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말 위에 올라탄 것

내 능력으로 착각하지 말 것

by 최종병기

실패를 겪고 있거나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에게 우리가 가장 쉽게, 그리고 다소 무책임하게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부딪혀서 이겨내면 되잖아."


자신의 과거 성공 사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나 때는 말이야, 맨땅에 헤딩해서 다 이겨냈어"라고 훈수를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성공이 온전히 본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짧은 웹툰


과거 우연히 본 'On a Plate(접시 위에 담겨진)'라는 제목의 짧은 만화를 보고 저는 머리를 '댕'하고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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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두 명의 아이, '리차드'와 '폴라'의 삶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리차드는 부모의 넉넉한 지원과 인맥 덕분에 장애물 없는 탄탄대로를 달립니다. 실수를 해도 부모가 막아주고, 좋은 대학에 가고, 부모 지인의 회사에 쉽게 취직합니다. 반면 폴라는 집안일을 돕고 아픈 부모를 돌보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학자금 대출 빚에 허덕이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느라 기회조차 얻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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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차이가 점점 벌어진 둘, 결말에서 성공한 리차드가 파티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남에게 뭐 달라는 소리가 제일 싫어. 아무도 나한테 거저 준 건 없다고. 난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

그의 뒤로 묵묵히 서빙을 하는 폴라가 보입니다. 리차드는 자신이 누려온 그 모든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임을 전혀 모르는 것이죠.


자녀를 사랑하고 지원해주는 집안에서 사회가 제공하는 제도권을 교육 잘 받고 사회에 나온 저 또한 수혜자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본 풍경


물론 위 웹툰은 빈부 격차가 커지고 태어나며 입에 문 수저에 따라 빈자들의 경우 소위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 위한 목적이긴 하지만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의 압도적인 자본, 좋은 팀원, 훌륭한 시스템이라는 명마(名馬) 위에 올라타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말이 달리는 그 빠른 속도를 자신의 달리기 실력이라고 착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대기업이나 특히 잘 나가는 플랫폼 기업 출신들에게서도 종종 보게 됩니다. 지난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조직 안에서 체득한 성공의 방식들을, 환경이 전혀 다른 새로운 회사에 와서도 그대로 이식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회사에서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습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성공 경험이 어떤 상황에서든 통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그때의 성공은 소속한 거대한 플랫폼이라는 '엔진'과 막강한 '지원 사격'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나를 떠받치고 있는 엔진이 크면 착시가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겸손, 성공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힘


그리고는 척박한 땅에서 맨몸으로 뛰고 있는 사람, 혹은 병든 말을 타고 힘겹게 가는 사람에게 소리칩니다.


"왜 나만큼 성과를 못 내?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래."


물론 성취에 노력은 필수불가결하지만, 내가 성공했다고 믿는 과거의 방식, 내가 누렸던 그 환경들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듯 주어진 '운'의 요소 또한 크게 작용합니다.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지금의 성공 방정식이 내일은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png 토스 이전 8번 실패했다는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끈기를 강조한다.


토스(Toss)의 이승건 대표도 지금의 성공 이전에 무려 8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끈기를 강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운의 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성공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나의 성취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 시의적절한 운, 그리고 튼튼한 시스템이 받쳐주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잘못했다고 무작정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그가 서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시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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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말이 빠르다고 해서, 내 다리가 튼튼한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 내가 올라탄 말(시스템)에 감사하되 그 속도를 내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겸손함을 바탕으로 진짜 나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는 것. 그것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짜 태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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