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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03. 2017

여행에서 돌아왔다.

반지의 인사

   1월 어느덧 새해의 들뜬 기운이 쇠락할 즈음,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망원역 2번 출구 위에 발을 디뎠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돌아온 서울은 생각보다 추웠다. 서울인데 네팔의 안나푸르나가 떠올랐다. 정말 돌아온 것인가?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땅바닥과 발바닥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동네의 거리가 반가웠지만, 또 낯설었다. 거리 또한 내가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위에는 숨이 다 죽은 파카를 입고, 아래에는 다 해져 찬 바람에 펄렁펄렁 거리는 알라딘 바지를 입은 데다가, 겨울 공기와는 당최 어울리지 않게 까무잡잡한 얼굴의 남자가 등에는 꾀죄죄한 배낭을 메고, 앞에도 가방을 메고, 기다란 몽둥이 같은 것을 어깨에 걸친 채로 서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4년 동안 살았던 동네가 여행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점점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옆 햄버거 가게도 그대로였다. 버터 오징어를 파는 노점상도 그 진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거리를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의 얼어있는 표정은 1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왜 변한 게 없지?    


여행한 시간은 뚝 잘라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1년 전 떠날 때 들어갔던 그 지하철 출입구 앞에 턱 붙여놓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아 황망했다. 내가 다른 공간으로만 여행한 것이 아니라 시간 또한 다른 차원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여행이 깨진 달걀처럼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미끄러져 나가버린 듯했다. 아내와 어색한 웃음을 교환하고 무사귀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아내 뒤로 보이는 풍경이 슬펐다. 그래, 익숙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슬픔이 있었다. 이제 여행이 끝났다는 걸 동네의 풍경이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369일 만에 집 현관문을 열었다. 노란 햇살이 거실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마치 처음 방문한 손님처럼 멍하니 거실에 서 있다가 정신을 다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짐을 풀기 전에 방마다 문을 열어보았다. 침실의 침대를 보고, 우리 이불이 저런 무늬였군. 옷방에서, 우리 옷이 이렇게 많았나? 거기엔 1년 전 널어두고 갔던 빨래가 건조대에 그대로 널려 있었다. 시간은 잘려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매일매일 햇빛 또한 이 집을 드나들었고 1년 동안 햇빛을 받은 빨래는 그만큼 색이 바래어져 있었다. 바래진 옷을 보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여행했다는 사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집도 적지 않은 일을 겪었다.

여행이 늘어나고 늘어나서 1년이 되었지만, 처음 여행 기간을 6개월로 계획할 때 이 집은 남겨두자고 했다. 정말 긴 여행을 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돌려받은 전세나 월세 보증금까지 여행 경비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의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돌아와서 바로 직장을 다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지 않고 우리 두 몸 뉘어 잠잘 곳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여기서 여전히 유지되어야 할 게 있었다. 매달 나가는 세금과 보험금, 여행하기 위해 받았던 대출금의 이자도 꼬박꼬박 나가도록 해야 했다. 자동이체 통장의 잔액을 계산 정리하고 집에 놔두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장기여행을 하는 데는 여행경비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위한 유지비도 필요했다. 장기간 집을 비워두는 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그동안 우리 집을 작업이나 휴식을 하는 공간으로 쓰겠다는 아티스트 친구가 있어서 여행 중 집 관리를 부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비어 있는 집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고 그는 작업 공간을 얻었으니, 좋고 또 좋은 일이었다.     



여행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집을 사용하던 그 지인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먼저 여행은 순조롭게 잘하시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여행 중에 이런 소식을 전해 드려서 제가 다 송구스럽네요. 너무 놀라지는 마시고요.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했다. 빈집털이를 당한 것이다. 현관의 잠금장치가 부서져 있었고 옷장과 수납장이 열려 있었단다. 신고해서 경찰과 감식반이 와서 현장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가전기기는 그대로 있었지만, 원래 뭐가 있었는지를 모르니 물어보고 다시 경찰에게 피해품 신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빈집털이를 당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신혼 초반, 고향에서 첫 명절을 보내고 올라왔을 때 결혼 예물과 카메라를 도둑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유일하게 남은 것은 내 결혼반지 하나뿐이었다. 화장품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도둑이 그곳을 뒤질 생각은 못 했나 보다. 그리고 통장이나 중요한 문서들은 여행 가기 전에 부모님 댁에 맡겨 두었다. 가져갈 것도 없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후에 큰 피해는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의 도둑 역시 화장품 냉장고를 뒤질 생각은 못 했나 보다. 도둑도 허탕을 친 것이다.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여행 중에 그런 소식을 듣게 되자 놀라고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둑은 물론이거니와 경찰 감식반의 조사 또한 우리가 없을 때 우리 공간을 누군가 침범해서 뒤집어 놓았다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도둑은 이곳저곳을 다 파헤쳐 보았을 것이고, 경찰은 도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조사했겠지만, 그것이 우리에겐 검문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와서 책장의 책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산당 선언,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 에로티즘, 매저키즘..... 여기 사는 사람 뭐 하는 사람입니까?     


친구는 대답했다.  

   

그건 댁이 알 바 아니고, 도둑이나 잡아주세요.




다시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현관 앞에는 부채 두 개가 있었다. 집을 봐주던 친구가 6개월 후에 우리가 올 것으로 생각하고 무사귀환 선물로 마련해 둔 것이었다. 겨울에 갔다가 여름에 오게 될 테니 나름 날씨 적응을 고려한 선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6개월이 더 지난 후에야 돌아온 우리는 겨울에 그 부채를 선물로 받은 셈이 되었다. 쓸모와 상관없이 고마웠다. 주방의 냉장고에는 친구가 먹다가 남은 밑반찬이 있었고, 거실 책장에는 낯선 만화책이 몇 권 놓여있었다. 다시 집을 둘러보니 작은 변화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아, 반지!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화장대 앞에 섰다. 거울 앞에 조그마한 화장품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가운데 알이 살포시 박혀있는 은색 반지가 수줍게 빛을 발하고 있더군요. 혼자 '나이스'라고 외쳤답니다. 정작 저도 화장품 냉장고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몰라 한참 찾았습니다. 하하하, 아마 도둑도 그랬겠죠?

   

우리가 부탁했던 물건들의 안부를 확인해보고 메일을 보내줬던 친구의 말이었다. 친구가 화장품 냉장고를 열어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나이스라고 외치는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도 문을 열어보았다. 결혼반지 하나가 정말 수줍게 반짝이고 있었다.

    

안녕, 이제 돌아왔구나.   

  

반지가 환영 인사를 하며 찡긋 윙크하는 듯했다.

비로소 그 공간 그 순간이 실감되었다.


그래, 정말 돌아온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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