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짧지만 길었던 일 년이 흐르고 한국에 오니 난 세상 특이하고 까다로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난 한국 대다수의 엄마들과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무던한 엄마는 아니게 되었다.
아기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약을 한가득 처방해주시길래 깜짝 놀라서 여쭤봤다 이것들 다 먹여야 되는 거냐고. 빨리 낫게 도와주지만 안 먹여도 안 낫진 않을 거라 하시길래 열 내리는 약만 먹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지금은 열이 없는데 혹시나 열이 나면 이 약을 먹이고 바로 전화 달라 말씀드렸다.그랬더니 다른 약은 없는지, 기침은 심하지 않고 콧물은 맑은 색이라 괜찮다는 답에도 왜 약을 안 먹이는지 더 심해질 수도 있다시며 한참을 얘기하시더니 그 삼사일 내내 하원 때마다 아기가 콧물을 흘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언제가 어머니가 아이 픽업을 간 날 어머니께 말씀하셨단다. 아이 엄마가 병원을 참 싫어하시나 봐요.
주말이나 어린이집이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산이며 공원이며 찾아다녔다. 그리고 서울에서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깨달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꼬불꼬불 한참을 돌아야 하는 지하철역들이 많았다. 어떤 곳은 환승하려면 아예 밖으로 나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버스는 더 난관이다.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버스도 많고, 버스 안에 유모차를 대려면 다른 손님 의자까지 침범하게 되어 부득이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 이용이 힘들지만 택시를 태울 수도 없다. 카시트 없인 차를 태우지 않는 것은 이 모든 것들보다 가장 유별나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보다 가장 힘든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퇴근시간 즈음 사람 많은 지하철역에서 몇 번 기다렸다 겨우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어르신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날 혼내셨다. 이 시간에 사람 많은데 왜 애기 데리고 돌아다니느냐고. 이것은 맘충이나 노키즈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기를 데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기에게 공장형 밀집 사육이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얻은 식재료를 먹이고 싶다.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환경에 대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확립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유기농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건강한 식재료를 택했다.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서 가능하면 늦게까지 간을 약하게 먹이려 노력했다.
이런 나의 노력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과자 맛을 알아버린 아기의 떼쓰기다. 어린이집에서 하나, 같이 노는 친구들이 먹는 걸 보고 옆에서 하나, 예쁘다고 어르신들께서 하나씩 아기 손에 쥐어주셔서 하나. 알레르기가 많아 식재료에 예민한 호주에서 겉핥기로 접했다 보니 내공이 없어 더 흔들리고 힘들었다.
여전히 이 외엔 무심한 엄마다. 이삼일에 한 번씩 겨우 청소를 하고, 집에는 그 흔한 전집 하나, 사운드북 하나 없다. 장난감도 많지 않다. 짧아져 배가 살짝 보이거나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아기가 그린 그림이 있는 옷도 그냥 입혔다. 놀이터에서 형들 따라 위험해 보이게 놀아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볼 뿐 크게 제재하지 않는다. 집안에서 아기가 서랍장을 타고 올라가도 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서랍장이 넘어져 아기가 다치지 않도록 했다. 비가 오는 날엔 비옷을 입고 나갔고, 추울 땐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갔다. 그리고 이미 까다로운 엄마에 더해 특이한 엄마가 되었다.
호주에선 내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충분히 제공되어 까다로워질 필요가 없었다. 맑은 공기와 충분한 야외활동, 육아환경, 약에 대한 접근 같은 것들. 반면 이것들이 한국에선 까다로운 엄마로 보였다. 나의 육아관이 바뀐 게 아닌데 어느 곳에 선 무심하게 보이고 어느 곳에선 과하게 보인다는 게 참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