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에게 던진 "왕손(王孫)"이라는 이름표
사마천의 <사기열전> 속 인물들을 21세기 비즈니스 정글로 소환합니다. 현대 경영학 이론과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오늘 당신이 회사와 가정에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 '2,000년 전 꼰대'들이 날카로운 훈수를 둡니다.
사기(史記)로 삶의 통찰과 함께 나를 지키고 위로를 얻으세요.
"일을 잘 하는 건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 일을 하게 만드는 건 따뜻한 사람이다."
차가운 계산기와 성과 지표가 지배하는 회사. 하지만 결국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건 사람의 손이고, 그 손을 움직이는 건 마음입니다. 2,000년 전, 능력 하나 없는 흙수저가 천하를 얻고, 패장이 적장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비결. 그것은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기술,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부제: 사람을 바꾸는 것은 밥이 아니라 '존중'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의 주인공 한나(김아중 분)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뚱뚱한 외모 때문에 무대 뒤에서 다른 가수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섀도우 싱어'로 살아갑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채,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결심하죠.
하지만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짝사랑하던 프로듀서 상준(주진모 분)의 한마디였습니다. 비록 그녀의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상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보석"이라며 그녀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전신 성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그녀를 진정한 스타로 만든 것은 수술 칼이 아니라 그녀 안에 숨겨진 '가수로서의 자존감'을 알아봐 준 누군가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서툴고 부족합니다. 하지만 리더가 그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는 '만년 미운 오리 새끼'가 되기도 하고, '화려한 백조'가 되기도 합니다.
팀장 A씨는 팀원들과 소통할 때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비판은 둘이서 조용히, 칭찬은 모두 앞에서 시끄럽게."
실수나 성과 부족에 대한 피드백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차분하게 이야기하여 자존심을 지켜줍니다. 반면, 작은 성과라도 있으면 팀 미팅 때 동네방네 소문내며 "미친 듯이" 칭찬합니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니어 시절과 비교하면 저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입니다. 다만 머물러 있지 말고 경험이 쌓이고 본인이 노력한다면 나중에 나보다 훨씬 좋은 리더가 될 거야."
그저 빈말이 아닌 구성원을 세심하게 관찰한 후 진심으로 하는 말은 상대방에게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앞으로 더 대단해질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이 믿음이 생기는 순간, 구성원의 눈빛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한신(韓信), 그는 훗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고 천하를 통일한 일등 공신이자,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 불린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장군의 젊은 시절은 자신의 밥벌이도 하지 못하는 걸인에 가까웠다. 가난한 주제에 일할 생각은 안 하고 항상 긴 칼만 차고 빈둥거렸으며, 남의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탓에 이웃들도 그를 피해 다녔다. 동네 백정조차 그를 모욕하며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과하지욕)을 주었을 정도였다.
어느 날, 며칠을 굶어 기진맥진한 한신이 낚시터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한 노파가 그 꼴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신이 싸 온 밥을 나누어 주었다. 그 밥을 얻어먹은 한신은 기력을 차리고 감격하여 노파에게 말했다.
"어르신, 제가 나중에 성공하면 이 은혜를 천금으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버럭 화를 내며 한신을 꾸짖었다.
"사내대장부(大丈夫)가 제 입에 풀칠도 못 하길래, 내 그 꼴이 딱해서 왕손(王孫)에게 밥을 주었을 뿐이다! 내 어찌 보답 따위를 바라고 그랬겠느냐?"
누추한 한신을 '왕손'이라 지칭하며 했던 노파의 질책은 한신을 각성하게 하는 천둥소리가 되었다. 그는 즉시 은거하며 병법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파고들었고, 지형과 심리를 이용한 전술을 연마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후 초나라 항우 밑에서 말단 집사로 수모를 겪으면서도 적진의 배치와 약점을 낱낱이 파악하며 자신만의 '승리 공식'을 완성해 나갔다. 결국 유방에게 발탁된 그는 배수진(背水之陣)을 비롯한 신들린 용병술로 적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마침내 천하를 평정했다.
성공의 정점에 오른 한신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갔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녀에게 천금(千金)을 하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역사는 이를 두고 '일반천금(一飯千金, 밥 한 끼의 은혜를 천금으로 갚다)'이라 기록하며 그의 의리를 높이 샀다.
그러나 천하 통일 과정에서 한신은 유방이 위기에 빠졌을 때를 틈타 자신을 '가짜 왕(假王)'으로 봉해달라고 압박하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통일 후에도 자신의 공로를 지나치게 과시하며 황제의 심기를 수시로 건드렸다. 군사 전략가로서는 신(神)의 경지였으나, 조직의 생리와 정치적 겸손함을 읽지 못한 그의 미숙한 처세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비극으로 이어져 결국 반역죄라는 누명과 허망한 처형이 되고 말았다.
한신을 각성하게 했던 계기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밥버러지', '건달', '겁쟁이'라고 불렀지만 이 노파만이 유일하게 그를 '왕손(귀한 젊은이)'이라 불러주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렁뱅이 꼴을 하고 있는 한신에게 노파는 허리에 찬 긴 칼과 그 기상을 보고 그를 귀한 사람으로 대우해 준 것이죠. 노파가 준 것은 굶주림을 해결할 한 끼의 식사였지만 한신이 받은 것은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존중'이었습니다.
"너는 왕손처럼 귀한 사람인데, 왜 이러고 사느냐!"
이 질책 섞인 존중은 한신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성공)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이죠.
데일 카네기 역시 그의 저서에서 "상대방에게 훌륭한 명성을 붙여주어라(Give a dog a good name)"라고 강조했습니다. "자네는 지각대장이야"라고 낙인을 찍으면 그는 평생 지각을 하겠지만, "자네는 시간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신뢰의 아이콘이지"라고 명성을 붙여주면, 그는 그 명성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팀원에게 "너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팀원은 더 이상 '지시받는 부하'가 아니라 '미래의 리더'로서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연료는 돈도 아니고, 승진도 아닙니다. 바로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존중의 확인이죠.
혹시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아픈 손가락' 같은 직원 또는 동료가 있나요? 매번 실수하고, 의욕도 없어 보이는 그 사람에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능한 직원'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부터 그 꼬리표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지적하고 가르치기 전에, 그가 가진 아주 작은 장점 하나를 찾아내어 거창한 별명을 붙여주세요.
"OO님은 우리 팀의 '아이디어 뱅크'잖아요."
"팀장님의 꼼꼼함은 내가 본 리더 중 최고입니다."
상대방을 '왕손'으로 대우하면, 그는 반드시 '왕'이 되어 당신에게 보답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얻는 최고의 투자, '일반천금(一飯千金)'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