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감 - #2 관안열전(관중,포숙아)

나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안아주는 사람

by 최종병기
사마천의 <사기열전> 속 인물들을 21세기 비즈니스 정글로 소환합니다. 현대 경영학 이론과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오늘 당신이 회사와 가정에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 '2,000년 전 꼰대'들이 날카로운 훈수를 둡니다.

사기(史記)로 삶의 통찰과 함께 나를 지키고 위로를 얻으세요.


파트#1 사람을 얻는 마음의 온도 (Attraction & Humility)


"일은 잘 하는 것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 일을 하게 만드는 건 따뜻한 사람이다."


차가운 계산기와 성과 지표가 지배하는 회사. 하지만 결국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건 사람의 손이고, 그 손을 움직이는 건 마음입니다. 2,000년 전, 능력 하나 없는 흙수저가 천하를 얻고, 패장이 적장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비결. 그것은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기술,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제2챕터. 관안열전(관중과 포숙아) - 나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안아주는 사람

(부제: 계산하지 않는 믿음이 기적을 만든다)


Step 1. 공감: 당신에게는 내 편이 있는가?


한 회사의 경영 전략 회의 시간, 대표이사를 포함해 각 본부장과 실장급 리더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습니다. 사업의 진행 방향을 두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오갔죠. 팽팽하던 분위기는 대표이사가 한쪽 방향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자 급격히 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다른 방향을 제시했던 실장의 직속 상사(본부장)가 싸늘한 표정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김 실장, 왜 그런 의견을 내셨죠? 그건 우리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셨던 겁니까?"


상사의 비난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그 때까지 의견 없이 잠자코 있던 다른 조직의 본부장과 실장들도 기다렸다는 듯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약한 고리를 찾아낸 하이에나 떼처럼 논리적인 토론보다는 "감이 없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신공격성 비난이 난무했죠. 순식간에 한 사람은 '무능한 리더'로 낙인찍혔고, 회의실 안에서 완벽하게 고립되었습니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 난도질당한 실장은 참담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리더들의 마음속에서도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면 나도 저렇게 당하겠구나.'


무엇보다 그토록 매몰차게 몰아세운 본부장에 대한 당사자 실장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습니다. 본부장은 팩트로 부하 직원인 실장에게 건전한 피드백을 주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날 그가 잃어버린 것은 한 사람의 자존심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심리적 안전감'이었습니다.




Step 2. 사마천의 이야기: 뻔뻔한 친구를 위한 다섯 번의 변명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춘추전국시대, 관중(管仲)이라는 남자는 몇 번의 과오로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이슈메이커'였다. 반면 그의 친구 포숙아(鮑叔兒)는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인격자였다. 둘을 본 사람들은 늘 의아해했다.


"저런 훌륭한 포숙아 같은 사람이 왜 저런 파렴치한 관중 같은 자와 어울리는가?"


훗날 관중이 고백한 것처럼 그에게는 지우고 싶은 다섯 가지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관계가 단절되었을 일들이지만, 그때마다 포숙아는 관중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을 온몸으로 막아주었다.


【 첫째, 욕심에 대한 이해 】

두 사람이 젊은 시절 동업으로 장사를 했을 때다. 관중은 가난하다는 핑계로 자본금은 훨씬 적게 내고, 이익금은 포숙아보다 더 많이 챙겼다. 이를 본 사람들은 관중을 "도둑놈 심보"라고 욕했다. 하지만 포숙아는 웃으며 사람들을 말렸다.


"관중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네.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모셔야 할 노모가 계시지 않는가. 돈은 나보다 그에게 더 필요한 법일세."


【 둘째, 환경 요인 이해 】

관중이 친구인 포숙아를 위해 어떤 일을 도모하다가 크게 망쳐서, 오히려 포숙아를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무능해서 일을 그르쳤다"고 비웃었다. 포숙아는 고개를 저었다.


"관중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네. 단지 시운이 따르지 않아 결과가 나빴을 뿐이야. 사람의 능력은 한 번의 실패로 판단할 수 없다네."


【 셋째, 역량에 대한 신뢰 】

관중은 세 번이나 벼슬길에 올랐으나, 세 번 모두 군주에게 쫓겨났다. 군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그를 세상은 '무능력자'라 불렀다. 포숙아는 단호했다.


