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나와 나란히 걷기

by 비움




'매화틀'이라는 내 첫 글쓰기의 챕터가 예상치도 못하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시작은 1~2분 남짓한 글쓰기 모임의 피드백이었다.

나무님은 내 글 속에서 무뎌진 날카로움을 봤고,

지연님은 그 무뎌진 부분 속에서 오히려 긍정을 읽었다.

그 말들이 내 안의 얽힌 퍼즐 조각을 단숨에 맞춰줬다.

“아, 여기에 내가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내가 쓴 글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나는 ‘타인의 경험이 나의 기억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순간들을 자주 겪는다.

3살 어린 멘토였던 친구의 말이 내 안에서 내 목소리로 되살아나고,

동생이 겪은 일을 내가 겪은 일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조합된 서사’가 된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도 그런 복합적인 기억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그 친구는 늘 말했다.

“누구나 사업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 안에는 재능이 숨어 있다.”

그 말은 한때 귀찮은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내 언어로 바뀌어 머릿속을 맴돈다.

“모두가 가능하다.”


그 말은 결국 나 자신에게 건네는 격려였다.

최근의 나는 ‘상상하고 믿기 시작했다.’

한때 “진짜 고객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면 쓰레기다”라며

이상과 분노를 쏟아내던 내가,

이제는 “내가 즐거워야 상상할 수 있다”로 변해가고 있다.

거대한 바위에 눌려 있던 상상력이

조금씩 무게를 밀어내며 일어서려는 감각이 든다.

아, 나는 여전히 변할 수 있는 존재구나.

그 사실이 너무 재미있다.


회사에서 내 반경 1.5미터 안에는

유튜버를 준비하는 친구,

디자이너로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친구,

이직을 결심한 동료,

좌절의 끝자락에 있는 후배,

출세를 위해 모든 걸 감내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각자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단지, 잠시 같은 시간대의 플랫폼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잠시 나란히 걷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시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속도를 맞추는 일.

그 길 위에서 나는 글을 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