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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2. 2023

2023년 1월 일기모음 1

2023년 1월 1일 일요일


새해 첫날이다. 신정이 일요일이라서 아쉽다. 지난 크리스마스도 일요일이었지. 지난해에는 공휴일이 일요일과 많이 겹쳤던 것 같다. 이번해는 좀 달랐으면 좋겠는데 일단 시작부터가 작년의 연장선상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일요일이랍시고 여전히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여덟 시쯤 눈이 떠졌는데, 이불 밖이 춥기도 하고 무기력해서 계속 누워있다가 결국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나는 사는 게 편한가 보다. 급할 게 없나 보다.


카페에라도 가서 앉아있으면 식사도 편하게 해결할 수 있고 생산적으로 뭐라도 할 것 같아서 일단 씻었는데, 씻으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새해부터 짠테크를 제대로 해보고자 결심하지 않았던가. 밖에 나가면 돈이라는 생각에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집에 있으니 그럭저럭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밥을 해 먹었고,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방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방에 외풍이 심해서 주방 쪽 벽에 담요를 커튼처럼 달고, 침대 쪽 창문에는 커튼 안 쪽에 가벼운 이불을 덧댔다. 실제로 이불처럼 생긴 방한커튼도 시중에 팔고 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확실히 찬바람이 덜 느껴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현관문을 가리는 천과, 운동화와, 니트가방도 빨았다.


도서관에서 대여해 온 요리책 10권 중 무려 7권이나 속성으로 읽었다. 글은 거의 읽지 않고 사진 위주로 봤는데 푸드스타일링을 감상하는 게 꽤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풍경사진, 인물사진 등 예쁘게 잘 찍은 좋은 사진들이 참 많지만 음식사진도 꽤 볼거리가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레시피습득보다는 오히려 사진감상용으로 본 것 같다. 어쨌든 재밌었다. 요리책은 독서를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해서 독서목록에는 포함시키지 않겠다. 내일 할 일은 일하기, 퇴근 후 헬스장 가기, 집에 와서 독서하기. 이제 내일 점심도시락 뭐 쌀지만 생각해 보고 슬슬 자야겠다.


2023년 1월 2일 월요일


새해 첫 근무날. 일하다가 지난번처럼 또 어지러웠다. 어지럽고 속이 불편한 것이 꼭 술을 마시고 취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일하다 말고 벽 뒤에 숨어서 한참을 쭈그려 앉아있기도 했고 화장실로 피신하기도 했다.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원인들을 생각해 봤다. 귀에 문제가 생겼나. 아니면 신경 쪽인가. 안구 쪽 문제로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이건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매번 식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점으로 미뤄보아 아무래도 소화계 쪽 문제 같다. 장례식장에서의 과음 이후 겪게 된 증상인데 벌써 수차례다.


다행히도 어지러운 증상은 잠깐 그러다가 말았지만 어쨌든 저조한 컨디션으로 오후 내내 억지로 일하다시피 했다. 퇴근 후 금식이라도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배가 고파서 일단 식사를 했는데, 먹다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양껏 먹었다. 식사 후 헬스장에 가서 가볍게 운동하고 귀가했다. 요즘 몸상태를 보니까 슬슬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큰일 나지 않게 지금부터라도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니 쌓인 설거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기 귀찮아서 내일로 미룰까 하다가 그냥 꾹 참고 했다. 보일러 쪽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수도가 온수 쪽 끝까지 돌려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 설거지하는 내내 손이 시렸다. 잠들기 전까지 내내 '불편한 편의점 시즌 2' 오디오북을 들었다.


2023년 1월 3일 화요일


오늘은 삼시세끼 모두 에어프라이어로 무언가를 구워 먹었다. 아침에는 떡을 점심에는 고구마를 그리고 저녁에는 냉동치킨을 구워서 양배추채와 함께 먹었으며, 먹는 내내 불편한 편의점 시즌2를 들었고 기어이 완독 했다. 운동도 가야 하는데, 집에 바로 왔더니 다시 나가기가 싫어서 그냥 오디오북 들으면서 스쾃를 하는 것으로 오늘의 운동을 대신하기로 한다.


일단 이번달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오직 회사-집-헬스장만 오고 가며 일, 운동, 독서, 짠테크만 하고 싶다. 이번달동안 과연 몇 권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 같은 속도로는 이틀에 한 권꼴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역시 독서는 좋은 취미다. 나는 책은 그냥 취미로 재미로 읽는다. 재미있는 걸 하고 있으니 활력이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2023년 1월 4일 수요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오디오북을 틀어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며 출근 직전까지 내내 들었다. 완독본 대신 요약본을 들었는데 이 정도만 해도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받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제목은 '닥치는대로 끌리는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고, 독서광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독서법을 알려주는 내용의 책이다. 심지어 이동진이 직접 읽어주는데, 빨간책방 때부터 귀에 익어온 감미로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책을 읽어주니 귀에 굉장히 잘 들어온다.


