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덩이 다리로 일어선 거인

4.5kg의 고통을 극복한 루스벨트의 취임사

by 최종병기

2026년 3월 4일,

요즘 뉴스를 틀면 바다 건너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허한 기행과 요동치는 국제 정세 때문에 세상이 참 어지럽고 피곤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글로벌 사건 사고들을 지켜보다 보면, 위기의 시대에 국민을 안심시키고 하나로 묶어내던 '진짜 리더'의 품격이 몹시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거창한 국제 정세를 논하기엔 당장 제 현실이 너무 찌질합니다. 며칠 전, 거실을 걷다 소파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정통으로 찧었습니다.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고, 퉁퉁 부어오(를 것 같은)른 발가락을 부여잡은 채 ‘아, 오늘 출근은 틀렸어. 재수도 지지리도 없지~’라며 비련의 주인공 행세를 했죠.

고작 새끼발가락 하나 다쳤을 뿐인데 저의 하루는 완벽하게 마비되었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이란 이토록 하찮습니다.




1. 고통을 넘어선 거인


93년 전 오늘, 1933년 3월 4일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제32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미국은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고 전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방관적 정책으로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으며 수천만명이 길거리에 앉게 된, 미국 경제가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게 됩니다.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롭던 절망의 시기, 단상에 오른 루스벨트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위대한 리더십의 상징 루스벨트

하지만 그 당당한 연설 뒤에는 잔인한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루스벨트는 1921년 39살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그 이후 자력으로는 평생 단 한 걸음도 걷지 못했습니다. 그는 국민에게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양다리에 무려 10파운드(약 4.5kg)가 넘는 철제 보조기를 찼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팔에 간신히 의지한 채, 뼈가 깎이는 고통을 견디며 ‘걸어서’ 단상에 올랐습니다. 휠체어를 감추는 대신 국민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실체적인 증거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2. 휠체어를 감춘 대통령


그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자, 오늘날 미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위대한 거인입니다. 그는 ‘뉴딜 정책’을 통해 멈춰버린 국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무너져가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라디오를 통한 담화로 절망에 빠진 국민의 안방을 찾아가 직접 위로하고 소통했습니다.


그가 착용했다고 알려진 보조기

국민은 그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누구도 그를 나약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 다리로 걷기 위해서는 양다리에 무거운 강철 보조기를 채워 다리를 일자로 고정하고 상체와 골반을 좌우로 강하게 흔드는 반동을 이용해 다리를 앞으로 하나씩 '던지는' 방식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동작은 단 몇 미터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의 중노동이었습니다.


루스벨트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절대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현재 남아 있는 루스벨트의 사진 수만 장 중 휠체어에 앉은 모습은 단 2~3장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몇 장 없다고 하는 휠체어 사진





3. 니체의 아모르파티


우리는 살면서 저마다 보이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무거운 보조기를 찬 채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부족한 스펙, 콤플렉스, 혹은 경제적 결핍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소파에 발가락을 찧은 저처럼, 세상의 불행을 혼자 다 짊어진 듯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아모르파티(Amor Fati)’를 외치며,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방식이든 견딜 수 있다”고 했습니다. 루스벨트는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목표, 그리고 그의 강인한 멘탈로 두 다리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영어 party 아니에요~ 라틴어 fati 에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본질은 ‘완벽하고 튼튼한 다리’가 아니라 ‘걸어가야 할 방향’입니다. 내 핸디캡에 굴복해 휠체어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4.5kg의 쇳덩이를 차고서라도 기어이 단상에 오를 것인가.


매일 아침 출근길, 나의 부족함이나 팍팍한 현실 때문에 두려움이 앞선다면 루스벨트의 철제 다리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증명했듯, 지금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안의 ‘두려움’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묵직한 책임감을 보조기 삼아 여러분의 궤도를 향해 묵묵히 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참고 :

https://www.ajunews.com/view/20200225094508560

https://m.blog.naver.com/sageleadership/221327538245


※ 이미지 출처
① 루스벨트 취임식 : https://ko.wikipedia.org/wiki/1933년_프랭클린_D._루스벨트_대통령_취임식
②루스벨트 사진 : https://www.goodfreephotos.com/people/franklin-d-roosevelt-portrait.jpg.php
③ 로스벨트 휠체어 : https://www.whitehousehistory.org/photos/fdrs-leg-braces
④ 김연자 아모르파티 : https://www.youtube.com/watch?v=HVwLmJCXnqg
월, 수, 금 연재
이전 19화헤어질 결심과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