"그가 무능해서 쫓겨난 게 아닐세. 아직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주군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 넷째, 개인적 가치의 존중 】

관중은 전쟁터에 나가서도 북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도망치기 일쑤였다. 세 번 참전해서 세 번 모두 도망쳤다. 세상은 이번에야말로 그를 의심할 수 없는 '비겁한 겁쟁이'라고 조롱했다. 이번에도 포숙아는 그를 감쌌다.


"관중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닐세. 자신이 죽으면 홀로 남을 늙은 어머니를 걱정해 몸을 사리는 것뿐이야. 그의 용기는 효심 뒤에 숨어 있다네."


【 다섯째, 비전에 대한 공감 】

주군이 싸움에 져서 죽자 동료였던 소홀은 따라 죽었지만, 관중은 비굴하게 살아남아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었다. 남들은 "모시던 주군을 따라 죽지도 못한 비겁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포숙아는 이렇게 말했다.


"관중은 죽음이 두려워 구차하게 산 게 아니라 작은 의리에 얽매여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할 뿐일세. 그는 더 큰 뜻을 위해 치욕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결국 포숙아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제나라의 왕 환공은 과거 패권을 다투며 상대국의 주군이었던 자신에게 활을 쏘았던 관중을 죽이려 할 때, 포숙아는 "천하를 얻고 싶다면 이 사람을 쓰십시오"라며 목숨을 걸고 그를 천거했다. 그리고 자신이 재상이 될 수 있었음에도 기꺼이 관중의 밑으로 들어가서 그를 위해 일을 했다.


훗날 제나라를 천하 제일의 강대국으로 만든 관중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눈물 젖은 고백을 남겼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짜로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숙아 -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兒)


세상 모두가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보고 그를 비난할 때, 포숙아는 그 이면에 숨겨진 '맥락'과 '가능성'을 읽어주었다. 그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못난이는 역사를 바꾼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Step 3. 지혜의 재해석: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남기는 것이다


앞선 회의실의 풍경은 비단 회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다툴 때를 떠올려 볼까요? 상대가 늦거나 실수를 했을 때, 우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의 포문을 엽니다. "너는 항상 그래",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팩트로 상대를 제압하고, 논리로 내 말이 맞음을 증명하려 애를 쓰죠. 부모와 자식 사이는 또 어떤가요. 아이가 성적표를 받아왔을 때, 성적이 떨어진 이유나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읽기보다는 "공부를 안 하니까 그렇지", "옆집 누구 좀 봐라"라며 결과만 두고 난도질하곤 합니다.


우리는 흔히 팩트와 논리로 상대를 이기는 것을 '똑똑함'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승리가 과연 사람을 남길 수 있을까요? 비난을 당한 연인은 입을 다물고, 상처받은 아이는 방문을 걸어 잠그죠. 논리적으로는 당신이 이겼을지 몰라도, 관계적으로는 완벽하게 패배한 것입니다.


"비난은 본능이고,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는 지성이고, 아무나 할 수 없다."


포숙아의 위대함은 관중의 겉으로 드러난 실수(가시)를 보지 않고, 그 속에 숨겨진 부드러운 속살(사정, 의도, 마음)을 보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친구의 가난을 탐욕으로 오해하지 않았고, 실패를 무능으로 단정 짓지 않았습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거장 칼 로저스(Carl Rogers)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받는다고 느낄 때(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비로소 변화하고 성장한다"


반대로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 '존재의 수용'이 거절당할 때입니다. 관중을 천하의 재상으로 만든 것은 그의 뛰어난 지략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너를 욕해도,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믿는다"는 포숙아의 심리적 안전판 덕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조직, 당신의 가정, 그리고 당신의 사랑은 지금 비난으로부터 안전하신가요?




Step 4. 마지막 한 수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관중'이기를 원하면서, 정작 남에게는 '포숙아'가 되어주기를 주저합니다.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해 주는 것, 그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인데도 말이죠. 오늘, 당신 곁에 있는 동료, 연인, 혹은 가족이 실수를 하거나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혀를 차거나 비난의 화살을 쏘기 전에 딱 3초만 멈춰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비난 대신 이렇게 한번 말을 건네보세요.


"당신에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내가 도울 일이 있어?"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를 알아주는 것(知我), 그것이 사람을 얻는 첫 번째 기술입니다.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믿음은 그릇이 큰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특권이니까요. 비록 실수를 한 동료나 부하 직원이 있더라도 당신이 그의 포숙아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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