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편식

기억

by 현우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옛날 얘기를 나누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운동회 때 넘어졌던 일이나 선생님의 잔소리를 꺼낸다. 시험 기간에 먹었던 간식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이 방 안에 가득 차는 동안, 나는 조용히 웃으며 듣고 있었다.


그럴 때면 곁에 있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과 다르게 내 기억의 풍경은 너무 적막하다. 분명 같은 시간을 지나왔을 텐데, 아무리 애써도 그 시절의 일상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어떤 마음으로 학교와 집을 오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창가였는지 복도 쪽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점심시간에는 누구와 붙어 다녔는지,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던 오후가 있었는지. 비 오는 날 운동장 흙냄새가 있었을 것이고, 겨울이면 두꺼운 교복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던 날도 있었을 텐데. 가끔은 내가 정말 의식을 가지고 그 시절을 살았나 싶다.


생각해 보면 기억이라는 것은 상당히 편협하다. 별일 없던 날들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오래 붙들리지 않은 것이다. 마음이 크게 흔들렸던 순간만 뒤늦게 흔적을 새겼다. 평온했던 날들은 그저 조용히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러니 아마도 삶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기억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낯설다. 오늘의 맑은 날씨와 평범한 생각, 지금의 평온한 마음도 먼 훗날엔 기억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이 마음에 남았는지도 몇 년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장조차도.


그러고도 우리는, 기억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일들로 하루를 다 써버린다. 머지않아 잊힐 감정으로 서로 상처를 준다. 왜 결국 설명조차 잘 되지 않을 말들로 누군가와 다투었고, 오래 지나면 이름도 흐려질 일 앞에서 그렇게까지 억울해했을까. 왜 기억에도 희미해질 일을 붙들고, 왜 그렇게 오래 그 감정 안에 머물렀을까.


당시의 내 분노가 무엇 때문이었는지조차 흐려진다. 지나고 보면 쓸데없이 비장했다는 사실만 남는다. 굳이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됐다는 뒤늦은 이해다. 그리고 그 이해는,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한다.


그래도 그 늦은 이해가 조금씩 쌓인 탓인지, 요즘은 화가 치밀다가도 잠깐 멈추는 순간이 생겼다. 이게 몇 년 뒤에도 이만큼 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 한 박자가 생긴 것만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순간의 크기로 반응한다. 나중에 작아질 일을, 그 순간에는 쉽사리 작게 다루지 못한다. 그 말 한마디가 그날 하루 전체이고, 어떤 표정 하나가 기분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오늘이 영원할 듯, 지금의 아픔이 끝없을 것처럼. 어쩌면 그래야만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잊힌다고 해서 결코 가치 없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삶은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제 무게를 찾고, 잊힐 것과 남을 것이 그제야 제 자리를 가릴 뿐이다. 다만 우리는 그 답을 늘 한참 뒤에야 받아 든다.


기억이 끝내 건져 올리는 건 사건이 아니라 장면이다. 내가 기를 쓰고 붙들려했던 거창한 사건보다 무심한 말 한마디, 쓸쓸히 돌아서던 뒷모습 같은 것.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불쑥 얼굴을 내민다. 붙들려한 것은 사라지고, 붙들 생각도 없던 것이 남는다.


지금 이 소란스러운 하루도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

훗날 어떤 설명도 필요치 않은 표정 하나로 남으리라.


우린 지워지지 않을 마음으로 지워질 일들을 껴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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