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 72일 간 연대의 기록.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든, 또는 그냥저냥 식상한 영화라도
과거 OTT 영화 담당자로서 지난 영화를 돌아보며 가볍게 읽을만한 글로 소통합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의 길목에서, 한동안 보지 못할 설원을 영하 30도 안데스산맥을 배경의 영화로.
살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던,
72일간의 처절한 기록과 '생존'의 무게와 연대의 의미가 궁금하다면.
★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분장상 노미네이트
◎ 감독 / 장르 : J.A. 바요나 / 스릴러, 드라마, 재난, 실화 바탕
◎ 주연 : 엔조 보그린치치, 마티아스 레칼트, 아구스틴 파르델라 외
◎ 개봉일/수상 : 2023년 12월 (한국 넷플릭스 2024년 1월 공개)
◎ 스트리밍 : 넷플릭스 (Netflix Original)
◎ 한 줄 평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도덕을 묻어두고 서로의 살과 피로 연대했던, 가장 잔혹하고도 숭고한 생존기.
※ 원제인 '눈의 사회(Society of the Snow)'는 기존 문명의 규칙과 도덕이 통하지 않는 고립된 설산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규칙과 연대를 만들어냈다는 묵직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아래는 영화 리뷰를 목적으로 상상하여 쓴 글입니다.
오늘도 곁에 있던 친구 하나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쥐며 말했다. "내가 죽거든, 주저하지 말고 내 몸을 먹어. 꼭 살아서 돌아가."
남은 자들이 평생 짊어질 끔찍한 윤리적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식량으로 내어주고 기꺼이 세상을 등졌다.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친구의 몸에 기대어 체온을 덮고, 반드시 살아서 이 산을 내려가겠다는 지독한 생의 의지를 다진다.
끝없이 펼쳐진 안데스산맥의 하얀 설원 앞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미약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눈보라가 걷히면, 안데스산맥은 눈부시게 빛난다.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죽음을 둘러싼 자연이 숨이 맞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이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대자연은 우리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무심하게 빛나고, 우리는 그 압도적인 풍경 속에서 어떻게든 숨을 이어가려 발버둥 치는 한낱 미물일 뿐이다.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 곪아가는 상처, 그리고 두 달 넘게 이어진 영양실조. 이제는 수분이 다 빠져나가 슬퍼도 눈물조차 흐르지 않고, 감정마저 하얗게 얼어붙어 메말라간다.
포근한 잠자리, 나를 신뢰하는 가족들의 눈빛, 혀끝을 적시던 깨끗한 물 한 모금과 모락모락 김이 나던 따뜻한 음식... 평소엔 너무도 당연해서 감사한 줄도 몰랐던 것들이, 생명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린 지옥에선 가장 간절하고 눈물겨운 희망이 된다.
만약 이 지옥에서 벗어나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면 춤을 추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흙을 만지며 식물을 기르고 싶다. 평소엔 해본 적도, 관심도 없던 일들이지만 그저 내 두 발로 단단한 땅을 디디고 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하늘을 보며 신에게 원망했고 제발 살려달라 기도했지만, 결국 내가 온전히 기대어 숨을 쉬는 곳은 내 옆에서 떨고 있는 동료의 품이다. 지옥 같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신의 손길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랄 '가족들의 사랑'이고, 함께 살아서 돌아가자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동료와의 연대와 사랑'이다. 나는 이제 신을 부르는 대신, 곁에 있는 동료를 믿고 우리 안의 사랑을 믿는다.
나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살을 내어준 친구를 삼키며, 나는 신과 인간, 그리고 생명이라는 것의 진짜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어제까지 체온을 나누며 위로를 건네던 친구가 오늘 나를 살리기 위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는 끔찍한 모순.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진실 앞에서도 서로를 살리려 쳐다보는 푹 꺼진 눈빛만큼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
우리는 이 지옥 같은 배고픔 속에서도 살아 돌아가면 무엇을 할지 겨우 속삭이며 앙상한 살을 부빈다. 세상을 먼저 떠난 동료는 우리를 살리는 '피와 살(육체)'이 되고, 살아남은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생의 의지를 다지는 '정신'이 된다. 혼자서는 결코 버티지 못했을 끔찍한 시간들이다. 우리가 살아 돌아간다면 산 자와 죽은 자의 역할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다짐한다. 만약 내 생이 다해 이 하얀 눈 위에 숨이 멎는다면, 나 역시 기꺼이 살아남은 자들의 피와 살이 되리라고. 우리는 그렇게 죽은 자와 산 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끊어지지 않을 이 질기고 질긴 생명의 끈을 함께 부여잡고, 오늘도 내일도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 구조대를 묵묵히 기다린다.
