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보낸 시간
2월 23일, 월요일
우리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1초에서 0.4초 사이입니다. 그 짧은 찰나를 다시 열 조각으로 나눈 시간, '0.01초'.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인지할 수 없는 이 무(無)에 가까운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를 건 사투의 현장이자, 신령한 성역입니다.
대한민국 육상의 자존심, 김국영. 그는 31년간 멈춰있던 한국 육상의 시계를 다시 돌린 영웅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0.01초라는 벽 앞에서 가장 처절하게 울어야 했던 사내이기도 합니다.
한국 육상의 단거리 기록은 오랫동안 1979년에 멈춰 있었습니다. 당시 서말구 선수가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10.34초라는 대한민국 신기록은 무려 31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철옹성이었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한국인의 100m는 그 지점에서 단 0.01초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거대한 정적을 깨고 2010년, 10.31초를 기록하며 한국 육상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김국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의 시작인 동시에, 자신과의 지독한 굴레가 시작된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100m 트랙 위에서 시속 36km로 질주하는 선수들에게 0.01초는 거리로 환산하면 고작 10cm 내외입니다. 성인 남성 손바닥 한 뼘 조차도 안 되는 길이. 그 한 뼘이 올림픽으로 가는 문을 열기도 하고, 차갑게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김국영은 2021년 도쿄 올림픽 당시, 기준 기록인 10.05초에 단 0.02초가 모자라 출전이 좌절되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달려온 결과가 고작 '한두 뼘' 차이로 부정당했을 때의 참담함을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칭호를 가졌음에도, 올림픽 무대라는 꿈의 입구에서 그 미세한 두 뼘의 격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 한 뼘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김국영이 보낸 시간은 실로 가혹합니다. 2010년 서말구의 기록을 깬 이후, 현재의 10.07초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17년 넘게 트랙 위에서 자신을 갈아 넣었습니다.
2010년: 10.23초 (31년 만의 신기록)
2015년: 10.16초 (자신의 한계를 넘기까지 다시 5년)
2017년: 10.07초 (대한민국 역대 최고 기록)
10.23초에서 10.07초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은 7년. 그가 7년동안 피를 토하며 단축한 시간은 고작 0.16초입니다. 1년에 고작 2cm를 더 빨리 나가기 위해 그는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각도를 수만 번 수정하고, 근육의 질감을 바꾸기 위해 식욕을 거세하며, 숨을 쉬는 타이밍조차 기계처럼 설계했습니다. 0.01초를 줄이는 것은 단순히 '빨리 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0.01초용으로 재조립하는 고독한 연금술이었습니다.
1991년생인 김국영은 이제 서른여섯의 노장이 되었습니다. 육상 단거리 선수에게 이 나이는 '에이징 커브'라는 잔인한 중력과 매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함께 트랙을 누비던 동료들이 지도자의 길을 걸을 때, 그는 여전히 가장 먼저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매고 스타팅 블록 앞에 섭니다. 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불가능이라는 단어조차 0.01초의 차이로 따돌리기 위해 매일 아침 트랙의 흙먼지를 마십니다.
서른여섯의 선수가 여전히 "나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 전력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거대한 승리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늘 기적 같은 도약을 꿈꾸지만, 삶은 대개 김국영의 레이스처럼 지독한 정체와 미세한 진보의 반복입니다.
어제보다 딱 한 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내 마음의 벽에 0.01초만큼이라도 균열을 내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김국영의 뒷모습은 말해줍니다.
비록 화려한 메달이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0.01초라는 벽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늘도 트랙 위에 서는 그의 질주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만의 트랙 위에서 한 뼘의 진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신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우리의 레이스도, 김국영처럼 끝내 '현재 진행형'이어야 하니까요.
※ 이미지 출처
① 30대에도 9.99초 도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4377
② 서말구 https://www.yna.co.kr/view/AKR20151130055351007
③ 도쿄 올림픽 100미터 결승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8018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