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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Apr 06. 2017

낯선 소리가 들린다

호주에 가본 적은 없습니다만

음악은 힘이 세다.


음악은 벽을 넘는다. 보기 좋은 그림은 무언가에 가려지면 볼 수 없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벽을 넘어서 어디선가 들려온다. 어디인지 알지 못할 때도 음악은 우리에게 온다.       

        

나는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당신 자식을 가르치실 때는 속에서 천불이 나셨는지 가르치실 때마다 악보 지시봉으로 손등을 때리셨는데,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이 나빴다. 가느다란 것이 손등을 휙휙 거리며 치고 가는 게 아주 얄미웠다. 여하튼 바이엘 상권 앞 몇 장에서 내 피아노 경력은 끝이 났다. 그 후로는 악기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난 미술이 좋았다.       

        

바라나시에 오자마자 나는 더위를 먹었는지 몸살감기인지 몸이 으슬으슬하고 머리가 아파서 며칠간 방에만 있었다. 창문도 없는 방이라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머리에 찬물을 적신 수건을 얹고 누워 있으면 타다 타다 타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선풍기 소리만 들렸다.    

 

우웅~~~~~~~~~~~     


한 날은 숙소 방에서 쉬고 있는데, 선풍기 소리 말고 다른 소리가 들렸다. 바깥 어디선가 트랜스 뮤직 같은 음이 들려왔다. 인도에서 트랜스 뮤직은 흔히 들을 수 있다. 히피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일까. 명상음악과 전자음악이 혼합된 듯한 음악이 거리나 상점에서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건 누군가 음악을 틀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생음악이다.     


웅~~ 와웅~와웅 디웅지웅리웅디웅~~~     


소리가 더 다양하게 흘러간다. 중간중간에 베이스음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잠시 끊겼던 소리는 다시 길게 우웅 소리를 내면서 온 몸을 진동하게 만든다. 감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체 이 음악은 무엇인가.     

          



신병훈련소에 있을 때였다. 일요일 종교행사가 있던 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도 떡이 먹고 싶어 법당을 갔다. 지루하지만 교회나 성당처럼 여러 번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일이 법회 중에는 없었기 때문에 편했다. 그리고 선정이라는, 눈을 감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공식적으로 주어지기까지 한다. 군대에서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그날도 선정이라 불리지만 그냥 눈 붙이는 시간이 지나고 법사의 말을 청하는 청법가를 부르기 위해 모두 일어났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군대에서는 언제든 중간이 좋다고 법당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던 터라 누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단한 곡도 아닌 그저 법회를 위한 곡이었을 뿐인데, 그 피아노 소리를 듣자 가슴이 아렸다. 뭔지 모를 감정이 울컥 올라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빼고 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피아노는 보이지 않고 소리는 계속 흘러나왔다. 처연한 심정이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내게 피아노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한다. 어린 시절 듣던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동시에 그 피아노 강습 때문에 우리는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엄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을 떴다. 어디에서 나오는 소리지? 두통 때문인지 그 소리의 진동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몽롱한 정신에 우웅거리는 소리는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 마치 마술피리의 소리에 반응하는 쥐처럼 피곤한 몸을 일으켜 밖으로 슬그머니 나가보니, 홀에서 어떤 여행자가 기다란 통나무를 입에 대고 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홀에 앉아서 한국말을 하던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긴 머리에 앳된 얼굴의 친구였다. 소리가 변할 때마다 양 볼이 불룩해졌다가 홀쭉해졌다.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소리가 계속 나왔다. 신기했다. 뱃고동 소리 같기도 했고 레이저 광선이 발사되거나 전기가 흐르는 장면에서 나오는 효과음 같은 소리도 나왔다. 신기했다. 목청과 입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여러 가지로 변했다. 옆에서 가만히 감상하고 있다가 그의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악기냐고. 




              

"이건 뭐냐?"     


출국 심사대에서 심사원이 묻는다.     


"악기다."


"열어 보아라."


"오케이."     


기다란 주머니의 주둥이를 풀어서 꺼냈다.


심사원은 이리저리 살펴보고 한쪽 눈을 감고 나머지 눈으로 구멍 안을 들여다본다. 잘 안 보이는지 빛을 향해 들어서 다시 안을 들여다본다. 나의 표정을 살핀다.


'눈 쫙 찢어진 동양인이 무서우냐? 무슨 박격포라도 들고 비행기를 타게 생겼냐?'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인상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됐다. 지나가라."


"땡큐."   

  

다시 주머니의 주둥이를 동여매서 어깨에 걸치고 심사대를 통과했다.       

