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브랜드 기획자가 의미 있게 AI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 -1-
2023년 ChatGPT가 세상에 충격을 던진 이래, 온 세상이 생성형 - 대화형 AI라는 도구의 강력함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습니다. 브랜드와 마케팅 기획에도 이것이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기획과 스토리텔링, 브랜딩과 마케팅의 모든 과정에 AI를 통합하고자 시도하고 있고, 이미 이를 주제로 여러 권의 책도 나온 상황입니다. 신문기사들은 연이어 AI로 인해 생길 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 AI로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예술과 디자인, 작문과 기획이라는 영역에서 AI는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제는 'AI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브랜드 기획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입니다. 지난 2월 12일, OpenAI의 리더 샘 알트만이 도쿄대 강연에서 'AI 시대 인간의 역할'에 대해 말한 것도 그런 질문의 연장선상일 것입니다. 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계산기를 계산 능력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결과적으로 계산기를 통해 더 복잡한 수학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AI라는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인간에게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창의적 비전과 빠른 적응력, 주변의 모든 변화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저는 이러한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면서도,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간다운 감성과 창의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그냥 감성과 창의력으로만 인간다움을 규정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 듭니다. 이미 AI가 인간의 감성과 창의력마저 어느 정도 흉내 내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창의력'이라는 것이 사실은 데이터와 패턴의 조합과 변주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인간다워지자'는 말은 너무 멀리 있는 개념입니다.
반면, AI가 점점 더 강력해질수록, 대체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신의 일이 대체되어 정체성과 생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꽤나 실존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존에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야 할 수 있었던 일을 AI가 클릭 한 번으로 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비용이 인간보다 훨씬 적게 든다면, 그 가능성을 보고도 인간다움만을 믿고 AI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경영자들이 과연 있을까요? 이미 AI로 인한 실직이 시작되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AI가 가져다준 충격은 단순히 한 때의 유행을 넘어 산업 혁명 시기 기계의 발명과도 비견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AI가 기획자를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어렵고, 기획자가 AI에 의해 지배되거나 대체되기보다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미래가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기획자로서 AI에 대체되는 대신 AI를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먼저 과연 AI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AI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입력한 명령어를 해석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와 영상, 문장을 조합하는 형태로 동작합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대부분 이런 과정이 인간보다 월등히 빠르게, 그리고 매우 거대하고 광범위한 학습 영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어디까지나 '모범적 확률'의 산물입니다. 이는 단순히 현업에서 AI를 활용하며 생각한 '느낌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라, AI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AI는 거대한 데이터 속 엄청나게 작은 변수에서, 어떠한 언어나 이미지가 등장했을 때 그것이 어떠한 변수와 확률을 갖는가에 대한 패턴을 학습을 통해 알아내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트랜스포머나 피드백이나 모델 훈련이나 파인 튜닝 같은 것들이, 예컨대 ‘강아지’라는 이미지는 어떠한 데이터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무수히 많은 잠재 변수를 찾고, 회귀 분석을 통해 각 요소들의 확률을 정교화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이러한 확률은 완벽히 어떠한 단어를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입력하는 스크립트와 가장 가까운 확률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즉, “이 맥락에선 이런 데이터가 자주 사용된다”는 확률적 패턴을 근거로 문장이나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확률은 결국 인간의 평가에 의해 평균에 가까워지고, 그렇기에 이러한 계산 하에 나온 결론 역시 다소 '평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이미지나 텍스트의 영역에서는 그래도 완성도가 있기 때문에 놀라울 뿐이죠.
AI가 더 정교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은, AI가 보여주는 놀라운 학습 속도나 처리 능력 때문에 간과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인간의 지능은 그 정도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고, 현실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AI가 할 수 없는 직관이나 상상력 같은 방식으로 이를 훌륭히 메워내곤 했습니다. 앵거스 플레처 오하이오대 교수는 최근 저서 『고유지능』을 통해, 예외를 포착하는 직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상상력, 잘 된 것과 잘못된 것을 감지하는 신호체계로서의 감정 그리고 변화를 감지해 자신이 틀렸을 수 있음을 이하고 그 변화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상식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논리적으로 사고를 전개하는 것만이 '지능'의 범주는 아닌 것이죠.
