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명암을 잃어버린 색이 사라진 세계.
최근 들어 세상이 회색빛 안갯속에 잠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회색빛이란 밝고 활기찬 삶의 에너지를 잠식시키는,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 연기를 떠올리는 그 무언가다.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은 점점 무뎌지고,
다정한 인사보다는 고요한 침묵이 감돈다.
분노나 괴로움 같은 감정이 훨씬 쉽게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인은 인간 심리를 꿰뚫은 최상급의 마케터다.
기업과 정치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은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판다면
정치인은 국민들의 니즈를 파악해 표를 얻는다.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최근 트럼프를 시작으로
극단적 국수주의 성향이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는다는 사실은
사회의 이면에 흐르는 심리를 엿볼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비교와 경쟁이 커지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배제하고 차단’하려는 태도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성과 문화 존중의 시대가 스드러지면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문제는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이러한 단절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후배가 스몰토크로 운을 뗐는데.
“이번에 0000 나왔는데, 아이디어가 정말 신선하더라고요!”
나는 무심코 이렇게 답했다.
“아, 나는 거기엔 관심이 없어서 잘 몰라.”
그 순간, 스스로 놀랐다. 그저 ‘모른다’는 사실을 전달한 말이었는데,
이 한마디로 대화의 흐름은 뚝 끊겼다.
호기심도 배려도 없는, 단절을 만드는 문장.
그다음을 이어가려면 상대의 추가적인 질문이나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는 거기서 멈춘다.
이 작은 예시는 우리 사회에서 호기심과 질문이 사라지는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끊는다’라는 표현을 생각 이상으로 자주 사용한다.
구독을 끊고, 팔로우를 끊고, 관계를 끊는다.
그에 따라 '손절'이라는 단어도 쉬이 사용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단어에도 ‘목숨을 끊는다’라는 표현도 쓴다.
단어가 주는 무게를 생각하면, 이 ‘끊음’이라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언어와 문장은 무의식적으로 사고와 감정에 영향을 준다.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이 ‘끊음’이라는 단어와 무관할까?
억지 같은 해석일 수도 있지만, 결코 허무맹랑하게만 볼 일만은 아니다.
'인간은 부정의 개념을 모른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때, 약 3년 전에 '사이먼 사이넥'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코끼리를 말고 다른 동물들을 떠올려보세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코끼리부터 떠올리게 된다.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것 말고'라는 부정이 뇌에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인지능력에는 이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끊는다는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변화된 모습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끊음’의 반대말을 찾아보면 ‘연결’이다.
연결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삶을 돌아보면,
삶의 의지가 강해지는 순간에는 '연결'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험한 생각을 이겨낼 힘이 되어준다.
사업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이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책임감을 만들어간다.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은 다시 나에게 에너지를 부여해 준다.
세상에 던지고 뿌려놓은 도전과 경험이 많을수록,
그것들이 나와 이어져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끈이 되어준다.
예전에 읽은 한 편의 동화 떠오른다.
선착장에 정박된 배를 묶어둔 굵은 밧줄 매듭을 푸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매듭을 풀기 위해 얽히고설킨 밧줄을 풀려고 했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았고,
마지막에 도끼로 내려쳐서 끊어낸 사람의 이야기였다.
사실,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생각을 달리하라!'였는데,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도끼라는 전혀 다른 외부의 도움 없이는 풀기 힘든 매듭.
‘매듭 자체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것은 그만큼 강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연결과 매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내 안의 나'였다.
서로 상관없어 보였던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연결하고
그것을 매듭지어 한 줌의 작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억지스러웠지만,
점점 더 많은 연결이 될수록 '하나의 나'를 발견할 듯한
희미한 빛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관계도 똑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을 연결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잘 묶으려는 시도는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가져왔다.
나와 함께 하려는 사람이 생기고 신뢰를 주고 있었다.
끊음보다 연결을, 흩어짐보다 묶임을 선택하며—
나는 오늘도 나만의 매듭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