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감 - #4 만석장숙열전(석분)

리더여, 제발 입을 다물어라

by 최종병기
사마천의 <사기열전> 속 인물들을 21세기 비즈니스 정글로 소환합니다. 현대 경영학 이론과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오늘 당신이 회사와 가정에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 '2,000년 전 꼰대'들이 날카로운 훈수를 둡니다.

사기(史記)로 삶의 통찰과 함께 나를 지키고 위로를 얻으세요.


파트#1 사람을 얻는 마음의 온도 (Attraction & Humility)


"일을 잘 하는 건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 일을 하게 만드는 건 따뜻한 사람이다."


차가운 계산기와 성과 지표가 지배하는 회사. 하지만 결국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건 사람의 손이고, 그 손을 움직이는 건 마음입니다. 2,000년 전, 능력 하나 없는 흙수저가 천하를 얻고, 패장이 적장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비결. 그것은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기술,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제4챕터. 만석장숙열전(석분) - 리더여, 제발 입을 다물어라

(부제: 잔소리가 멈추면 비로소 움직이는 것들)


Step 1. 공감: 당신은 '디테일'을 챙기는가, '숨통'을 조이는가?


한 스타트업의 대표 A씨는 스스로를 '디테일에 강한 리더'라고 자부합니다. 그는 모든 팀의 업무 진행 상황을 돋보기로 들여다봅니다. 보고서의 이메일 문구, 글자 크기, 보고서의 톤앤매너까지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원을 세워놓고 소리를 지르거나 전화로 윽박지릅니다.


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함께 호흡한다"는 명분으로 직원들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훔쳐보고(Hovering), 메신저 접속 여부까지 감시합니다. 모든 팀원들을 1시간 단위로 간트 차트를 만들어 관리하라고 지시하고 혹시 일정 준수에 리스크가 생기면 "메신저에 접속을 너무 자주 하시던데" 또는 "업무 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봤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매주 모든 팀과 소통을 위한 '위클리 미팅'을 잡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팀을 만나기에는 불가능한 스케줄 탓에 직원들은 하염없이 대기하다가 취소 통보를 받기 일쑤입니다. 정작 중요한 실무는 뒷전이고 대표의 이리저리 바뀌는 즉흥적 피드백을 처리하느라 야근이 일상이 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실무자보다 고민의 시간이 적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대표가 사사건건 간섭하니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거나 드랍되기 일쑤였고 실패의 책임은 고스란히 "시킨 대로만 한" 직원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 조직은 "어차피 바뀔 거, 대충 해서 넘기고 시키는 대로만 하자"는 패배주의가 만연해졌습니다.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을 가장 원했던 리더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력하게 그들의 주인의식을 말살시켜 버린 것입니다.




Step 2. 사마천의 이야기: 집안에서도 속옷 바람으로 다니지 않은 남자


석분(石奮)은 한나라 고조(유방)부터 4대의 황제를 모신 전설적인 원로 대신이다. 하지만 그는 딱히 뛰어난 지략가도, 용맹한 장수도 아니었다. 그가 난세에서 살아남아 가문을 일으킨 무기는 오직 하나, '경(敬, 공경하고 조심함)'이었다.


그는 네 아들을 모두 장관급(2천 석)의 고위 관료로 키워내, 가문의 녹봉을 합치면 만 섬(萬石)이 넘는다 하여 황제로부터 '만석군(萬石君)'이라는 존칭까지 받았다. 보통 이 정도 권세라면 목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석분의 처신은 기이할 정도로 정반대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기는커녕 마치 하인처럼 몸을 낮추고 조심했다. 보통 사람들은 집에 오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리를 뻗기 마련이지만, 석분은 집안에서도 옷차림과 몸가짐이 절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황제가 하사한 음식이 집에 도착하면, 황제가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반드시 관복을 갖춰 입고 절을 한 뒤에야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내가 아버지다"라고 소리치는 대신, 스스로를 극한으로 낮춤으로써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만들었다.


어느 날, 막내아들이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늦게 귀가한 일이 있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다 큰 놈이 술 먹고 주정을 해?"라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석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석분은 밥상 앞에 앉았지만 수저를 들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표정을 찌푸리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집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흘렀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사태를 파악한 막내아들은 웃통을 벗어 맨살을 드러내고(육단) 마당에 엎드려 사죄했다.


석분은 형들이 함께 용서를 빌자 그제야 짧게 "밥 먹자."고 하며 수저를 들었다. 단 한 마디의 잔소리도 없었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의 그 무거운 침묵과 평소의 행실에 압도되어 뼛속 깊이 반성했다.




Step 3. 지혜의 재해석: 침묵이 만드는 권위


사마천은 그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나 필요할 때 행동으로 보여주니, 집안과 나라가 그를 무서워하고 따랐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경영'이라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Step 1의 사례처럼 리더가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는 것을 우리는 '마이크로 매니징(Micro-managing)'이라고 부릅니다. 리더는 이것을 '관리'라고 착각하지만, 구성원 입장에서는 '방해'일 뿐입니다. 리더가 답을 정해놓고 감시하는 순간, 구성원들은 생각하기를 멈춥니다. 스스로 판단할 권한이 없으니 책임질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의 숙제를 페이지마다 검사하고, 입을 옷과 친구 관계까지 간섭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틀렸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주도성'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진짜 무서운 리더와 부모는 일일이 간섭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소 모범을 보여주며 사소한 것에는 관용하지만 정작 중요한 원칙이 무너졌을 때 '무거운 침묵'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람입니다. 석분이 "술 먹지 마라"고 백 번 잔소리했다면 아들은 뒤에서 몰래 마셨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여준 '말 없는 실망'은 아들의 수치심을 자극했고, 스스로 행동을 교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은 귀를 때리지만, 행동은 가슴을 때립니다. 당신이 보여주는 태도의 무게만큼, 상대방의 책임감도 무거워집니다.




Step 4. 마지막 한 수


혹시 지금 팀원의 모니터 너머를 기웃거리고 있거나, 방문을 닫은 아이가 공부는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지는 않나요? 불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불안을 '잔소리'로 해소하려 할수록 당신의 권위는 가벼워지고 관계는 멍들어 갑니다. 오늘 하루, 입을 닫고 지갑... 아니, '믿음'을 여십시오. 시시콜콜한 지적 대신,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원리는 같습니다.

"가장 훌륭한 리더는, 일이 끝났을 때 사람들이 '우리 스스로 해냈다'고 말하게 하는 사람이다."

노자의 말처럼, 당신의 침묵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 춤추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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