이 관점에서 보면 GPT가 잘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들이 나눠지게 됩니다. 정보를 수집해 취합하거나, 내가 원하는 어떠한 개념들을 평균의 관점에서 구체화하는 일들, 즉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AI는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줄 수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을 쥐어주고 이에 맞는 질문지를 작성하고, 텍스트를 요약하고, 평균의 관점에서 기획이나 컨셉을 평가하고, 스토리를 작성하고 윤문 하며 번역하는 것, 무드보드나 영상, 페르소나 등을 만드는 일은 AI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새로운 관점이나 인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AI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리서치가 아닌 '최신 정보'를 리서치하라는 명령을 현재의 AI는 쉽게 하기 어렵습니다. 학습된 모델 바깥에서 웹 검색을 동원하더라도, 이들이 단순히 기사화된 것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를 탐지해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며, AI는 다소 평범하고 아주 약간은 뒤처져 보이는 정도의 리포트를 내놓을 겁니다. AI로 심리 상담 같은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 또한 잘못된 정보를 함유하고 있는 AI가 개인의 주관적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려주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창의적 미래 전략을 수립하라거나, 네이밍 크리에이션과 같이 상상력이 필요한 업무에서 AI는 놀라울 정도로 진부한 결과를 냅니다. 디자인이나 무드보드 시나리오 또한 보다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여기 써도 좋고 저기 써도 좋은 결과를 내놓는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특성은 AI가 ‘모범적 평균값’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AI는 인사이트를 도와줄 수 있고, 흩어진 데이터들 가운데서 패턴을 찾아 이를 인사이트로 정리해 줄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평소 이 분야에서 일할 때 필요한 직관, 혹은 평균 바깥에 있는 전략이나 개념을 쉽게 끄집어낼 수는 없습니다. AI가 도출하는 것은 결국 학습된 직관이자 상상력, 그리고 감정의 평균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구된 AI 활용 방식인 Verbalized Sampling은 이러한 확률성을 이용해 평균 바깥의 지점들을 끄집어내 '창의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방식인데, 이를 생각하면 AI가 인간과는 다른, 즉 확률이라는 방식으로 동작한다는 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혹자가 말하는 '동료로서의 AI'는 단순히 AI가 인간을 대신해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의미미가 아닐지 모릅니다. 창의적 확률을 끄집어내는 것이 인간의 역할인 이상, '인간에게 일을 시키듯 AI에게도 일을 잘 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일터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일 - 즉, 잘 설계된 학습과 업무 지시, 그리고 업무 피드백 등이 AI에게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AI의 학습 단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우리가 흔히 아는 'AI 환각 현상'입니다. OpenAI는 환각 현상을 놓고, '애초에 학습 과정이 잘못되어서 생긴 일'이라는 연구 결론을 낸 바 있습니다. 모델 학습과 훈련, 그리고 벤치마크 평가 과정에서 단순히 잘 대답한 문항의 비율만을 놓고 평가와 강화 학습을 했기 때문에, AI는 내가 모르는 부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도 일단 확률을 계산해서 그럴싸한 말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이죠. 최근에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모른다'라는 옵션이 추가가 되기는 했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AI를 사용할 때 한 번 더 그 내용을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해 온 일을 컨펌하는 것처럼, AI가 해오는 일 또한 비판적 시각에서의 컨펌이 필요한 것이죠.
업무 지시 능력 또한 AI 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단지, 과거 언어적인 지시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맥락이나 상황, 권위 등을 동원해 업무 구조를 짜 왔다면, 오늘날에는 '스크립트'라 불리는 언어적 수단만이 AI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스크립트를 만들어주는 AI도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사실 이런 자동화 스크립트도차도 결국은 인간의 의도를 최대한 분해해 이해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뼈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는 오늘날 LLM을 활용한 AI 서비스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데요, 예컨대 Lovable이라는 AI 웹디자인 서비스는 약 1000줄, 5만 자 정도의 프롬프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니, 에이전트 수준의 서비스를 위해 얼마만큼의 고려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스크립트에 대한 컨트롤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AI에게 어떠한 일을 시키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의도에 대한 해석과 재해석이 가미된 일을 주어지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 일을 전적으로 컨트롤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행여 수정해야 할 일이라도 생기면 한 두 마디 말로 끝나지 않게 되죠. 만약 우리가 복잡한 개념, 혹은 방대한 개념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면, 이를 시키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AI는 과거의 개념과 인식에 기반해, 내가 지시한 말에 얼추 들어맞는 듯한 평범한 무언가를 내놓는 데 그칠 것입니다.
확률에 기반해 움직이는 AI를 창의성을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해서는, 평균 바깥을 끄집어내기 위한 감각과 인사이트, 통찰력을 토대로 AI에게 일을 지시하고 가르치며 피드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업무 과정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내놓기 위해 협업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앞서 말했듯, 이것이 인간적 관계가 아닌 '언어'라는 한정적인 장치로 이루어질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관점을 다루고, 평균 바깥의 것을 생각하며 나아가는 일은 AI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AI도 평균을 뛰어넘는 답을 내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