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3월 12일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개막됩니다. 야구 개막 시즌에 맞춰 쓰디 쓴 현실적인 야구 영화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사견으로 스포츠 관련 콘텐트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봅니다.
하나는,
약간 모자란 재능을 가진 '착한' 선수가 노력을 통해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건방 떠는 '나쁜' 라이벌을 누르고 정의(?)는 승리한다는 메세지로 관객에게 후련함을 주는 경우와
또 하나는,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냉대를 받는, 이른바 거들떠보지도 않는 루저들이 모여 이를 악물고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는 비장함으로 최선을 다해 결국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는 경우입니다. 그들을 무시하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두 다리로 서는 모습은 충분히 감동을 줍니다.
이 <파울볼>이라는 다큐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이미 한 번 실패를 경험한, 형편 없는 실력과 다양한 경력을 지닌 '루저'들이 모여 2011년 창단된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3년간의 여정을 끝내고 해체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가슴 떨리는 극적인 모습이나 그들이 이룬 성과를 특별한 자랑 없이 스프가 반만 들어간 라면처럼 심심하게 보여줍니다.
헬스 트레이너, 대리 운전기사까지 이른바 야구의 꿈에서 멀어진 이들이 지옥 훈련을 받으며 결국 하나 둘 프로로 입성하는 성공 스토리에
'당신이 흘린 땀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인내와 인고는 쓰나 그 열매는 달 것입니다..'
라는 '식상'하고 '진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국가대표> 같은 영화에서 보세요.
지옥의 펑고※ 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의 독한 채찍질과 쏟아내는 가시 돋힌 말들을 꽂으며 재능은 있지만 다소 나태(?)한 제자를 쥐 잡듯이 잡아 각성하게 하여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스파르타식 교육 영화는 <위플래쉬> 같은 영화에서 보시면 됩니다.
※ 펑고 : 수비 훈련을 위해 코치 또는 감독이 연습 타구를 배트로 때려주는 행위 또는 행위자.
좌절과 실패 속에서 넘어진 동료에게 손 내밀어 함께 달려가는 훈훈한 모습에 피어나는 우정, 열등감의 극복, 성공 스토리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은 다른 수많은 영화에서 보셨을 것이라 믿고.
오늘은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고양 원더스'는 루저들이 모인 구단입니다. 심지어 '야구의 신'이라 불리우는-물론 그 이면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야신 김성근 감독이 스쳐지나간 1군 프로야구 구단만 따져도 총 7개 구단(OB-현 두산-,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 한화)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재일교포 2세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중요하다는 학연, 지연 등 줄 설 연줄은 커녕 쪽빠리라는 욕을 먹고 어른(?)들에게 아부하고 잘 보이고자 하는 정치력도 그럴 의욕도 없이, '약'팀의 감독직을 맡아 기적같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성적을 내면 이후 토사구팽마냥 구단으로부터 버려집니다. 또 다시 성적이 필요한 다른 팀에 불려가 또 다시 기적을 만들어내며 재기하는 등의 떠돌이 경력을 반복해왔습니다. 물론 한화에서는 한화인지 화나인지 알 수 없는 화나는 성적과 다소 이해하기 힘든 작전으로 팀을 떠나고 말았고 진정한 야인 또는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지만요.
'고양 원더스'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코치들도 모두 프로에서 왕년에 한 가닥했던 선수들이지만(이상훈 코치 같은 경우는 다승왕까지 차지했던) 지금은 프로 구단에 부름을 받지 못한 잉여 코치들입니다.
우리는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성공한 천재들을 보며 환호하고 갈채를 보냅니다. 수많은 연습생들과 연예인 지망생들이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며 부나방처럼 뛰어들지만 그 중 우리가 이름이나 아는 연예인은 그 중 1%도 되지 않겠지요.
전국 유소년 야구선수 5천명 > 프로구단 지명 드래프트 신청 참가 선수 700명(유소년 5천 명 중 14%) > 한해 프로야구 입단 선수 110명(드래프트 참가자 700명 중 다시 15%)
유소년 5천명 중 110명이라면 프로 입단까지 2%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바늘 구멍. 그렇게 프로에 10년동안 입단 선수들이 쌓인다고 하면(10년 정도 프로 생활을 한다고 하면) 110 * 10년 무려 1천 100명. 프로야구 야수의 자리는 투수 포함 9개. 입단까지도 2%인데 입단을 한다고 해도 1군 무대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보장이 없는 치열한 정글의 세계, 그 주전 속에서도 성적을 내어 많은 이들의 이름에 오르내리는 선수가 되는 것은 이른바 선택 받은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따르지 않아서는 어려운 일이지요.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고양 원더스'의 루저들은 이미 한차례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입니다. 열정이 부족해 나태했을 수도 있고, 열심히 했지만 재능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 운이 따라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열정과 운은 충분한 시간과 반복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물려 받은 타고 난 재능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물리학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한들 누구나 '박지성' '류현진'이 될 수 없겠죠.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각자의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성공한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패배자들의 끝없는 열등의식과 부러움을 밟고 올라온 사람들입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 체 게바라 -
영화 속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인 송강호가 될 수 없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름을 가진 영화의, 내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결국 내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실패하여 다른 길을 걷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미련 없이 끝까지 할만큼 해봤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건전한 '체념'은 지나간 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내 인생의 영화를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끌 것입니다.
