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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비센테' 를 납치 감금해 실험대상으로 쓰는 성형외과 의사 로버트, 그의 행동은 얼핏 보기에는 딸의 복수를 위해 비센테를 납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굳이 딸의 문제가 아니었어도 실험대상을 애초에 필요로 했었고 아무나 데려와서 생체실험을 할 수 없으니까 '저 놈은 내 딸을 죽인 나쁜 놈이니 이 정도는 해도 될 것 같다' 하고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비센테는 처음에는 자신의 목을 그으며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더이상 그러지 않았다. 아무래도 TV에서 우연히 접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동물방송과 요가방송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특히 요가를 통해 아무도 파괴할 수 없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며, 그곳을 탈출하고 더 나아가 그를 죽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버텨온 것 같다. TV에 나오는 요가강사는 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왠지 갑자기 요가 홍보를 해주는 영화 같은 느낌을 풍기는데, 뭐 아무래도 요가라는 것이 외모를 가다듬어 주는 운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을 강화시켜 주는 수련법의 일종이기도 하니까. 뭔가 이 영화의 맥락과 잘 맞는 것 같다.
요가는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병원에서도 감옥에서도.
요가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누구도 침범 못하고 파괴 못할 은신처가 존재하는데, 그곳에 가기 위해서 역사적인 수련법 요가가 있는 것이다.
요가를 하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 평온과 자유를 얻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수련을 해야 한다.
그럼 이루게 될 것이고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다.
비센테는 로버트의 실험에 의해 성과 외모를 모두 강제전환 당하고 '베라' 라는 새로운 여성으로 탄생하지만, 그는 그 베라라는 피부 속에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그 속에서 끊임없이 비센테를 지켜왔던 것 같다. 비센테는 더이상 비센테라고 불릴 수 없게 외모가 변해버렸지만, 과거에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그 옷을 통해 자신이 비센테라는 것을 증명해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옷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옷을 입고 그 옷에 따라 행동한다. 옷은 즉, 외모이자 피부이자 나를 드러내면서도 보호해 주는 것이다.
옷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옷가게에서 일하던 여자직원이 레즈비언인 것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성별 역시 옷과 피부처럼 외형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목이 내가 사는 피부인 이유는, 결국 그 피부라는 것이 나를 살게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나를 감싸고 있는 외면이 내 존재의 이유이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데 너무나도 필요하고 중요하고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속 모두가 피부 때문에 살고 죽는다.
비센테는 영화 초반부에 그 여자직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레즈비언인 여자직원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였던 비센테가 수년만에 여자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왠지 앞으로의 두 사람의 관계가 기대된다. 갑자기 성별이 달라진다고 혹은 입고 있던 옷이 달라진다고 해서 없던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아니지 충분히 생길 수 있지. 옷은 몸은 피부는 성별은 외모는 외형은 껍데기는 엄청 엄청 엄청나게 중요한 거니까.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범죄 희생양이 된 것에 대해 그 누구에게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다만 뒤늦게나마 사랑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하고 내심 바랄 뿐이다. 비센테가 저지른 폭력에 대한 더이상의 단죄는 글쎄, 노르마는 이미 죽고 없고 나는 모르겠다. 그냥 모든 인물들이 다 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