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나 vs 무뎌진 나

by 비움

[커터칼]


디자이너들은 언제나 ‘날이 잘 드는 커터칼’을 몸에 지닌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단지, 프린트된 시안을 깔끔하게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칼날의 끝이 조금만 무뎌져도 종이는 쓸리고, 모서리는 일그러진다.

그래서 대략 서른 번, 마흔 번쯤 자르면 칼날의 한 칸을 ‘딱’ 부러뜨려야 한다.


문제는, 버려진 칼날이다. 이 조그마한 쇳조각은 너무 위험하다.

잘못 버린 날 하나가 어디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지 모르니까.

그래서 전용 케이스를 들고 다니며, 잘린 날들을 모아서 버려야 한다.

그래서 신입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 중 하나도 이것이다.

“커터칼 다룰 때는 꼭 조심해야 돼.”


그럼에도,

매년 베인 손을 움켜쥔 채

놀란 얼굴로 병원을 가는 신입사원의 모습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치고 난 이후에야 우리는 칼날의 무서움을 안다.

다루지 못한 날카로움은, 결국 자신을 베어버린다.




[대검]


칼날이 무뎌지면 우리는 그것을 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럽의 중세시대는 대검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다.

이 대검은 손을 베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큼 그다지 뭉뚝했다.

아니, 칼날보다는 몽둥이에 가까웠고 굉장히 무거웠다.


이것은 중갑기병들의 존재들로부터 탄생했다.

당시에는 철제로 된 중량의 갑옷을 몸에 두른 중장기병들이 중요한 군사력이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받아내면서 돌진하기 위해 존재했고,

때로는 말조차도 이런 무겁고 거대한 철제로 감싸져 있었다.

헬멧조차도 눈, 코, 입을 제외하고는 촘촘히 막혀있다.


이런 환경에서 날이 선 칼날로 '벤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의미했다.

소위 일본의 카타나와 같은 칼로 떄렸다가는

유리조각 깨지듯 허무하게 부러진 자신의 칼날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따라 마창을 다루는 기병들도 똑같았다.

마창의 끝은 날카롭기보다 뭉툭했고,

초코송이 과자를 길게 늘여놓은 듯한 몽둥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통보다는 속도와 중량으로 움직이는 파괴력으로 만들어져 있다.




[몽골족과 총기의 발전]


중세의 유럽은 기본적으로 ‘동방’에 대한 두려움이 깊었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 칭기즈칸을 필두로 한 몽골의 군대였는데

유럽은 그들의 전투방식에 순식간에 영토를 빼앗겼다.

그들의 힘은 유럽의 ‘중장기병’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기동성과 유연성, 그리고 ‘전술의 속도’에 있었다.


당시의 유럽의 군대는 수십 킬로그램의 갑옷을 입은 기마병을 중심으로,

공성전에 특화된 무겁고 느린 전투 방식을 고수했다.

방패와 창으로 진형을 짜고, 천천히 밀고 들어가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몽골의 기병은 달랐다.

그들은 바람처럼 가벼웠고, 치고 빠지고, 다시 돌아와 포위했다.

한걸음 한걸음을 무겁게 땅을 딛으며 나아가는 유럽의 병사들에게

말 위에서 자신들을 농락하며 쏘아대는 몽골의 화살은 조롱에 가까웠다.

빠른 속도와 거리의 감각, 그리고 정교한 타이밍 앞에서 정면대결은 무의미했고.

멈춰 있는 유럽군에게, 몽골의 화살은 그저 속도 그 자체의 공포였다.


13세기 중반.

유럽은 몽골이라는 공포의 대상 덕분에 자신들의 한계를 파악했다.

그들은 그 가벼움에 대항할 날카로움을 찾았고,

그것은 총기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2025년 2월 15일부터 7월 19일까지


아침마다 매일매일 글을 썼다.

처음엔 뭘 써야 하는지 몰랐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냥 아침에 떠오르는 감정과 기분.

그리고 뉴스를 보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적었던 것 같다.

나에겐 아침에 쓰는 한 편의 일기였고,

남들에게 내 각오를 보여주는 한 편의 각서였다.


매일매일 적은 이 글들을 5개월이 지나서 천천히 돌아봤다.


초반에 쓰는 나의 글은 매일 내가 지니고 다니는 커터칼과 같았다.

그때의 나는 날이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일에서 날카로운 부분을 찾아내고

그걸 손끝으로 만져보며 피맛을 느끼려는 태도.

마치 그 자극이 있어야만 내 날도 서 있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제야 내가 발디디고 서있는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은 오래 서있지 못하더라]


4개월이 지난 최근의 글은 많이 뭉뚝해져 있었다.

날이 무뎌지면 갈아줘야 하는 칼날이

어느 순간 유럽의 어느 대검처럼 무엇도 벨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 글을 쓰면서 나의 불안을 마주했고,

같이 쓰는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운세를 믿고, 사주를 보면서 하루를 흘려보내는 나.

불과 몇 달 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장미의 가시가 사라지고, 대신 할미꽃의 부드러운 털이 돋은 느낌이랄까.

본래 먹지도 못했던 불닭볶음면이 진라면 순한 맛이 된 기분.

내 안의 냉소와 냉철함이 조금씩 녹아내린 것이다.


매 달, 글쓰기 모임에서 내 글을 같이 봐주셨던 분들도

처음에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글이 많이 바뀌셨어요. 좀 많이 순해진 것 같아요.'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오히려 읽기 좋아진 것 같다.'

등등의 각기 다른 의견을 받았다.


지난 4개월을 돌이켜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 일상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날이 잔뜩 서 있으면, 그들 중 누군가가 다친다.

그 날카로움이 강할수록 상처의 깊이도 깊어진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도 다치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의 신입사원처럼,

그 날카로움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의 날카로움은, 어쩌면 어설펐다.

무딘 칼을 쥔 채 날이 선 척했던 시절이었던 걸까.

그 깨달음은 조용하지만 묵직했다.

그렇게 매번 칼날이 무뎌지면 잘라버렸던 행동을 멈추기 시작했고,

필요할 때만 꺼낼 수 있게 조용히 품 안에 숨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