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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공 Dec 05. 2023

인생 리셋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의 첫 문장은 옳다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짐이자 삶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 리셋이라.


그와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전자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물론 어디까지나 꿈같은 이야기다. 지나온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리셋 버튼이란 건 없다. 결국은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다. 그 같은 변화가, 삶을 대하는 깊이와 여유 있는 태도가. 그럼에도 나 자신을 다독였다. 아직은 내가 그 같은 리셋 버튼을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 같은 순간을, 무엇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요구르트 아저씨를 볼 때마다 진정한 긍정은 결과물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며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태도 안에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나의 요구르트 아저씨에게서 진짜 긍정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이다. 어쩌면 사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할 때에도 그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살면서 가끔씩 그 말을 기억한다면 그 두 사람처럼 남은 날들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무한히 지속될 것 같았던 생이 유한하고 소중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은 분명히 변한다. 암 환자의 경우 하루하루를 일상의 반복으로만 보내지 않고 누구보다 더 의미 있는 매일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암 병원에서 무수히 많은 환자들을 지켜보며 나는 분명히 그 같은 변화를, 실례를 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충격을 받을 것도 마음 아파할 것도 알고 있지만, 내게 돌아올 원망도 예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려 한다. 그것이 환자에게도 의사인 나에게도 분명히 조금 더 나은 길일 것이라고 믿는다.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 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어쩌면 죽음만큼이나 삶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김범석 저>






서울대학교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항암치료를 통해 암 환자의 남은 삶이 의미 있게 연장되도록 암 환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저자의 직업이다.



세상 어떤 사람 못지 않게 죽는 사람, 그리고 죽어 가는 사람을 많이 보는 직업인 의사, 그 중에서도 암 병원 전문의면 말을 다했다.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의사인 저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루에도 많은 환자를 대면해 진료해야 하는 우리 나라 의료 현실도 알 수 있었다.



삶에 끝에 다다랐을 때, 만약 내가 암에 걸리거나,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암에 걸렸을 때, 그리고 암 뿐만 아니라 다른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음을 선고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미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난 존재이다. 다만 언제 세상을 떠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암 말기 환자는 그 시기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점이 다를 뿐 사형 선고를 받는 점은 똑같다. 



그럼 이미 끝이 정해진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삶이 정말 소중하고, 내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후회하지 않게 소중히 살아보자.



인생은 영화나 웹툰처럼 리셋되지 않는다.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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