을 하면서 휴대폰을 두 개를 들고 다녔는데, 여기저기 나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서 통화 중이어도 바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 사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게 좋았다.
한국에서는 나의 존재감을 몰랐는데, 싱가포르에서는 나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것에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뿌듯함이 들었다. 이게 지금까지 연관된 일을 계속해 오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다음 회차에서는 내가 경험한 어학연수 (영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