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거지한 옷차림
어느 동네 방랑자의 바지
이 바지는 여행 초반 방콕에서 250바트를 주고 샀다.
믿기 어렵겠지만 원래는 진한 청록색이었다.
빨래를 할 때 마다 정말 할 때 마다 물이 빠졌다.
연한 황토색이 되고 나서야 탈색을 멈추었다.
떨어지고 깁고 떨어지길 반복해서
각설이같지만
입으면 자유분방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거지같아 보여도 남들 눈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를 쏴다니면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이 옷을 입은 날 보면 아방가르드한 거지같다고 했다.
그렇게 입다가 이제는
너무 많이 떨어져서 집 밖에선 도무지 입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잠옷으로만 입었는데
얼마 전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녀석을 걷다가 이젠 버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렸다.
안녕 아방거지바지야.
너의 가벼움에 난 즐거웠다. 아쉽지만 이제는
해질대로 해진 너와 헤어져야겠구나.
그래도 날 입었을 때의 자유로움은 두고두고 소환할 것이야.
그 여행같은 자유로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