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레예프가 남긴 여백

빈칸을 허락하는 삶의 주기율표

by 최종병기

2026년 3월 6일,

"수, 헬, 리, 베, 붕, 탄, 질, 산, 프, 네..." 학창 시절 화학 시간, 뜻도 모른 채 주문처럼 외워야 했던 주기율표 앞글자들입니다. 세로줄을 맞추며 달달 외웠지만, 시험 종이 울림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시원하게 휘발되어 버렸죠. 당시에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암기용 고문 도구 같았지만,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이 표 하나에 우주의 모든 물질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습니다.


원소주기율표.jpg 베마칼스바라, 플염브요아~ 이렇게 외었더랬죠.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 세상도, 제가 마시는 커피도, 심지어 여러분의 뱃살(!)조차도 결국 이 100여 개의 '레고 블록'들이 조립된 결과물일 뿐이니까요.




1. 멘델레예프의 미친 직관


1869년,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당시까지 발견된 60여 개의 원소들을 질량과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하다가 놀라운 규칙성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주기율표의 시초입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질서의 지도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그려낸 것이죠.


멘델레예프.jpg 차이코프스... 아니 토...톨스토... 비슷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멘델레예프의 진짜 위대함은 표를 '완성'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함은 표를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는 데 있습니다.




2. 완벽을 포기하고 빈칸을 남겨둔 용기


원소들을 규칙에 맞게 나열하다 보니, 질량은 커지는데 기존의 성질과 들어맞지 않는 이빨 빠진 구간들이 생겼습니다. 보통의 학자라면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고 의심하거나, 억지로 꿰맞춰서 완벽해 '보이는' 표를 만들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멘델레예프는 과감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규칙은 맞다. 다만, 여기에 들어갈 원소를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라며 빈 자리를 미련 없이 '빈칸'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심지어 그 빈칸에 들어갈 미발견 원소의 질량과 밀도까지 정확하게 예언했죠.


초기 주기율표.png 멘델레예프 할아버지가 만든 초기 주기율표입니다. 중간 중간 '?' 보이시나요?


훗날 후배 과학자들이 갈륨, 스칸듐, 게르마늄 등을 발견하면서 그가 뚫어놓았던 빈칸들은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채워졌습니다.




3. 완벽주의라는 함정과 빈칸의 위로


우리는 회사에서 목표를 세팅하거나 삶을 설계할 때, 종종 강박적인 완벽주의에 빠집니다. 계획에 작은 구멍이라도 생기면 실패했다고 좌절하고, 내 능력에 빈칸이 보이면 그걸 억지로 숨기거나 그럴싸한 거짓으로 채워 넣으려 낑낑댑니다. 1번부터 100번까지 모든 칸을 스스로, 당장, 완벽하게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죠.

하지만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삶의 뼈대와 방향성만 확실하다면, 당장 모르는 것은 '빈칸'으로 남겨두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_수정됨_퍼즐.jpg 한 칸씩 채워 나가며 완벽주의자가 아닌 완료주의자가 되시길.

내가 지금 당장 채우지 못한 빈칸은, 결함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의 자리'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얻게 될 내일의 경험이 그 자리를 채워줄 수도 있고, 함께 하는 동료나 선후배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갈 수도 있겠죠.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방향만 맞다면요.


오늘 하루, 내 삶의 주기율표에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빈칸이 뚫려 있다고 해서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빈칸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만이 더 거대한 질서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다 채우지 못한 삶의 빈칸들은 훗날의 저에게 뻔뻔하게 미뤄두며, 가벼운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이미지 출처 :

① 주기율표https://blog.naver.com/studycadcam/221878312451

② 멘델레예프 : https://chemistrytalk.org/history-dimitri-mendeleev/

③ 초기 조기율표 :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Mendeleevs-periodic-table-of-1869_fig1_2213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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