이 영화는 1972년 안데스산맥 비행기 추락 사고의 72일간의 실제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① 생존자들의 현재:
총 45명의 탑승 인원 가운데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16명의 생존자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들은 심장전문의(로베르토 카네사)나 동기부여 연설가(난도 파라도) 등으로 활동하며, 당시 자신들을 위해 희생했던 친구들의 몫까지 치열하게 살아가며 당시의 기억을 세상과 나누고 있습니다.
당시 생존자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 행동이 옳은가 비난과 비판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생존자들이 기자회견에서 당시 힘든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친구의 인육을 먹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우루과이 재교구의 대주교까지 나서서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생존이 걸린 문제로 생리적 혐오를 품는다고 해도 그들은 손에 댈 수 있는 무엇이든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라며 식인 행위를 옹호했다고 합니다.
② 미친 디테일과 실제 감량:
바요나 감독은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위해 실제 추락 장소인 안데스산맥 '눈물의 계곡'에서 12일간 촬영했습니다. 또한 영화를 시간 순서대로 촬영하며 배우들에게 극단적인 식단 관리를 요구했고, 앙상하게 마른 후반부의 모습은 CG가 아닌 배우들의 실제 체중 감량과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정교한 분장의 결과입니다.
③ 엔딩 크레딧의 사진, 실제인가?: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겹쳐 나오는 흑백/컬러 사진들은 100% 실제 1972년 당시 생존자들이 찍은 진짜 사진들입니다. 영화 중간중간 찰칵 소리와 함께 화면이 멈추며 보여주는 구도는 당시 생존자들이 고장 나지 않은 카메라로 찍었던 '실제 사진'의 구도를 배우들이 완벽하게 재현(오마주)한 것입니다.
④ 영화의 허구와 각색, 100% 팩트인가?:
거의 100%에 가까운 미친 고증을 자랑합니다. 이 영화는 생존자 파블로 비에르치(Pablo Vierci)의 동명 저서를 바탕으로, 감독이 생존자들과 100시간 이상 인터뷰를 하며 영화에 담아 디테일을 살렸습니다.
물론 2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72일의 기록을 담아야 했기에 약간의 각색이 존재합니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가 아닙니다.
극한의 절망과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서늘하고도 뜨거운 통찰입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1972년 당시 생존자와 희생자들의 실제 사진이 겹쳐질 때, 이 모든 것이 실화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감은 압도적입니다.
✅ 이런 분들에게 강력 추천 (O)
◎ 압도적인 사실주의 연출을 원하는 분:
CG로 점철된 뻔한 재난 영화가 아닙니다. 굶주림으로 부르튼 입술 등 미친 리얼리티의 진짜 '날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뻔한 영웅 서사에 지친 '영화광':
단 한 명의 히어로가 모두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약한 인간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딛고 일어서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 먹먹한 여운을 즐기는 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분들께 완벽한 작품입니다.
⛔ 이런 분들은 패스하세요 (X)
◎ 오락 영화 선호자:
동상, 굶주림, 인육 섭취라는 도덕적 딜레마로 감정적 소모가 큽니다. 가볍게 볼 팝콘 무비로는 맞지 않습니다.
◎ 폐소공포증이나 눈/추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분:
비행기 잔해에 갇혀 있는 장면과 숨 막히는 눈사태의 묘사가 지나치게 생생해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① 포스터 : https://www.filmaffinity.com/pe/movieimage.php?imageId=323264210
② 실제 사진 :
https://www.reddit.com/r/pics/comments/15x4c8/actual_photo_of_survivors_of_the_andes_plane/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premium/article/flight-571-andes-crash-true-story
③ 영화 스틸컷 :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4742545?svc=topR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