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딧불이

by 허공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글귀다.



환한 낮에는 어느 집에서 불을 켜도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는 작은 빛도 밝게 보인다.




청수리 반딧불이도 그랬다.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서 매해 열리는 반딧불이 축제.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 입도한 뒤, 반딧불이 축제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약 한 달 전 미리 예약을 하고, 주말에만 열리는 프로그램이다.



그제까지만 해도 제주도에 계속 비가 내려 취소가 되지 않을지 걱정했다.



다행히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아 청수리로 출발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제주 표선과는 완전히 극과 극, 동과 서에 있는 곳이었다.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가 시작하는 시간은 밤 8시 20분이었다.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삼삼오오, 여러 가족과 연인들이 모였다.



저녁을 먹지 않아 행사장 앞에 있던 오뎅과 붕어빵을 먹었다.




우리가 가는 코스는 C코스, 제일 짧은 코스지만 40분이 걸리는 코스였다.



반바지, 반팔을 입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긴팔을 챙기지 못했고, 다행히 아이들은



바람막이를 입혔다.




나는 첫째와 손을 잡고, 아내는 둘째와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안내하시는 분의 인도에 따라 어둠 속에서 가족의 손을 의지해서 걸어갔다.




곧 나무 속에서 형광색 빛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나 여깄어, 나도 여기 있어, 반가워



반딧불이들이 너도 나도 형광색 옷을 뽐내기 시작했다.




풀냄새와 함께 반딧불이들이 보이자 전율이 일었다.



약 2주 정도 밖에 살지 못하고, 입이 퇴화되어 피부로 이슬을 흡수한다는 반딧불이,



짧은 반딧불이생이지만, 그래도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인간의 눈에서는 짧은 생이지만,



반딧불이는 나름 길지 않을까?



얼마나 순간순간이 소중할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길 가운데에서도 가족의 손을 잡고 가니 든든했다.



혼자였으면 무서웠겠지만 함께여서 두렵지 않았다.




엄청 피곤한 하루였지만 그만큼 반딧불이를 가족과 함께 본 것은 행운이었다.



고마워 반딧불이, 다음에 또 보자!


%EB%8B%A4%EC%9A%B4%EB%A1%9C%EB%93%9C.jpg?type=w966



keyword
작가의 이전글꿈을 향한 의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