        

그것은 디저리두(Didgeridoo)라는 호주 악기였다. 디저리두는 그냥 속이 빈 기다란 통나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흰개미들이 자연 상태에서 속을 파먹은 유칼립투스 나무를 호주 원주민들이 다듬어서 만든 악기다. 그 나무를 입으로 불어서 연주한다. 입술과 혀, 목구멍 등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든다. 그 소리로 동물이나 새소리, 캥거루가 뛰는 모습 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악기지만,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는 연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여행을 하다 보면 디저리두 연주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바라나시에서 내게 디저리두를 처음 소개해 준 친구는 자기도 여행하면서 디저리두를 접하게 되었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다른 여행자들을 통해 연주하는 법을 배웠노라고 얘기했다. 어떻게 연주하는지 시연해주었고 한 번 해봐도 되냐는 내게 흔쾌히 디저리두를 건네주었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냥 분다고 소리가 나는 게 아니었다. 입술을 푸르르르 마찰시켜 소리를 내야 하고 더 당황스러운 것은 숨을 들이쉬면서 동시에 내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게 말이 돼?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었다. 디저리두를 연주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호주로 여행 루트를 바꿀까?'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디저리두를 여행 중에 만나게 되었고 나는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이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한참 동안 디저리두를 접할 기회는 없었다. 몇 달 후 트레킹을 마치고 네팔 포카라에 머물고 있다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포카라를 떠나기 전날 내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며 우리 숙소로 찾아왔다. 여기 포카라에서 디저리두를 파는 악기 가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날 바로 우리는 그 가게를 방문했고 그의 조언을 받아 마침내 난 디저리두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 고마운 여행자는 디저리두라는 여행의 또 다른 친구를 선사해주고 떠났다. 비록 호주 오리지널 유칼립투스 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에서 새롭게 느끼는 기쁨과 설렘으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이후로 디저리두 연주는 내 여행 중의 취미가 되었다. 말 그대로 나와 호흡을 함께했다. 디저리두는 다른 여행자들과 한 번 더 얘기할 기회를 주었고, 우리를 환대해 주었던 현지인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악기 연주로 보답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여행자에게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가장 좋은 시간은 연습할 때였다. 완전히 몰입해서 연주를 하다 보면 우선 호흡에 집중을 하게 되고 다른 잡념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가장 연습을 많이 했던 시기가 아내가 열흘간 명상센터에 들어가서 나 혼자 있었을 때였다. 난 디저리두를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명상한 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디저리두와 같이 걸었다. 숲 속을 지날 때면 높이 뻗어있는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았고, 드넓게 우거져있던 유칼립투스 숲 가운데에서 디저리두를 연주했을 때는 마음이 정말 평온했다.    

 

 '넌 비록 유칼립투스가 아니지만, 너의 친구들이다. 인사하렴.'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이런 얘기를 해주면서 연주를 했다. 연주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가만히 서서 그 소리를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감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숲과 함께 나눈 것 같아 즐거웠다. 어떨 때는 길이가 150㎝ 가량 되는 디저리두를 어깨에 메고 걷는 나를 보면, 다른 여행자들은 이 멀고 먼 힘든 길에 그 무거운 것을 왜 들고 왔냐며 의아해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뽀르께 에스 미 아미고."

'내 친구니까.'     


  그러면 멋지다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뭐라는 건지…. 너무 감상적이군.'이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서양인은 동양에 대한 환상이나 선입견을 품고 있었는지 기다란 디저리두를 보고 '그거 일본도 아니냐, 당신은 사무라이냐?'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파묵칼레의 여행사 직원은 그것 연주해보라며 싫다는 나에게 왜 부탁을 안 들어주냐고 불지 않을 거면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공항에서도 문제였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무슨 물건인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서 늘 보관용 주머니를 열어서 악기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독일의 한 공항에서는 수하물 중에 디저리두만 나오지 않아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불편함을 겪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악기를 연습하기 위한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카트만두의 숙소 옥상에서 연습할 때는 어떤 게스트가 그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아프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이스탄불에서도 숙소 이웃집에서 아줌마가 버럭 화를 내며 욕을 해댔다. 어떤 숙소에서는 키우는 개가 소리를 듣고 사납게 짖으며 다가와서 겁에 질려 연습을 멈추고 방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여행 동안 우여곡절을 함께 한 내 친구 디저리두와 나는 요즘 같이 잘 놀지 않는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후로 일이 바쁘다, 피곤하다, 이웃에 시끄러울지 모른다 등등 이런저런 핑계로 연습하지 않고 있다. 방구석에 디저리두가 가만히 서 있다. 오래간만에 디저리두를 입에 대본다. 숨을 불어넣는다.     


뿌부. 부붑 푹.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일상에서는 만사가 귀찮다. 열정 따위 낼 여력도 없다. 나는 더는 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자문하면서 울적해졌다. 내가 간절히 연주하고 싶었던 게, 그때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내가 불지 않는 이상 디저리두는 대답이 없다. 녀석은 늘 방 한구석에 저렇게 서 있지만 아직도 난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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