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감 - #5 장승상열전(주창)

화려한 언변을 이기는 '투박한 직언'

by 최종병기

파트#1 사람을 얻는 마음의 온도 (Attraction & Humility)


"일을 하는 건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 일을 하게 만드는 건 따뜻한 사람이다."


차가운 계산기와 성과 지표가 지배하는 회사. 하지만 결국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건 사람의 손이고, 그 손을 움직이는 건 마음입니다. 2,000년 전, 능력 하나 없는 흙수저가 천하를 얻고, 패장이 적장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비결. 그것은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기술,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제5챕터. 장승상열전(주창) - 화려한 언변을 이기는 '투박한 직언'

(부제: 말 잘하는 사람은 이길 수 있어도, 진심인 사람은 이길 수 없다)


Step 1. 공감: 면접장을 얼어붙게 만든 '말더듬이' 개발자


개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팀을 셋업하는 한 팀장 K씨는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는 없고, 면접을 봐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팀원 한 명이 "정말 실력 좋고 진국인 지인이 있다"며 개발자 A씨를 추천했습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면접을 봤는데, 솔직히 첫인상은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A씨는 너무 긴장했는지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했고, 말도 심하게 더듬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실무 면접관들은 "기술은 좋은데 소통이 될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2차 면접에 들어간 임원(실장님)도 "이 사람은 힘들겠다"며 불합격 의견을 냈습니다. 팀장 K씨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으로 탈락시키려고 마음먹었었죠. 하지만 추천한 팀원이 끈질기게 K팀장을 설득했습니다.


"팀장님, 제가 보증합니다. 말은 좀 서툴러도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하고, 무엇보다 정말 성실한 친구입니다. 제발 한 번만 믿어주세요."


K팀장은 개발자 A씨를 한 번 더 인터뷰를 했고 그 인터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임원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수습 3개월 기간 동안 타이트하게 적용하고 검증하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모니터링하다가 아니라면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시죠."


그렇게 어렵게 합류한 A씨,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는 K팀장의 최고 '보물'이 되었습니다. 비록 말은 청산유수처럼 하지 못했지만, 묵묵히 코드를 짜고 동료들을 배려하는 그의 태도는 그 어떤 화려한 언변보다 빛났습니다. K팀장은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말 잘하는 것이 곧 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진국'들을 말주변이 없다는 이유로 놓쳤을까?"




Step 2. 사마천의 이야기: 형은 삶아 죽고, 동생은 목숨을 걸다


주창은 말을 더듬고 조리 있게 말하는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한나라 건국 초기부터 유방을 따른 최측근이자, 피로 맺어진 충신이었다.


과거 초나라 항우와의 전쟁 당시, 유방이 위기에 처하자 주창의 사촌 형인 주가(周苛)가 유방을 대신해 성을 지키다 포로가 되었다. 항우가 회유했으나 주가는 끝까지 유방을 배신하지 않았고, 결국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삶겨 죽는(팽형)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유방에게 주창은 '생명의 은인 가문'이자, 마음의 빚을 진 존재였다.


주창은 황제 앞에서도 눈치 보지 않는 '직설화법'의 대가였다. 어느 날, 주창이 보고를 하러 들어갔는데 유방이 애첩 척부인을 껴안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주창이 이를 보고 혀를 차며 나가려 하자, 유방이 장난기가 발동해 주창의 목을 껴안고 물었다. "내가 어떤 황제 같으냐?" 보통 신하라면 "성군이십니다"라고 했을 테지만, 주창은 정색하며 쏘아붙였다.


"폐하는 걸왕이나 주왕(각각 하나라와 은나라를 망친 폭군) 같은 임금입니다!"


유방은 그 말에 껄껄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놈만이 나에게 100% 진실을 말한다'는 절대적인 신뢰를 갖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유방은 자신이 총애하는 척부인의 아들(유여)을 태자로 세우려 했다. 본부인 여후(여태후)가 낳은 태자(유영)를 폐하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천재 책사 장량조차 황제의 고집을 꺾지 못해 전전긍긍할 때, '직언의 아이콘' 주창이 붉어진 얼굴로 나섰다.


"신은... 신은... 입이 둔하여 말을 잘 못합니다. 하오나... 하오나..."


유방은 주창이 또 무슨 독설을 퍼부을지 긴장하며 쳐다보았다. 주창은 답답한 가슴을 치며, 논리가 아닌 기세로 소리쳤다.


"하오나 신은... 태자 폐위가 결단코 불가하다는 것을 아옵니다! (기기지기불가, 期期知其不可!) 폐하께서 기어이 태자를 폐하신다면... 신은... 신은... 다시는 폐하의 명을 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말은 더듬거렸지만(기... 기... 지... 기...), 그 속에는 '형의 죽음'과 '폭군이 되지 마시라'는 피 끓는 충심이 담겨 있었다. 유방은 결국 껄껄 웃으며 고집을 꺾었다. 화려한 논리가 아니라, 목숨을 건 '진심의 무게'가 황제를 이긴 것이다.




Step 3. 지혜의 재해석: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함정


세상에는 두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귀를 즐겁게 하는 말(감언이설)'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을 울리는 말(충언)'입니다.

공자(孔子)는 논어에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 말을 교묘하게 잘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은 드물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장량 같은 천재 책사의 말만 들은 것이 아니라, 주창처럼 투박하지만 진심을 말하는 신하를 곁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직 생활을 하거나 인간 관계에서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에게 속아 넘어간 경험이 있을 겁니다. 회의 시간에는 현란한 업계 용어와 (우리 단어가 있음에도) 영어를 섞어가며 누가 들어도 맞는 것처럼 보이는 프레젠테이션을 해서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실체가 없거나 실행할 능력 없이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언변은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 '무능의 포장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끝까지 믿음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을 움직이는 건 화려한 PPT나 유려한 말솜씨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구현하기에는 어렵지만 여기까지는 틀림없이 해내겠습니다."

"이건 정말 위험합니다.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듣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말이 백 마디 미사여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또한, 주창이나 Step 1의 개발자 A씨처럼 말은 투박하지만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람들을 가려내는 안목도 중요합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법칙에 따르면, 대화에서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머지 93%는 표정, 태도, 목소리의 톤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결정합니다.


유방이 주창의 "기... 기..." 하는 더듬거리는 소리 뒤에 숨겨진 93%의 진심(붉어진 얼굴, 가슴을 치는 행동, 결기)을 읽어냈듯이, 진짜 리더는 귀가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사람을 봐야 할 것입니다.




Step 4. 마지막 한 수


혹시 지금 면접을 준비하거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말을 잘 못해서" 걱정하고 계신가요? 말을 잘하려고 꾸미지 마십시오. 대신 당신의 '진심'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십시오. 상대방은 바보가 아닙니다. 당신이 말을 더듬더라도, 그 안에 담긴 열정과 고민의 깊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리더라면, 화려한 말솜씨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말은 좀 어눌해도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 듣기 싫은 소리라도 용기 있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의 '주창'이자, 위기에서 당신을 구할 '진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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