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산
"오늘 퇴근하고, 삼겹살에 한잔할까?"
퇴근 무렵에 회사 동료가 제안을 해왔다.
회사 동료이면서 대학 동창이고, 부부끼리도 잘 아는 사이다.
당시 그 친구는 나보다 1년 먼저 결혼해서 갓 돌 지난 아들이 있었고, 우리는 임신 8개월이었다.
때문에 이런 제안은 5명 (1명은 갓 돌 지난 아들) 이서 같이 먹자는 얘기이다.
홍양은 돼지고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그런데 갈매기살은 먹는다.
생선회는 안 먹는다.
그런데 오징어 회나 산 낙지는 없어서 못 먹는다.
닭고기는 좋아하면서, 오리고기는 안 먹는다.
홍양을 보통 사람과 같은 잣대로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여하튼 난 좀 망설였다.
임신으로 8개월째 술을 못 마신 데다가 즐겨하지 않는 삼겹살 집에 같이 가는 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있다가 사무실로 홍양에게 전화 왔다.
벌써 친구 와이프와 전화 통화를 했고 함께 식사하는 걸로 했다고 한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이렇게 빠르다니..
자기는 깍두기와 된장찌개를 먹으면 되고, 바깥바람도 쐬고 싶다나?
이렇게 친구와 함께 삼겹살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였다.
홍양은 소주가 너무 마시고 싶다고 하면서 출산일만 기다린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첫째를 낳고, 빨리 둘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소주잔을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둘째와 첫째는 2년 터울이다.
그런데 중간에 친구 와이프가 삼겹살에 쌈장과 고추를 올려 쌈을 싸서 홍양에게 먹어보라면서 입속에 넣었다.
출산을 하려면 힘을 내야 한다면서..
그런데 이게 내가 평생 책잡히고 있는 사건의 발단이 될 줄이야...
거나하게 먹고, 집에 와서 정신없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새벽 4시쯤이었나?
홍양이 나를 깨웠다. 양수가 터졌다며 지금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나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애기가 나오려면 2달 후인데, 벌써 양수가 터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대충 씻고, 차를 몰았다.
당시 술이 덜 깨어 음주운전 상태였을 텐데 그 당시 정신이 없어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응급실로 가서 접수하고, 분만실로 옮겨졌다.
그동안 나는 입원실을 접수하는데 1인실 밖에 없단다.
비싸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입원실 잡고, 분만실 앞에 오니 긴장이 풀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분만하려면 몇 시간 지나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입원실에 가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10월 중순인데 입원실을 난방해서 그런지 더웠다.
거기에 숙취가 남아 있어 찬바람 좀 쐬기 위해 창문을 열고 침대에 누웠다.
10분가량 지났을까?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깜짝 놀라며 산모가 곧 올 텐데, 찬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을 열었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홍양이 환자 이동 침대에 누워 들어왔다.
내가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입원실에서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만실에서 간호사가 나오더니 "홍양 보호자분"이라 몇 번을 외쳐도 보호자가 없어서 직접 입원실로 왔다는 것이다.
보통 산모들은 분만실 가면 몇 시간이 기본이라 던데 홍양은 20분도 안되어 나왔다.
팔삭둥이 아들은 그렇게 빨리 나왔다.
너무 일찍 나와서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하였다.
친구 부부는 연락받고, 처음에 걱정하다가 별문제 없이 순산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날 쌈 싸준 삼겹살을 먹은 덕분에 빨리 나온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런데 나는 그 쌈 싼 삼겹살과 소주 때문에 분만실 앞을 지키지 못한 못된 남편이 되었다.
지금도 홍양은 자기가 뭔가 불리하거나 밀린다고 생각할 때 그 얘기를 꺼낸다.
“홍양 보호자분”을 몇 번 외쳐도 없고, 간호사에 의해 입원실로 이동할 때 주변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을 잊지 못하겠다고…
그리고, 나를 새벽 3시부터 깨웠는데 코 골면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자기는 양수가 터져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옆에서 세상모르고 처자고(?) 있다고..
아니 예정일 보다 두 달이나 빨리 나올 줄 누가 알았냐고?
예정일 전이었으면 내가 그렇게 술을 마셨겠냐고?
그런데 그때 홍양이 쌈 싼 삼겹살을 먹지 않았다면 예정대로 출산했을까?
아직 미스터리이다.
팔삭둥이로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아들은 다행스럽게 잘 커주었고, 지금 188cm의 건강한 20대 청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