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득 - #8 맹상군열전(풍훤)

빚 문서를 불태워 사람을 산 투자

by 최종병기
사마천의 <사기열전> 속 인물들을 21세기 비즈니스 정글로 소환합니다. 현대 경영학 이론과 실제 비즈니스 현장의 생생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오늘 당신이 회사와 가정에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 '2,000년 전 꼰대'들이 날카로운 훈수를 둡니다.

사기(史記)로 삶의 통찰과 함께 나를 지키고 위로를 얻으세요.


파트#2 천하를 움직이는 말의 전략(Persuasion & Strategy)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을 간다. 반대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한다."


회의실에서의 말 한마디가 당신의 연봉을 결정하고, 무심코 던진 농담이 당신의 평판을 좌우합니다. 여기, 말 한마디로 적을 친구로 만들고, 유머 하나로 왕의 고집을 꺾은 언어의 마술사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Skill)이 아니라,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 '말의 전략(Strategy)'을 배울 시간입니다.




제8챕터. 맹상군열전(풍훤) - 설득을 위해 '판'을 설계하라

(부제: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프레임의 힘)



Step 1. 공감: "떠나도 좋다"고 말하자 그들은 남았다


많은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다", "주인의식을 가져라."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지분 하나 없는 직원이 오너와 같은 주인의식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공허한 외침은 오히려 반감만 살 뿐이죠.


한 중견 회사의 A팀장은 조직을 이끌 때,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뼈를 묻으려 하지 마십시오. 대신 확실한 성공 사례(Best Practice)를 만드십시오. 그래서 이곳보다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곳으로 당당하게 이직하십시오. 여러분의 이력서에 결정적인 한 줄을 남겨주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경영진 입장에선 위험한 발언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이러니했습니다. "언제든 떠나도 좋다, 너의 몸값을 올려주겠다"고 선언하자, 오히려 구성원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업무에 무섭게 몰입했습니다. 역설적으로 A팀장이 이끌던 조직은 사내에서 이탈률이 가장 낮았고, 성과는 가장 높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모호한 '의리'나 '강요된 애사심'이 아닙니다. "나의 이익(성장)이 곧 조직의 이익"이라는 확실한 교집합을 보여줄 때, 구성원은 비로소 움직입니다. 2,300년 전, 가난한 백성들의 빚 문서를 태워버리며 주군의 미래를 샀던 풍훤의 전략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직시하고, 그것을 이용해 판을 짤 줄 아는 고수였습니다.




Step 2. 사마천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가치로 운명의 판을 뒤집다


전국시대 4군자 중 하나인 맹상군은 3,000명의 식객을 거느린 거물이었다. 어느 날, 풍훤이라는 사내가 짚신을 신고 나타나 식객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잘하는 것이 없다는 이 뻔뻔한 사내를 맹상군은 허허 웃으며 받아주었다. 풍훤은 하는 일도 없이 숙소에 머물며 밥상의 생선과 외출 시 수레와 노모 봉양할 돈을 달라며 노래를 불러 대며 맹상군의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주변에선 그를 '염치없는 식충이'라 비웃었지만, 맹상군은 묵묵히 그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맹상군이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여 자신의 영지인 설(薛) 땅에 가서 밀린 빚(이자)을 받아오라는 임무를 풍훤에게 맡겼다. 설 땅에 도착한 풍훤은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는 이자를 받아내고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파격적인 선언을 한다.


"맹상군께서는 여러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모든 이자를 탕감하고 원금까지 면제해주기로 하셨소!"

그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산더미 같은 차용증들을 불태워버렸다. 백성들은 "만세!"를 외치며 맹상군의 이름을 연호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풍훤에게 화가 난 맹상군이 따져 묻자 풍훤은 당당하게 답했다.


"군의 집에는 보물과 미녀가 넘치지만 딱 하나 '의(義)'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빚 문서를 태워 군을 위해 '의'를 사 왔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제나라 왕의 미움을 사 재상직에서 쫓겨난 맹상군이 비참한 차림으로 설 땅으로 돌아왔다. 벼슬을 잃어버린 맹상군에게 빈객들도 모두 떠나갔다. 풍훤은 겁에 질린 맹상군에게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기에 죽음을 면합니다(교토삼굴, 狡兎三穴). 이제 겨우 굴 하나를 판 것이니 나머지 두 개도 파드리겠습니다"라며 다시 길을 떠났다.


풍훤은 먼저 진(秦)나라 왕을 찾아가 고도의 심리전을 펼쳤다. "제나라가 인재인 맹상군을 버렸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그를 얻는다면 제나라에 복수를 하려 하는 맹상군이 최선을 다해 진나라를 도울 것이고 천하의 패권을 쥘 것입니다." 진왕은 눈이 번쩍 뜨여 맹상군에게 사신과 예물을 보내 극진히 모시려 했다. 그러자 풍훤은 이 사실을 이용해 다시 제나라 왕을 압박했다.


"진나라가 맹상군을 데려가려 합니다. 그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면 제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어서 더 좋은 조건으로 그를 복직시키십시오!"


직접 구걸하지 않고, 양국 사이의 경쟁 심리를 이용해 맹상군의 가치를 극대화한 것이다. 결국 맹상군은 전보다 더 큰 권력을 쥐며 화려하게 복직했다. 복직한 맹상군은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빈객들이 다시 모여들자 섭섭함을 참지 못하고 침을 뱉으며 쫓아내려 했다. 이때 풍훤이 다시 한번 그를 타이르며 인간관계의 냉혹한 본질을 일깨웠다.


"사람이란 부귀하면 모여들고 가난하면 떠나기 마련입니다. 이는 마치 아침이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가 해가 지면 돌아가는 시장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이 군을 미워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단지 시장의 이치가 그러할 뿐입니다. 떠났던 이들을 원망하지 말고 전처럼 대하십시오."




Step 3. 지혜의 재해석: 이기심은 죄가 없다, 이용하지 못하는 무능이 죄다


우리는 흔히 '이기심(Self-interest)'을 나쁜 것으로, '희생'을 고귀한 것으로 배웁니다. 하지만 조직 관리에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도덕주의는 가장 위험한 함정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이렇게 통찰했습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동력은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풍훤이 "시장의 이치"를 논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현대 경영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세련되게 활용한 사례로 링크드인(LinkedIn)의 창업자 '리드 호프만'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 고용이 사라진 시대에 직원들에게 거짓된 충성을 강요하는 대신 '동맹(The Alliance)'이라는 새로운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몸값을 획기적으로 올려줄 테니, 당신은 그 기간 동안 회사를 획기적으로 성장시켜라." 그는 직원이 더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을 '배신'이 아닌 '졸업'이라 부르며 축복했습니다.


앞서 제가 직원들에게 "성공 사례를 만들어 더 좋은 곳으로 떠나라"고 했던 전략도 바로 이 맥락입니다. 구성원의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기심)'을 회사의 '성과(공익)'와 일치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2,300년 전 풍훤과 현대의 리드 호프만이 공유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동기부여'의 비밀입니다.




Step 4. 마지막 한 수


당신은 지금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혹시 줄 것은 주지 않으면서 '가족 같은 마음'만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풍훤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상대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판'과 '명분'을 설계하여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는 고도의 전략가였습니다. 사람은 이익이 있는 곳에 머물고, 비전이 보이는 곳에서 뜁니다. 의리를 탓하기 전에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그들에게 어떤 시장을 열어주고 있는가?"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