2023년 1월 6일 금요일


올해 들어 돈을 단 한 푼도 안 썼다. 작년 말에 식재료를 어느 정도 구비해 놔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올해라고 해봤자 이제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엿새째 유지하고 있으니 꽤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서 먹었고 저녁은 집에서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최근에 오디오북에 빠진 게 소비를 줄이는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공허하고 집중할 곳이 없을 때 소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잘 생각해 보면 더 이상 필요한 물건은 없다. 새롭게 가지고 싶은 물건들이 있을 뿐이지. 특히 요즘은 옷에 관해서 완전히 관심을 잃었다.


2023년 1월 7일 토요일


퇴근 후 3호선을 타고 독서모임에 갔다. 모임을 하는 건 좋은데 모임장소까지 오고 가는 과정이 피곤하다. 오랜만에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다. 자리가 있어서 앉기는 했다마는, 양 옆으로 다른 사람의 팔이 앉아있는 내내 내 몸에 밀착되어 굉장히 불편했다. 아직은 겨울인지라 다들 두꺼운 외투를 입은 탓에 저마다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서이다. 가뜩이나 옆사람들과 몸이 부대껴서 불편한 와중에, 역시나 양 옆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중년여성들의 끊이지 않는 수다소리가 거슬려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대중교통을 벗어나니 숨통이 트였다. 나는 차를 구입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동네를 벗어나서 어딘가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자전거를 타든 자차 외의 다른 이용수단이 필요하다. 대중교통은 매번 이용할 때마다 스트레스라서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타고 모임장소까지 한번 가볼까 싶어서 이동경로와 시간을 검색해 봤더니 자전거로 아주 못 갈 거리는 아니다. 날 좋고 컨디션 좋을 때 운동삼아 도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모임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알라딘중고서점과 지하상가 액세서리점을 구경했다. 딱히 갖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물건은 없었다. 북성로의 어울리커피클럽에서 8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3시부터 시작해서 6시까지 3시간 꽉 채워서 모임이 진행됐다. 뭔가 주고받는 얘기가 많다 보니 독서모임인데도 불구하고 개중 몇 명에게서는 무슨 책을 가져왔는지 소개도 못 들었다.


독서보다는 오히려 대화가 중심인 모임, 외향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끌벅쩍한 분위기,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는 걸 보니, 재미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게 더 재미없다. 그냥 더 재미없고 덜 재미없고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음료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메뉴 중에서 이게 가장 싸서 시켰는데 이제는 맛있어서 시킨다.


2023년 1월 8일 일요일


태암교 부근에 대형 베이커리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가봐야지 벼루고 있다가 오늘 일요일이고 해서 산책 삼아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매장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즐비했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이 꽉 차있었으며, 건물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봤을 때 창가 자리는 죄다 만석이라,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상황파악이 됐다. 하긴 다들 나 같은 마음 아니려나. 가뜩이나 갈 곳 없는 동네에 새롭게 자리 잡은 신상카페가 일요일에 만원인 것은 당연할 수밖에. 당분간 여기 올 생각은 접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보고식자재마트에 들러서 장을 봤고, 날씨가 좋아서 팔거천을 따라서 오랫동안 산책했다. 저녁에는 마라탕을 해 먹었다. 냄비에 납작 당면, 분모자, 청경채, 양배추, 양파, 대파, 마라탕소스, 물을 넣고 팔팔 끓였다. 처음 만들어보는 건데 조리법이 간단해서 좋았다. 건두부가 너무 비싸길래 건두부 대신 두부를 샀지만 야채만으로도 냄비가 꽉 차서 생략했다. 들어간 건 많지 않아도 꽤 그럴듯한 맛이 났다. 재료가 더 들어가고 간 조절을 잘했으면 파는 것만큼의 맛이 났을 것 같다. 아무래도 파는 게 조금 더 맛있다.


순서가 뒤죽박죽인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오디오북을 한 권 들었다. 유현준의 '어디에 살 것인가' 를 들었다. 양계장에서는 절대로 독수리가 태어날 수 없다는 둥,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고인돌을 크게 세우는 이유, 힙합가수들이 후드티를 입는 이유 등에 대해서 알려주시는데 꽤 재밌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사적인 실외공간이 거의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실외공간은 대부분 공적인 영역이다. 사람을 피해 갈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산 정도지만 요즘은 산에도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이 책은 완독본을 읽은 건 아니고 요약본으로 읽었는데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것 같다. 카페에 가기 전에 도서관에 잠깐 들러서 지난번에 대출했던 열 권의 요리책을 모두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빌렸다. 후데코라는 일본사람이 쓴 '사지 않는 생활' 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건물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욕실청소를 했다.


2023년 1월 9일 월요일


토요일부터 시작된 생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 퇴근 후 헬스는 생략했다. 생리 중에는 샤워장을 이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서 어제 먹고 남은 마라탕을 데워먹었다. 넣고 남은 분모자와 청경채와 두부를 추가해서 넣었다. 두부가 마라탕과 은근히 잘 어울렸다. 건두부 보다 오히려 수분 가득한 촉촉한 두부가 더 내 취향에 맞았다.


밥을 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간단히 가래떡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마라탕국물에 적셔 먹었다.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먹을 때는 맛있었다마는 같은 메뉴를 이틀 연속으로 먹었더니 살짝 물리는 느낌이라서 당분간은 마라탕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설거지를 하고,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책 '사지 않는 생활' 을 조금 읽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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