최종병기와 함께 직장인 밴드를 하고 있는 베이스 치는 형님은 고등학교 때 들었던 멋들어진 rock 음악에 반해 여러 경로를 통해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이젠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창고 하나에 드럼 셋트와 수많은 기타, 그리고 음향 장비를 갖추고 어린 시절 꾸었던, 이제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며 그의 평생의 영웅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분이 창고에서 함께 술 한 잔 들이키며 틀어 놓은 음악을 들으며 보이는 표정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타자가 친 '파울볼'은 필드 밖으로 나가 결코 안타가 될 수 없는 실패한 타격이지만 계속해서 타자에게 타격을 할 기회를 줍니다. 한국 프로야구 한타석 최고 투구 기록은 2010년 15개의 파울을 때리며 투수에게 무려 20개의 공을 던지게 한 한화 이글스의 '이용규' 선수의 기록입니다.(일반적으로 한 게임에 등장하는 투수들은 9이닝 동안 대략 40여명 정도의 타자를 맞아 보통 100~140개 내외의 공을 던지게 됩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몇 번 반복되더라도 못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까. 패자부활전이 언제든지 가능한 사회 말입니다.
그저 '노력하면 된다.' 무책임한 메세지가 아닙니다. 분명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으니까요. <파울볼>은 오합지졸 선수들이 모인 창단부터 90승 25무 61패의 5할이 넘는 승률 기록을 남기고 해체되기까지, 김성근 감독과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1,093일 간의 도전을 보여줌으로써 사회 구석구석 다양한 곳에서 실패하여 낙오되고 소외되는 이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언젠가는 날릴 역전 홈런을 위한 '파울볼'을 보다 관대하게 바라보는 사회가 되기를. 진짜 파울볼이 홈런의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고양 원더스'는 만 3년의 짧은 여정을 남기고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에 손자 뻘의 선수 앞에 선 당시 75살이 된 '김성근' 감독의 무거운 눈물과 '고양 원더스'를 사랑했던 어린 팬의 오열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제 10여년이 인생의 전부인 그 어린이는 이 일을 통해서 처음으로 인생의 실패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절박한 노력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어렴풋이 깨달았겠지요. 인생의 황혼기에 선 '김성근' 감독도 완성된 본 영화를 관람하며 줄곧 눈물을 흘렸고 75년 인생과 60년을 넘게 했던 야구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3년간의 실험으로 결국 비행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시행착오를 겪은 아기새는 다시 힘차게 날개짓해서 저 높은 하늘을 비상할 날이 오겠죠. 결국엔.
하지만 그 김성근 감독도 이후 한화의 감독으로서 실패를 맛 보고 2017년 시즌 도중 경질되고 만 아이러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나오는 노래는 지난 2010년 37살의 나이로 요절한 '이진원'이라는 음악인이 만든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이라는 길고 기묘한 이름을 가진 원맨 밴드의 '절룩거리네'라는 노래입니다. 야구를 사랑했던 '이진원'이라는 청년은 6장의 음반을 만들며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힘든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했던 상황과 음악활동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으로 생활조차 어려운 빈곤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다가 자취방에서 뇌졸중으로 홀로 쓰러져 그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생전 만든 그의 가사는 패배자의 아픈 심정과 좌절과 체념의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희망'과 '사랑'을 사람들에게 노래해왔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께서 만약 지금 처한 현실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지치고 쓰러져도, 설령 실점을 많이 해서 승부를 뒤집을 수 없는 9회말 투아웃의 상황이 온다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마지막까지 공을 끝까지 보고 배트를 힘차게 휘둘러 역전 만루 홈런을 날리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두 팔 활짝 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팔짝 팔짝 뛸 그 날, 그 순간이 오기를 말이에요.
<파울볼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written by 최종병기, ⓒ 최종병기
병맛나는 삼류 쌈마이 글,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지만 출처는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