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 진짜 멈춰야 하는 이유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대개 '속도'와 '효율'입니다. 남들보다 빨리 결과물을 내고 도달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이라 믿으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그 '속도'에 대한 집착이나, 지금까지 쏟아부은 '비용'이 눈을 가려 일의 진짜 본질을 놓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한 중견 기업의 전략기획본부장인 A씨가 회사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끌 때의 일입니다. 이미 60억 원이라는 큰 돈이 투입된 상황이었죠. 하지만 판을 까보니 협업 파트너는 사기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있었고, 외주 개발 업체의 퀄리티와 납기 준수율은 처참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의 기로에 선 대표에게 A씨는 직언했습니다.
"대표님,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이미 쓴 60억은 뼈아프지만, 지금까지 나온 산출물이라도 최대한 건져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활용해야 그간의 노력과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표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60억이 얼만데!" 결국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0억을 더 태웠고, 결과는 모두의 예상대로 90억 전체가 허공으로 증발해 버리는 대참사로 끝이 났습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데는,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 큰, 뼈를 깎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57년 전 오늘, 프랑스 툴루즈 상공에서는 인류 기술의 집약체라 불리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가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콩코드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이미 57년 전 현재 일반 여객기보다 약 2.5베 빠른 마하 2.0의 속도로 파리에서 뉴욕까지 단 3시간 만에 주파했습니다. 아침에 파리에서 크루아상을 먹고 뉴욕에 도착해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썰 수 있는 '꿈의 비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영광 뒤에는 지독한 '소음'과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적자'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숨어 있었습니다.
추가 30억을 더 태워 총 90억을 더 날렸던 대표님이 앓았던 불치병의 이름이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콩코드 오류(Concorde Fallacy)'입니다. 이미 들어간 비용(매몰 비용)이 아까워서, 실패할 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결국 더 큰 손해를 보는 현상이죠. 영국과 프랑스 정부 역시 콩코드가 상업적으로 실패할 것을 진작에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쏟아부은 개발비와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 프로젝트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박명수 형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만둬라.(혹은 당장 시작해라.) 우스갯소리 같지만, 여기엔 '본전'에 눈이 멀어 30억을 더 태우는 수렁에 빠지지 말라는 지독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간지 폭풍의 말을 했다죠. 콩코드의 상업적 실패는 뼈아팠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첨단 항공 기술은 훗날 유럽의 '에어버스(Airbus)'가 세계적인 항공사로 도약하는 거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실 본부장 A씨가 대표에게 "남은 산출물이라도 건져 새 제품을 만들자"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니체의 극복과 같은 맥락이었겠죠. 중요한 건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잘못된 길임을 알았을 때 멈출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실패의 잔해에서 무엇을 건져 올리느냐'입니다.
여객기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소리보다 빨리 날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을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콩코드는 '속도'라는 수단에 집착하느라 대중교통이라는 '본질'을 잃었고, 결국 추락했습니다.
최근 40~50년 동안 여객기의 속도는 단 1%도 빨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속도를 시속 900km에서 1,000km로 겨우 10% 올리기 위해, 연료는 30~40%를 더 쏟아부어야 합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LA에 30분 일찍 도착하려고 수천만 원의 기름값을 더 쓸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우리의 삶과 업무도 비슷합니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해야 한다는 강박, 지금까지 투자한 내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미련에 매몰되어, 정작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 '본질'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 남들보다 조금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거나 놓지 못하는 미련 때문에 괴롭다면, 콩코드의 교훈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무모하게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낫고, 잘못된 길임을 알았을 때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당신을 진짜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 참고 : 서울 ↔ LA 여객기 속도 변천사
비행기는 계속 빨라졌을 것 같지만, 사실 인류의 여객기 속도는 1960년대에 이미 성장을 멈췄습니다.
① 1930년대 (프로펠러 시대):
순수 비행시간만 30시간 이상. 태평양 섬마다 내려 며칠씩 주유를 해야 했습니다.
② 1950년대 (피스톤 엔진 절정기):
약 18~20시간 소요. 구름 위를 날게 되었으나 여전히 앵커리지 등을 경유해야 했습니다.
③ 1960년대 (제트 엔진 혁명기):
약 11~13시간 소요. 터보 제트 엔진 장착으로 10년 만에 속도가 80% 수직 상승합니다.
(현재와 비슷한 비행시간 달성)
④ 1970년대 (콩코드의 일탈): 마하 2.0으로 비행. (서울-LA를 날았다면 약 4시간 반 컷)
⑤ 1980년대~현재 (속도의 정체기):
약 11시간 소요. 50년 전 보잉 707이나 현재의 최신형 A350이나 순항 속도는 시속 900km 언저리로 똑같습니다. 항공업계가 '속도' 대신 '효율'이라는 본질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① 헤어질 결심 : 나무 위키 "헤어질 결심"
② 콩코드 여객기 : 위키피디아 "콩코드 여객기"
③ 박명수 : https://blog.naver.com/insightexplorer/222612750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