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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12. 2024

생후 90일 아기, 최애놀이는 비행기타기

어제저녁에 남편과 아기와 셋이서 홈플러스에 다녀왔다. 생후 100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식당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고 이제는 대형마트까지 가다니, 아기를 너무 외부 자극에 노출시키는 게 아닌가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아기랑 같이 하루종일 집에만 있기에는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아기가 순한 편이라 데리고 다닐 맛이 난다. 배가 고프거나 배가 아픈 게 아니면 웬만해서는 울지 않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데가 한정돼 있다. 집과 떨어진 먼 곳으로 놀러 가서 아기에게 소음, 인파 따위 말고, 풀, 나무, 꽃, 바다 등의 자연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아기가 아직 너무 어리고 날도 아직 많이 춥다.


요즘 아기는 밤새도록 안 자고 칭얼거리다가 새벽 늦게 잔다. 아기는 남편 출근 시간에 깨서 아침 맘마를 먹는다. 그리고 다시 잤다가 정오쯤에 깨서 점심 맘마를 먹는다. 그 이후로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가 남편 퇴근 시간에 깬다. 그때부터 거의 깨어있다. 수유텀은 평균적으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새벽 통잠 이전에 종종 1~2시간의 짧은 간격으로 수유하기도 한다. 어제는 아기가 어찌나 잠을 안 자던지,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잤다. 아기가 새벽에 안 자는 데는 사실 내 영향도 크다. 아기가 안 자다 보니,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 자꾸 아기를 데리고 티비 앞에 앉아있게 되고, 미디어에 노출된 아기가 흥분해서 제때 잠을 못 자는 것이다.


아기가 곧바로 잠이 들지 않더라도 아기가 잘 수 있게 수면 환경을 조성해 놓고 잠들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아기가 잠들 때까지 티비 앞에 앉아서 나는 나대로 티비를 보고, 아기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면 그제야 아기를 침대에 눕히는 것이다. 하지만 잠이 완전히 들지 않은 상태에서 바닥에 눕히면 계속 칭얼대고 울기 때문에 결국 안아서 재울 수밖에 없고, 안아서 재우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기에는 너무 지루해서 결국 티비 앞에 앉아있게 되고, 여러 가지로 악순환이다. 사실 이것도 결국 아기가 밤에 잠을 안 자다 보니까 만들어진 습관이 아니던가.


아무튼 새벽에 안 자고 낮에 자고, 계속 이렇게 키워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아직까지는 출퇴근을 안 하고 집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크던 성장에 문제가 없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중에 어린이집에 다닐 때쯤에는 교정되지 않을까. 설마 그때까지 계속 이런 수면패턴으로 살고 있지는 않겠지. 아니 그렇게까지 길게 봐야 하나.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100일쯤 되면 밤에 잠을 잘 잔다고 하니 조만간이 아닐까. 그런데 벌써 생후 90일이다.


일단 나부터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기를 데리고 티비 앞으로 가는 습관을 없애야 하고, 또 놀아주는 것도 적당히 해야 할 것 같다. 아기가 밤에 잠을 안 잔다고 해서 그 시간에 놀아주는 것도 아기가 졸려하는데도 잠을 못 자고 깨버리는데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남자아이들은 몸을 쓰고,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가.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특히 비행기를 태워주면 아기가 꺄르륵 대면서 굉장히 좋아한다. 아기가 좋아하니까 나도 덩달아 좋아서, 거의 잠이 달아나게 하는 수준으로 놀아줘 버린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은 점점 뒤로 밀려나 버린다.


뭐 어쨌든 지금은 아기가 아주 잘 자고 있다. 아기는 너무, 진짜 너무 귀엽다. 하지만 아기가 귀여운 것과 별개로, 하루종일 말 못 하는 아기와 함께 있다 보면 뭔가 지치고 지루하고 외롭고, 뭔가 싱숭생숭, 복잡하다. 아기는 정말 금방 큰다. 우리 아기는 아직 여전히 아기지만, 진짜 더 아기였던 때도 있다. 그 시기의 아기 사진을 보면 아기가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작다. 아기에게 잘해주고 싶다. 이 시기를 대충 흘려보내면 후회할 것 같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한동안 멘탈 관리가 잘 안 됐던 것 같다. 아무래도 수면 부족 때문인 것 같다. 한 며칠 아기 따라서 계속 잤더니, 상태가 호전된 것 같다.


나는 직장도 안 나가고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상태인데, 따로 연락하는 친구도 없고, 브런치에 종종 일기 쓰는 것 외에는 다른 SNS나 커뮤니티 같은 건 일절 안 하고 있다. 브런치는 좀 폐쇄적인 것 같다. 여기서 아무리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적는다고 한들, 소통이랄 게 있나. 굉장히 일방적이다.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아주 약간이나마 해소는 된다. 현재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인데 남편과 사이가 틀어지면 뭔가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 같다. 맨날 식욕 없다고 하루종일 쫄쫄 굶고 저녁 늦게 1일 1식만 하다가, 오랜만에 오전 중에 밥을 챙겨 먹었다. 밥도 먹고, 일기도 썼고, 이제 아기 깨기 전에 좀 씻어야겠다. 조만간 깨서 밥 달라고 할 것 같다. 깨기 전에 얼른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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