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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준 Feb 21. 2023

하루키가 반한 위스키 성지 Islay

EP 02. 마을 표지판에 위스키 증류소가 적혀있는 아일라

제주도 1/4 크기의 작은 섬 Islay. 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스키 성지' 특히 '싱글몰트의 성지'라고 불린다. 아일레이 또는 아일라라고도 발음하는데, 현지에서는 '아일라'라고 발음한다. 영국에서도 한참 북쪽에 있는 인구 3,000명의 작은 섬이지만 이 섬에서는 위스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9개의 증류소가 년간 20,000,000L의 위스키를 만든다.

Bowmore

Ardbeg

Lagavulin

Laphroaig

Bruichladdich

Kilchoman

Caol Ila

Bunnahabhain

Ardnahoe

Port Ellen (1983년 문을 닫은 후 2023년 재오픈 예정)


아일라에 살고 있는 대다수가 위스키와 관련된 일을 한다. 그래서인지 증류소에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모두가 알고 지냈다. 아드벡 증류소에서 투어를 해줬던 친구도 '내 이모는 라가불린 증류소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다 보우머 증류소에 몰트맨인 이모부를 만나 결혼을 했어.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사촌은 지금 라가불린에서 일하고 있어!' 아일라의 증류소들과 함께 자라와서 그런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아일라 위스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마 아일라 증류소 자란 그들이 아일라 위스키의 살아있는 역사 아닐까?


내가 Islay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 한다면'을 읽고 난 이후이다. 당시 나는 위스키라는 술보다는 위스키를 마시며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위스키를 마시는 중에는 일상이라는 현재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루키의 책은 내가 평소 봤던 위스키 관련 서적과는 달리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즐기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 한다면'


나에게 Islay는 표지판이 '증류소' 이름인 곳


하루키의 책을 읽고 내 버킷리스트에 'Islay에서 위스키 마시기'가 오른 지 약 10년이 쯤 됐다. 뭐든지 한번 좋아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 브랜드 '아드백'이 있는 아일라를 가는 꿈은 당연했다. 그리고 10년이 동안 버킷리스트는 꽤 구체적으로 발전했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 마시다 만 위스키를 마시며 아침 준비하기

오후엔 청바지에 바버를 걸치고 바닷가를 산책하며 아드벡을 마시기

밤에는 한적한 곳에 있는 오두막 모닥불 앞에 앉아 책과 위스키로 밤을 지세기


2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잠시 시간이 났을 때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는 아일라로 떠났다. 런던에서 오전 일찍 출발했는데 아일라에 도착한 시간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두운 밤. 숙소로 가기 전 먹을걸 사기 위해서 Bowmore 마을에 들렀다. 차를 주차하고 처음으로 내린 순간이 공식적으로 아일라 땅을 밟는 첫 순간이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에 도착해 여기의 산소로 숨을 쉴 수 있는지 고민하는 탐험가처럼 숨을 참았다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큰 숨으로 내 폐 깊숙한 곳까지 아일라의 공기를 넣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며 '우와...'를 외쳤다.


'이게 바로 피트 향인가?'


아일라의 밤공기에는 혀 끝에 느껴질 것 같은 바닷가의 짭조름한 향을 머금고 있었다. 새벽 한강에서 맡는 공기보다도 수분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농도 짙은 공기였다. 그리고 증류소 근처여서인지 아니면 집들에서 태우는 나무 때문인지 공기 속에서 내가 위스키를 마시며 자주 맡는 스모키 한 향과 피트 향이 낫다. 조금이라도 이 향을 더 간직하기 위해서 마트 앞에서 새벽체조에 나오는 숨쉬기 운동을 반복했다.


첫날 나를 가장 설레게 한 것은 도로에 있는 '표지판'이다. 아일라에 있는 모든 증류소가 사실은 마을 이름이다. 내가 들린 Bowmore 마을도 'Bowmore 위스키 증류소'가 있는 마을이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표지판마다 내가 Bar에 앉아서 마주하던 위스키 이름들이 보였다. 보우머, 부리하이겐, 포트 엘렌, 아드백... 표지판을 보면서 내가 진짜 Islay에 있구나는 실감했다. Islay에 있는 동안 증류소 이름이 적혀있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느끼는 설렘은 끝까지 익숙해지지 못하고 왔다.


앞으로 아일라 여행기를 쓰면서 더 자세히 적을 거지만, 결국 나는 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모든 리스트를 했다. 하지만 아직 내 버킷리스트에 '아일라 방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버킷리스트는 '한 번쯤은 인생에서...'라고 하는데 이번 여행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아일라라고 생각하면 매. 우. 우울해진다. 그래서 나의 버킷리스트에 '아일라 여행'은 아직 안 지워졌고 조금 더 고도화 됐다.


아일라에서 위스키 마시기 → 좋은 사람들과 아일라 위스키 페스티벌에 함께 가보기


다시금 내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시금 아일라를 방문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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