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06일차
일반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본능 중 하나다. 특히 영토본능,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가족을 떠나기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로의 이사는 본능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을 꿈꾼다. 특히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더욱더 그렇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학교를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크다 보면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한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두 번 전학을 했었다. 그 때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제일 싫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1년을 계획했던 육아휴직이 거의 다 끝나간다. 1년간의 자유도 이제 끝이고 다시 생업의 전장으로 뛰어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었다. 전에 아내와 얘기했던 제주도 이야기도 쏙 들어갔었다. 그런데 다시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과 마음껏 여행을 다니고 추억을 만들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게 아내와 나의 생각이다. 물론 아직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부모와 함께 종종 여행을 다닐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이대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깝다.
다시 제주도로 간다? 직업 상 제주도로 근무지를 옮겨 일을 할 수 있다. 만약 근무지를 옮긴다면 이사도 가야한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전세나 월세를 주어야 하고, 가서 살 집도 구해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전에 한참 동안 이야기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근무지를 옮기려면 이제 하루 안에 결정을 내야 한다. 만약 옮긴다고 신청을 하고 인사 발령이 난다면 서둘러 준비를 해야 한다. 막상 간다고 치고 그럼 거기서 계속 일을 한다면? 내가 복직을 하고 와이프가 휴직을 한다면 같이 제주도까지 내려가는 의미가 크게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 여행을 다니면 굳이 근무지와 집까지 옮길 필요가 있을까?
만약 제주도로 내려가서 2~3년 정도 살다가 다시 올라와서도 집은 지금 집에 살 수 있지만 근무지가 먼 곳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 돌아올 곳이 확실치 않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휴직을 6개월, 1년 동안 연기하고 그냥 제주도 한 달 살기, 몇 달 살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러 집들을 살아보면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만약 진짜 제주도가 너무 좋고 몇 년 동안 살고 싶다면 그 때 가서 이사를 가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대로 몇 달 살아보니 영 아니다, 역시 내가 살던 집이 최고다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먼저 해보라는 주위의 조언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아무 연고도 없고 제주도를 특별히 엄청 좋아해서 자주 가본 것도 아닌데 덜컥 이사를 가는 것도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무언가 사람이 변화하려면 사는 곳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무모한 행동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올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선택만 있을 뿐. 내 삶의 도화지, 내 가족의 도화지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누가 이렇게 그리라고 해서 그린다면 그건 그 사람의 그림이지 내 그림은 아니다. 요새 첫째 사랑이가 자꾸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려줬지만 요새는 그려주지 않는다. 아빠가 자꾸 그려주면 물론 그림은 좀 더 낫겠지만 자신의 실력, 상상력은 전혀 발전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제주로의 완전 이사는 단점이 또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잘 수 없는 점이다. 제주는 경치가 좋은 집이 많을 텐데 사는 집이 정해져 있다면 다른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어쨌건 나의 생각은 지금 휴직을 1년 더 연장해서 몇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만약 여건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곳곳을 여행해 보고 싶다. 문제는 생활비다. 둘 다 일을 하지 않으면 저축해 놓은 돈으로 사용해야 한다.
걱정은 끝없는 걱정을 낳는다. 제주도 한 달 살기만 해도 일단 마음이 설렌다. 복직을 하지 않는 것이 혹시 설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