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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소질

'E'가 대화하는 걸 보면 신기한 'I'

by 정기

MBTI가 'I'로 시작되는 나는 말이 적다. 내성적이라 말을 먼저 꺼내는 것도 잘 못한다. 배우자 H와 함께 있으면 주로 듣는 편이다. 반면, 'E'인 H가 저녁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고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할까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망원동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이사가 내게 유의미한 사건이 되게 한 것은 단골 족발집이 걸어서 3분 이내 거리로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배달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니! 대충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사들고 오면 그만인 행복의 순간을 일상에 장착한 것이다. 이사 후 처음 족발을 사 먹는 날, 에코백 하나 챙겨 어깨에 걸고 삼선 슬리퍼를 끌면서 시장에 있는 족발집으로 갔다.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께 말을 걸어보기로 한 다짐이 발걸음을 조금 들뜨게 했다. 여긴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장사를 하는데 그날은 아버지 사장님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족발 '아우' 하나 주세요."


아우는 중간 크기의 족발이다. 주문 후 용기를 내어 입을 뗐다.


"사장님 저 다시 이 동네로 이사 왔어요."


사장님이 들으셨는지 눈길 한 번 주신다. 더 말을 해야 할까? 그냥 끝내기도 이상하다.


"더 자주 올 수 있어요. 배달 안 해도 되고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내가 왜 이 말을 하고 있나?'


"네~에."


조금 긴 한 음절의 대답과 함께 아우 족발, 체크카드, 영수증을 건네주신다. 살짝 미소를 지으신 것 같기도 하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아, 족발집 사장님도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이구나!'




또 족발집에 갔다. 단골이니까 자주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H와 함께 갔다. 마침 족발집에도 여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안녕하세요."


H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여사장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신다.


"저희 여기 10년 넘게 단골인데 이 동네로 다시 이사 왔어요."


"그러세요? 이사 축하드려요. 어디 살다가 다시 오셨어요?"


"연남동, 성산동 살다가 다시 여기로 오게 되었어요. 동네가 많이 바뀌었네요."


"네 그렇죠. 그래도 여기 살기 좋아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시장도 가까워지고 편안해요. 사장님은 좀 스타일이 바뀌신 것 같아요?"


"그래요? 하하. 요즘 머리를 새로 기르고 있어요. 여기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새로 이사하셨는데 좋은 일 많이 생기길 빌게요."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이 정도의 대화가 H와 여사장님 사이에 오고 갔다.

대단하다. 신기했다.




새로 알게 된 동네 책방에 갔다.


"얘기해 볼 거야?"


가는 길에 H가 내게 물었다.


"하하, 글쎄."


책방에 들어갔다. 진열되어 있는 책과 책꽂이들, 작가의 책상으로 꾸며진 곳의 책과 소품, 돌멩이를 구경했다. 사려고 했던 책을 책장에서 찾아들고 계산하러 갔다. 책방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책과 카드를 건네드렸다. 카드가 포스기와 잠시 소통하는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말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 이번 6월에 하는 서울예술시민? 시민예술서울? (실제로 얘기했도 이렇게 버벅거렸을 것이다.) 서울시민예술학교에서 하는 작가님 수업 신청하고 찾아보다가, 이 동네에 책방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와 봤어요. 하하 반갑습니다. 네네. 하하. 수업 때 봬요. 네 그리고.... 아, 네.'


"여기 카드 있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곧 나의 선생님이 될 책방주인이 돌려주는 카드와 영수증을 받으며 혼자만 하던 머릿속 대화가 끊겼다.


"네, 주세요. 감사합니다."


카드를 지갑에 넣으며 책방을 나오며 H와 눈을 마주치고는 함께 싱긋 웃었다. 다음에 오면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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