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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육아맘의 속상한 마음.

각자의 역할.

by 키카눈넝


나는 생활비를 받아쓴다.


절약한다고 하며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을 사며 지내다 보면 어느새 며칠 전에 받은 생활비가 뚝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남편에게 슬며시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며 받아내곤 한다.

결혼하고 첫째 연두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은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두가 어느 정도 크고 몸도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돈을 벌지 않고 생활비를 받아써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생활비를 달라며 눈치를 보는 내 모습이 초라해지고 속상한 감정까지 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얼른 경제 활동을 해서 눈치 보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둘째 임신에 내가 설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없다. 그렇다고 또 집에 있기만 답답했던 나는 운동, 공방을 다니며 오히려 돈을 더 지출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나에게 눈치를 많이 주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치가 많이 보인다. 혼자 골머리 아프며 벌어온 돈을 나는 쓰기만 해도 될까 생각에 미안한 감정도 든다. 아마도 생활비를 받아쓰는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도 지금 이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내 생각을 바꿔야지 한다. 앞으로 2년, 2년간은 앞으로 태어날 둘째와 잘 자라주고 있는 첫째에게 집중을 하자. 우리 가족 안에서 현재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자. 그러고 나서도 늦지 않았다. 다시 사회활동을 하고 엄마 최연지만이 아닌 최연지로써의 삶을 다시 만들어 나가자 다짐한다.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나고 아마도 더 정신없는 육아를 하게 되겠지만 모두 흘러갈 시간들임을 겪어봐서 잘 알기에,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 든다. 우리 모두 다 파이팅! 우리 가족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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