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강한 사람은 그 에너지로 주변을 감염시킨다.
나는 그 사실을 4년 전, 개인사업을 하던 시절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 내 곁에는 한 명의 멘토가 있었는데, 나보다 세 살 어린 친구였다.
처음엔 그가 주최하는 사업에 반쯤은 의심, 반쯤은 호기심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그는 유난히 밝았고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냥 하면 되죠.”
그게 그의 입버릇이었다.
자신이 한 말을 되뇌며 다시 행동으로 옮기고,
그걸 또 반복했다.
그는 스스로 되뇐 말을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았다.
나는 그와 달랐다.
디자이너 특유의 꼬인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완벽하지 않으면 내보이기 싫었고,
확신이 들지 않으면 일단 멈췄다.
그런데 그는 매번 말했다.
“그냥 하죠. 하고 나서 확인하고 해결해 보죠!”
솔직히, 속이 뒤틀렸다.
‘지금 당장 이상한데, 그게 잘 될 리가 있나?’
속으로 백 번도 넘게 되뇌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다.
진심으로 믿고, 믿는 대로 행동했다.
그 미친 확신이 부러우면서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그렇게 사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내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다.
“그럼, 한 번 해볼까요?” “그냥 하죠.”
예전엔 계산하고 망설이던 내가 이제는 먼저 말한다.
“일단 해보고, 다음을 생각하죠.”
그때 그 친구가 입에 달고 살던 단어가 내 입을 통해 나왔다.
계기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그의 반복된 말이 시간차를 두고 내 안에 스며든 것이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나비효과가 되어 나를 전염시키고 있었다.
나는 실행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구상하고 상상하고 계획하는 건 좋아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늘 한참이 걸렸다.
결과를 너무 일찍 상상하다 보니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행동력이 좋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 어딘가에 걸친 사람처럼
“에… 진짜요?” 하며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안다.
과거 나보다 어렸지만 배울 게 많았던
그 사업가 친구로부터 온 ‘생각의 전염’이라는 것을.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생각의 전염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외친다.
“우선 해보죠.”
사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꽤 오래전부터 믿으며 살아왔다.
지금 돌아봐도 그 믿음 덕분에 내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중 가장 큰 운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비웃는 사람보다 응원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시원찮던 내가
입버릇처럼 “홍대 갈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코웃음을 쳤고,
친구들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비아냥거렸다.
“야, 그게 되겠냐?”
그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 묘한 쪽팔림과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이상한 분노는
삭발을 하고 나의 유흥을 삭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3주간 부모님을 설득해서 재수를 시작으로
만성위염과 피부. 몸무게를 내어주고 나서야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유일하게 자기 말을 지킨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건 단순한 합격이 아니라,
‘말은 현실이 된다’는 감각의 첫 경험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페라리 콘셉트 디자인 공모전에 나갔을 때,
내 머릿속엔 오직 ‘1등’뿐이었다.
근거도 논리도 없었다. 그냥 될 것 같았다.
그런 나의 이상한 확신과 허언에 가까운 말은
팀리더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물러섬이 없었다.
결과는 정말 재미있었다.
디자인 부문과 데이터 부문, 두 개 모두 1등.
세계 1등이라는 타이틀에 나를 묻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많은 기회들이 내 인생이 들어왔고,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자주 불러 일을 맡겼고,
졸업도 하기 전에 실무를 배우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점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분에 넘치는 결과를 얻은 대가였을까.
남들의 기대와 내 실력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였다.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상상력은 점점 사라졌다.
‘창의’보다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 우선이 되었고,
그건 안정적이었지만 내면은 서서히 마모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고, 회사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꿈꾸던 인생의 방향과는 달랐다.
무언가 어긋나 있었지만,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었다.
사실, 그냥 ‘살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상상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상상하지 않는 디자이너라니…’
상상하는 미래가 없으니 재미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생각의 확신도 희미해져 갔다.
나도 모르게 그 무기력이 주변으로 전염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남의 기준에 나를 옭아매고,
다른 이의 시선에 맞춰 살면서
나는 어느새 타협하고 있었다.
남에게 내 생각의 권리를 내맡긴 채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사실 아니었던 적이 없다.
내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말했을 때,
언제나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
내가 무언가를 도전하고 행동하면 그렇게 좋아하신다.
“실패해도 좋으니 즐겁게 해 보라”
그 한마디가 내 등뼈를 곧게 세운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나는 운이 좋은가?
사실, 나는 안다.
운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내 믿음이 실현된 결과라는 것을.
나는 한동안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다.
상상이 없으니 확신이 없었고,
확신이 없으니 발맞춰 뛰어갈 힘도 사라졌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상상하고, 확신하고, 즐거워하자.
내가 만든 상상에 나를 다시 태우며
나만의 챗바퀴를 끊임없이 돌려보자.
그 시작은 다시, 3살 어린 멘토였던 그 친구로부터 왔고,
이제는 나에게서 누군가로 이어질 것이다.
좋은 생각을 먼저 내 안에 전염시키자.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될 거야.”
그 믿음을 가장 먼저 믿는 사람이 결국 운을 만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