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 하실래요?

우리가 되는 시간

by 기정

삼 년 전 이맘때 급작스레 제주에 갔다. 이유는 단지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는데, 친구에게 바다가 보고 싶다며 메시지를 보낸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닷가 사진을 전송한 기억이 난다. 숙소는 김녕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시국인지라 게스트하우스 이용객이 거의 없었고, 그 안에서 도미토리 이용객은 더더욱 없었기에 4인실을 혼자 쓸 요량이었다.


평일 늦은 오후, 한적한 제주의 도로를 누비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한 후 짐을 두고 월정리 해수욕장에 갈 계획이었다. 주인장의 친절한 미소, 간단한 인사말, 수건 두 장과 함께 안내된 방에는 2개의 이층 침대가 마주 보고 있었다. 그중 한 침대는 누군가 먼저 선점한 듯했다.



누가… 있네?



먼저 든 감정은 약간의 실망. 그리고 일일 룸메이트가 대체 누굴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그렇다고 방 안에서 기다릴 순 없었기에 일정대로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늦은 저녁 돌아온 숙소의 거실 한편, 넓은 좌식 탁자에 남녀가 둘씩 앉아있었다. 그중 남자 한 명은 체크인을 도와주었던 주인장이었다.



어서 오세요!



괜찮으면 같이 이야기 나누자는 제안에 응하였다. 흔쾌히, 기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구태여 혼자 있고 싶진 않았다. 때때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자리는 익숙한 지인들과의 자리보다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나이나 직업, 이름 등을 소개할 필요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함께였던 것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낯선 얼굴 셋. 그중 두 명은 2인실에 묵게 된 부부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바로 일일 룸메이트였는데, 앳된 얼굴의 그녀는 반갑게 나를 환영해 주었다. 거실에서의 자리는 금세 파하고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룸메이트와 나는 가방에서 짐을 뒤적거리다가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는데, 요점은 이대로 밤을 보내기엔 아쉽다는 것이었다.



맥주 한 잔 하실래요?



그녀가 봐 둔 Bar가 있다고 했다.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유일한 술집이라고. 이 한적한 동네에 Bar라니? 마음이 동한 나머지 얼른 나가자고 했다. 유일한 술집, Bar의 사장님은 예수님 머리를 한 인상적인 멋진 남성분이셨다. 그의 힙한 스타일에 가게가 매우 궁금해졌는데, 아쉽게도 인테리어는 보지 못했다. 그녀와 술집에 도착한 시간에 가게가 마감했기 때문이다. 셔터 내리는 Bar를 뒤로하던 우리에게 사장님이 이 시간에 운영 중인 다른 가게가 없을 거라는 팁을 주었다. 만난 지 두 시간 된 우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나보다 김녕에 하루 더 머문 그녀는 이틀간 알찬 시간을 보낸 건지 정보가 꽤 많았다.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입하여 김녕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다.


8월의 새벽 바닷가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방파제를 피해 엉덩이를 얹힐만한 담장에 자리 잡았고, 나란히 앉아 반짝거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풍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홀짝이다가 간간이 대화를 했다. 그녀의 나이, 나의 나이. 무슨 일 혹은 공부를 하는지. 대한민국의 어느쯤에 살고 있는지. 제주에는 어쩌다 오게 되었고 왜 하필 김녕인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뒤로 새벽 바닷소리, 그리고 그녀가 요즘 즐겨 듣는다던 적재의 타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고 했다. 마음만 맞는다면 다음날 일정을 함께하고 싶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쉬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고 훗날 서울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김녕에서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이 다음에 정말 만났냐, 하고 물으면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삼 년이 흐르는 동안 가끔 연락하며 언제 한번 꼭 보자, 주고받은 것도 족히 서너 번은 되는 것 같은데. 맥주 한잔으로 시작된 남남이 우리로 표현되기까지 약 몇 시간. 빈 방이 아님에 아쉬워하던 내가 다른 의미로 아쉬움을 번복하던 그 마음이 종종, 문득 생각이 난다.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 인연은 과거 그대로 추억이 된다. 언젠가 김녕에 다시 방문하고, 적재의 타투를 들을 때면 그녀와의 맥주 한 캔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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