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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29. 2017

동네 골목을 걷는다

연남동 여행

여행 중에 우리가 꼭 하던 것이 골목 탐방이었다. 여행자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벗어나 이면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이 골목을 구석구석 거닐다 보면 그 지역과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였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동네 골목 산책이 여행하고픈 마음을 달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여행을 할 때 입었던 옷까지 입고 집을 나서면 집 앞 골목부터 바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의 감각을 살리는 일상의 사건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발견하게게 된 것도 아내의 골목길 산책에 의해서다. 나보다 훨씬 호기심이 많은 아내는 어디를 가든 낯선 길로 들어서는 것을 좋아했다. 망원동에서 살 때 혼자 산책을 갔다 왔는데 이쁜 길이 있었다고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음... 여기가 좋았어?


몇 달 후 아내와 함께 그 길을 구경하러 간 내가 물었다. 아내가 말을 했던 것만큼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도로의 중앙 분리대가 화단으로 되어있고 나무들이 줄지어 있어서 여느 골목길과는 다른 풍경이었지만, 화단에 재활용품들이 쌓여있어 지저분했고, 겨울을 맞이한 앙상한 나무들이 처량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무심한 반응에 아내가 억울한 말투로 대답했다.


전에 내가 왔을 때는 여기 나무들이 다 푸르고 날씨도 화창해서 햇살이랑 그림자가 드리우는 게 예뻤는데, 주변에 집들도 정감 있고 좋잖아.

그래 그랬겠네.

나중에 이 동네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알았어요. 나중에 또 와보자.


거기가 바로 '연남동 마을 시장 따뜻한 남쪽'이 열리는 길 공원길이 었다. 


마을 시장이 열리면 활기가 돋는다. 많은 사람들이 온다. 두어 차례 셀러로 참가한 적이 있는데, 물건이 팔리든 안 팔리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물건 중에 쓸 만 하지만 쓰지 않는 것들을 내다 파는 것으로 돈보다는 재활용와 나눔에 의미를 두었다. 시장에 앉아서 아이들 웃음소리도 듣고 사람 구경도 하고 동네에 사는 작가들의 재미있는 작품들도 구경한다. 마을 잔치를 즐기는 것과 같았다. 마을 시장에 참가했던 봄날, 벚꽃이 흩날리고 그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 골목에 앉아 있으면서'아 이래서 아내가 여길 좋아했구나.'라고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집 근처 골목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의자이다. 동네 할머니들이 날씨가 좋으면 나와서 앉아계신다. 의자들도 각양각색이다. 화려한 문양의 묵직한 목재 식탁용 의자가 있는가 하면 편의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도 있다. 어떤 의자는 집에 아이들이 있었는지 분홍색 등받이에 반짝이는 별 모양 스티커가 열댓 개 나란히 붙어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의자 옆에는 화분이 놓여있다. 어떤 집 벽에는 커다란 화분이 대여섯 개씩 있어서 깻잎과 상추, 대파, 방울토마토까지, 교외 어느 텃밭 못지않게 다양한 경작물이 심겨 있다.


일명'연트럴 파크'라 불리는 경의선 숲길 공원이 생기고 나서 동네 골목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공원과 바로 붙어있는 건물뿐만 아니라, 골목 깊숙이 있는 단독 주택들도 카페나 상점으로 개조된 것이 많다. 공사 중인 곳도 많아서 잠깐만 걸어도 여기저기 공사현장 가림막이 펄럭이는 것이 보인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오늘 본 골목 풍경이 내일이면 어느새 바뀌어 있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으로서 여러 감정이 든다.그 변화에 사라져 가는 것들이 아쉽기도 하다. 친구들이 온다면 동네의 좋은 곳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변해가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이 순간을 여러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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