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직구작가 Aug 25. 2022

아들로 살 것인가
남편으로 살 것인가

어머니와 아내, 두 여자 사이에서 괴로운 당신에게

 고부갈등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아마 아들과 남편의 역할을 수행 중인 남자일 것이다. 결혼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자기 눈앞에 펼쳐지게 되면 대개는 당황하거나 회피하고 싶어 한다. 엄마와 아내,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것도 너무 힘들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추는 게 맞을지 몰라 늘 고민하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현명한 남자는 두 여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모두에게 좋은 쪽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거나 애초에 갈등의 씨앗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처음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 한편에서는 결혼해서 아들이 변했다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결혼해서 (구)연인, (현)남편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서 서운함을 토로한다.

아들로서 남편으로서의 역할 가운데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말을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중간에서 이쪽저쪽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삼켜 흡수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가장 최고의 방법임을 알아두길 바란다. 고부간의 갈등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엄마에게 아내의 의견을, 아내에게 엄마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이실직고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감정적인 문제까지 첨가되어 대형 화재의 방화나 다름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것은 유치원생도 요즈음은 잘하지 않는다.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 교육받았고 실제 그런 행동들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결혼만 하게 되면 그 유치원생 본능이 깨어나는지 엄마에게 가서는 아내의 이야기를, 아내에게 와서는 엄마의 이야기를 자세하고 친절하게 하게 된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고 그 대가가 다소 심각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엄마에게도 아내에게도 해줄 수 있는 부분은 그저 들어주는 일이면 충분하다. 귀는 있고 입은 없어야 한다. 어떤 해명도 변명이 될 뿐이니 누구의 편을 들어서도 안된다. 자칫 아내 편을 들어준답시고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아들놈 키워놨더니 다 필요 없다’는 신세한탄과 눈총을 받을 것이고 엄마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거들었다가는 ‘이럴 거면 엄마랑 살지 왜 나랑 결혼해서 피곤하게 하느냐’는 말이 되돌아온다.

여자들의 하소연은 대게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데서 비롯되지 않는다. ‘내가 이만큼 노력하고 애썼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힘들다.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여자들이 말하는 하소연의 진짜 메시지인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자신이 능력자가 된 것 마냥 해결하려 여기저기 분란을 일으키고 다니면 결국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고부 사이에 아들과 남편의 1인 2역을 해야 하는 남자는 피곤하다. 두 여자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괜스레 긴장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그런데 대놓고 갈등하는 두 여자 사이를 눈치 없이 오갔다가는 정말 어느 한쪽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마는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 결론을 맞기 위해 우리가 결혼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으로 잘 살아보기 위해 선택한 결혼에서 가족 구성원이 방해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평소 자신이 주변에 무디고 관심이 없는 남자라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온몸의 감각세포를 일깨워 예민해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분명 아들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성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유의할 부분은 독립적인 정신력이다. 결국은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의 아내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른다 해도 어느 시기가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난다. 마치 당신처럼. 그런데 우리는 내 부모나 아이가 나와 한평생을 함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나와 함께 인생을 보낼 사람은 배우자이다.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은 성인이고 결혼도 했는데 정신이 아직 유아기에 머물러 부모에게 의지하고 특히 엄마가 의사결정권자가 되어 진두지휘하게 되면 결코 완벽한 성인이라 할 수 없다. 부모라는 항구를 떠나 망망대해로 나왔고 아내와 함께 배의 주인이 되어 항해를 지속해야 함을 명심하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는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부모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언이 되어야 하지 부모의 의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매달려서는 안 된다. 


한때 니트족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장성하여 취직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는 의욕 없이 부모와 함께 지내는 우리 세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부모가 맡아해 주었고 스케줄 관리부터 대학 진학은 물론 직장과 배우자 선정에까지 너무 많은 영역에 부모가 관여하여 생긴 우리 세대의 독립적이지 못한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니트족에 머물며 나이가 들어도 문제지만 결혼을 하고도 니트족이 지닌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툭하면 엄마를 찾는 것도 문제다. 

결혼했으면 성인이다. 엄마 찾지 말고 아빠 부르지 말고 둘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 아들이면서 남편이 된 남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의사결정권도 당신에게 있다. 부모님에게 자주 기대려는 부부는 결국 자식의 삶에서 머무르게 되며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 내가 정말 결혼을 통해 완성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자 한다면 항해를 하고 있는 배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았으면 한다. 부부는 인생에서 1순위가 되어야 한다. 부모나 자식이 우선순위에 있는 부부는 결코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없다.


아들로 살 것인가 남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엄마도 아들이 불행한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고 아내 역시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원치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일들이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고부 사이라면 그런 문제적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자주 있다. 때문에 아들이면서 남편인 남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융통성을 가지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힘든 말이지만 그것만이 살길이다.


엄마나 아내 둘 중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 편히 살고 싶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마음은 아니었겠지만 하다 보니 너무 지치고 고단하여 잡고 있던 두 개의 끈 가운데 하나를 놓아버리려 한다. 당장은 마음이 편하고 시원섭섭하겠지만 그 그늘이 평생 간다. 엄마는 천륜이고 아내는 내 나머지 절반이다. 천륜을 끊어내는 것도 절반을 잃는 것도 너무나 아프고 처참한 삶이기에 둘 다 놓지 않고 잘 보듬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익히 잘 알고 있다.  

