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6년 3월 11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착수하기 위해 영감을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언제나 행동이 영감을 낳는다. 영감이 행동을 낳는 일은 드물다.
뭐 식상한 이야기죠. 생각보다 말, 말보다는 실천과 행동이라는 많이 듣는 이야기.
그런데 이런 말도 있습니다.
훌륭한 성취를 하려면
행동하는 것 뿐만 아니라 꿈꾸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두 명언을 남긴 카운슬러와 소설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공한 훌륭한 아저씨들일 테니, 각자의 경험치 안에서 정답을 찾은 것이겠죠. 두 분 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카운슬러 아저씨는 우물쭈물하지 말고 당장 움직이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고, 소설가 아저씨는 생각보다 희망과 목표 없이 사는 사람이 많으니 꿈이 행동을 낳는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정답'을 찾는 것이 참 어렵고 짜증 났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어른이 되어보니, 내 인생의 답안지에 명확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편안하고 안락한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인생에는 '正답(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객관식 보기 속에서 정답을 고르려 끙끙대기보다, 나만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주관식의 삶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 시절 매달 집으로 배달 오던 월간 학습지들이 생각납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촌스럽고도 정겨운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억지로 연필을 쥐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월간 학습지 시장은 동아출판사의 <이달학습>과 교학사의 <완전학습>이 양분하고 있었고, 조금 마이너한 <다달학습>이라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저는 교학사의 <완전학습>보다 동아출판사의 <이달학습>을 훨씬 더 선호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완전학습>은 유독 주관식 문제가 많았거든요. 글씨를 꾹꾹 눌러쓰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무엇보다 '채점'이 너무 까다로웠습니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동그라미 치는 맛(채점)이 더 중요했던 제게, 주관식은 이게 맞은 건지 틀린 건지 스스로 판단하기 아리송한 아주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생은 명확하게 ①, ②, ③, ④번 중 하나로 떨어지는 4지선다의 <이달학습>의 객관식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써 내려가고 채점조차 내 몫으로 남겨지는 주관식 투성이의 <완전학습>에 훨씬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맞았는지 틀렸는지 아리송해도, 일단 꾹꾹 눌러쓰며 나만의 답안지를 채워가는 것.
답이 없는 주관식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동'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