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싱가포르에서 학생 비자로는 알바가 안 돼요~

이민국 직원이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나를 알아보다!

by KII Ke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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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사이즈가 작은 싱가포르의 경우 학생비자로 알바를 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또한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그 가운데 그냥 알게 모르게 알바를 하곤 한다. 그건 법이 엄격하다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하는 흔한 알바라면, 한국인 식당에서 서빙을 보거나 공사장에서 일당을 버는 것 들이었다. 그나마 조금 고급이라면 학생들 과외.. 나의 경우, 엄밀히 말해서 싱가포르에서 고용이 된 건 아니었고, 한국의 유학원 원장님이 손님이 있을때마나 내가 투입이 되어 일을 맡아서 하는 일종의 프리랜서 같은 일을 했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이 싱가포르는 법이 엄격하기 때문에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싱가포르는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2004년 중반부터는 싱가포르 조기유학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전문 유학업체가 없다 보니, 나는 굉장히 바빴다. 휴대폰을 두 개씩 들고 매일매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당시 싱가포르 조기유학은 주로 공립 초중학교 입학이었다. 지금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으며, 외국인 학생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초등학교의 경우 학생의 손을 붙잡고 찾아가서 교장 선생님을 만나서 잘 설득하면 운이 좋으면 그냥 바로 입학이 되곤 했다. 어떤 학교들은 별도로 입학시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중학교의 외국인 학생 입학은 이후에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AEIS (Admissions Exercise for International Students) 시험이 되었다.


당시에도 싱가포르 국제학교는 인기였다. 보통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의 국가에 적을 두고 있는 국제학교들이 인기가 많았으며, 보통 입학 우선순위는 이랬다. 첫째, 자국 출신으로 싱가포르에 근무하는 주재원 자녀, 둘째, 그냥 싱가포르에 근무하는 주재원 자녀, 셋째, 자비유학생. 인기 국제학교들은 대략 이런 순으로 우선선위를 정해서 입학을 허용했으며, 2004년에는 그래도 인기 국제학교라도 약간만 대기를 하면 자리가 나곤 했다. 이후에는 수년간 대기를 하거나, 입학이 거절되는 사례도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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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도 꽤 있었다. 나는 사실 '왜 싱가포르로 영어를 배우러 올까'하고 생각을 했다. 나의 경우, 싱가포르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냥 단순히 영어를 배우려는 목적으로 싱가포르는 지금도 글쎄...


싱가포르 대학 유학은 나중의 일이지만, 내가 싱가포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싱가포르 대학 편에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다.


싱가포르에 짧고 굵게 있으면서 수년간 겪을 일들을 다 겪었다. 찾아간 학교들, 만난 학교 담당자들, 만난 학생들...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낸 2004년이 나에게는 미래의 직업을 결정짓는 일이 되어 버렸다.


사실 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무언가를 나서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찾는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누군가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서서 일을 하는 리더도 못됐다. 그냥 한 단어로 정리하면 쪼다였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나의 존재감이 컸다. 하루가 멀다고 손님들은 나를 찾았다. 사실 사소한 것까지 연락을 해서 해결을 해 달라는 요청이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당시 그게 너무 좋았다. '내가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었구나'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였을까? 일의 효율성을 위해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가족의 비자 취소를 돕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다. 라벤더 역에서 5분을 걸어가면 싱가포르 이민국 (ICA)이 있다. 이곳에서는 싱가포르인, 외국인들이 층별로 모든 업무를 본다. 한국으로 치면 출입국사무소, 구청, 주민센터 등이 다 모여 있는 곳이다. 매일매일 엄청난 사람들이 방문을 하며, 한번 일을 보러 가면 하루를 반납해야 했다.


나는 그 가족의 비자를 취소하고 귀국을 돕기 위해서 접수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여권을 받아서 공항으로 가면 되기 때문에, 그 가족은 먼저 공항에 가 있었다. 이게 바로 나의 큰 실수였다. 아주 대형 실수였다. 이민국에 같이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민국 대리 업무를 보려면 싱가포르 내에서 그에 맞는 신분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때 비자는커녕, 학생비자도 이미 취소를 하고 잠시 일을 보러 싱가포르에 들어온 그냥 관광객이었다.


그래도 이민국 업무를 보다 보면 종종 운이 좋게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일이 술술 잘 풀리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사납기로 소문난 담당자가 딱!! 자리에 있는 것이다. Oh My God!! 그 직원은 당시 학생들 엄마들 사이에서 불친절하기로 유명했다. 전날 여권을 맡기러 갔을 때도 그 담당자였는데 아주 진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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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이제 그 가족의 여권을 받으러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참고로 그 가족은 이미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었다. 담당 직원은 나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리고 순간 나는 몸이 얼었다. 가지고 있는 거라곤 내 여권 딸랑 하나..... 그래서 난 내 여권을 줬다. 직원은 로컬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난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직원은 다른 직원을 불렀다. 그 직원은 나의 여권을 들고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난 직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곤장감인가...


참고로 싱가포르는 태형제도가 있어, 강력 범죄자들은 곤장을 맞는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가면서 맞을 거 다 맞는다고 한다. 한 대만 맞아도 남자들은 거의 불구가 된다고 한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후 이민국 직원은 나에게 와서 다행히도 내 여권을 돌려줬다. 하지만 그 가족의 여권은 돌려줄 수 없는 것이다. 그 가족은 이미 공항에 있고, 이제 곧 출국을 위한 체크 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낙심을 하면서 이민국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건 니 사정이고~'


마지막으로 그 사납기로 소문난 담당 직원을 바라보며 '혹시 어제 저 기억 안 나세요?' 하고 물었다. 그 직원은 내 얼굴도 안 쳐다보고, '여기가 하루에 몇 명이 다녀가는지 아세요? 내가 어떻게 기억을 해요?'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잠깐 힐끗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다시 쳐다보더니, '아~ 기억나요. 어제 아내하고 아이랑 왔었죠?' 하는 것이다. 순간 눈앞에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런데 '아내?', '아이?' 그 가족이 아이와 엄마였는데, 내 가족인 줄 알았나 보다.


어쨌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내 맞아요~ 집사람과 애가 지금 공항에 있어요. 나 빨리 여권 받아가야 해요.' 그랬더니 다른 직원이 그 직원에게 '너 확실해? 책임질 수 있어?' 하고 묻자 그 사납기로 소문난 직원이 '맞아, 확실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난 그 직원의 보증 아닌 보증으로 그 가족의 여권을 돌려받아서 공항에 시간에 맞게 갈 수 있었다. 휴~~


정말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싱가포르에 있었지만, 수년 살은 사람들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


다음 편에서는 싱가포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펼쳐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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