   

내 주변에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처신을 잘하는 사람으로 최고를 꼽으라면 나의 남편 참 좋아 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남자 참 좋아 씨가 있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내 사이도 문제없이 돈독하게 잘 유지되었는지 모르겠다. 

참 좋아 씨는 딱히 눈치가 좋다거나 사교적이라거나 잔정이 많은 남자는 결코 아니다. 결혼하고 정말 놀랐던 사실 하나는 밖에서는 그렇게 장난꾸러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 냈던 그가 집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얌전하고 고요하게 살았다고 했다. 시어머니 역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라시는 눈치였는데 그의 철저한 이중생활은 내가 시어머니의 며느리가 되면서 모두 발각(?)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의 사회생활을 그렇게까지 모르실 수 있었을까 싶어 본인에게 사실 관계를 되물었는데 참 좋아 씨 대단은 간단했다.

“엄마는 조용한 사람이야. 봐서 알겠지만 우리 집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그래. 그렇다고 문제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성향이 고요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 근데 학교 나가서 친구들 만나면 뭐 딱히 고요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신나게 노는 거지. 밖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집에 오면 밥 먹고 금방 잠이 들어버리니까 엄마가 모르는 건 당연하지. 난 고요한 우리 집에 네가 가족이 되어 줘서 참 좋아. 활기가 있고 밝아지잖아?.”

시어머니는 아들의 낯선 과거 생활에 놀라워하시면서 동시에 반가워하셨는데 너무 말이 없고 무뚝뚝해서 밖에 나가서도 그렇게 지내는 건 아닌지 늘 걱정이었다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다른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그는 생각보다 얌전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다만 주체하기 힘든 장난스러움으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를 골탕 먹이려 들었는데 8살 때부터 봐 왔던 모습이라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매번 나는 소리를 지르고 그는 깔깔대는 영락없이 초등 저학년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결혼하면서도 딱히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이 오히려 나를 시부모님과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시부모님에게는 무심한 척 자상한 아들이고 아내인 나에게는 자상한 척 무심한 남편이라 기가 막힌 평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참 좋아 씨가 결혼하고 전에 없던 효자가 되어 시댁의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며 나를 채근했더라면 나의 성격상 청개구리 본능이 발동하여 일부러 어깃장을 놓았을 가능성은 100%이다. 원래 하려고 마음먹은 일도 주변에서 누군가 하라고 등 떠밀면 슬며시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더욱이 자기 주도적 성향이 강한 나는 더욱 그런 사람인데 참 좋아 씨는 그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명절과 양가 어르신 생신을 제외하고도 시할머니 생신, 조상님 제사, 당시 미혼의 시삼촌까지 나름 챙길 것이 많았던 일 년의 일정이 있었는데 참 좋아 씨는 모든 부분을 나에게 알아서 하라고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아니 결혼하기 전에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대부분이었고 엄마, 아빠 생신이나 겨우 동생이 말하면 같이 챙기고 그랬는데 결혼했다고 갑자기 집안 대소사를 다 알아왔던 사람 마냥 그러는 거 좀 웃기지 않아? 엄마도 우리가 다 일일이 알아두고 챙기는 거 별로 기대하지 않으실 건데 난 너한테 부담 주는 거 별로라고 생각해.”

시어머니에게는 어떻게 전달했을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의 말이 참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갑자기 어느 날 효자 모드로 변신해서 우리가 이제 나서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부모님께 물어 참석 가능한지 알려드리고 기타 등등의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나는 분명 맞받아 쳤겠지.

“나 앞세워 효자 코스프레하고 싶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럴 거면 혼자 살았어야지 왜 결혼해서 복잡한 일을 만드니? 효도는 셀프니까 알아서 하든가 말든가.”

하지만 그는 나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랬는지 나에게 전혀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부분이 나를 움직였다. 


효부 엄마를 보고 자란 딸답게 나는 내가 챙겨야 할 부분들을 잘 정리했고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시누이에게 물어 도움을 청했다. 알아서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경우가 옳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챙겨야 하는 며느리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남편이 먼저 나서서 채근하고 종용하는 것을 달가워하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지켜보고 믿어주는 마음으로 한동안은 아무 말 없이 아내를 응원해야 한다.


말은 없지만 큰 귀를 가진 남자와 결혼을 했더니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말이 많은 남자라도 경청의 자세가 되어있으면 훌륭하다. 내가 불편을 느끼거나 궁금하게 생각한 부분도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해준다. 쿨하면서 쿨하지 않은 기질을 가진 참 좋아 씨 덕분에 오늘도 우리 가정은 순항하고 있다. 결혼하고 10년을 살아오면서 딱히 고부갈등이라고 할 만한 문제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그의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참 좋아 씨는 늘 당부한다. 중간에서 남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라며 질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려운 문제는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어려울수록 몰두하여 해결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게 애쓰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어쩌면 너무나 쉬운 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덤벼보지도 않고 덜컥 겁부터 내어 달아나려 한다. 그래서 문제는 더 큰 문제를 낳고 다시 더 큰 문제를 낳는다. 하지만 끝이 없는 터널이란 없다. 분명 존재할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부지런해 노력하는 당신이 멋진 아들이자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시어머니와 스무 살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