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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순이 Dec 01. 2023

친구가 없어도 너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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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한 번꼴로 연락이 오는 지인들이 있다. 친구 없는 내게 먼저 연락을 해오고 내 편의에 맞게 약속 시간과 장소 등을 모두 배려해 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마워할 법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지인들의 연락이 딱히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연락이 온다는 건 만나자는 뜻인데, 그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연락이 달갑지 않다.


왜일까 생각해 봤다. 일단 만나면 재미가 없다. 만나봐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게 고작인데, 그들과 그렇게 돈 쓰고 노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걸 이미 몇 차례 경험해 봤기 때문에, 다음 만남에서도 결과가 뻔할 것 같아서 더 이상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재미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일단 관심이 가지 않는다.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건 궁금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인들이 뭘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즉 안부가 궁금하지가 않다. 그들의 생각, 감정 따위 또한 궁금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건 또 왜 그럴까. 그들의 안부와 생각과 감정 등이 왜 궁금하지가 않을까. 뻔하기 때문이다. 만나서 나눌 대화소재와, 돌아오는 대답과, 거기에 따른 반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 등이 모두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다 파악되었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으며 같이 할 일도 딱히 없다. 그래서 궁금하지가 않다. 기대되는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뻔해도, 새롭지 않아도, 경우에 따라서 관심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가족, 친구, 애인, 동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면 이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공유하면서 잘도 관계 유지를 해나가지 않나. 이 경우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결국 호감의 문제다. 호감이 가지 않으니 관심도 안 가고 궁금하지도 않은 것이다. 나는 그냥 그들에게서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은 것이다. 또 파고 들어가 보자면 그래서 나는 그들을 왜 좋아하지 않을까.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해 보자.


일상에 접점이 없어서. 내가 그들에게 줄 게 없어서 혹은 주고 싶은 것이 없어서. 그들이 나에게서 받을 게 없어서. 이 관계의 필요성이 딱히 느껴지지 않아서. (일부 지인의 경우) 가치관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사람 자체가 발전이 없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흥미로운 공통소재가 없어서. 결국 재미가 없어서 호감이 가지 않고, 호감이 가지 않으니까 역시나 재미가 없다.


아무튼 결론은, 그래서 관심이 가지 않아서 궁금하지 않은 그들을 만나면 할 말이 없다. 할 말은 없는데 어쨌든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억지로 아무 말이나 쥐어짜 내야 하는데 내가 딱히 대화 자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이게 도무지 재미있으래야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들이 딱히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내 신상과 생각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불편함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내가 했던 말이 어딘가에서 와전되어 다시 내게로 화살이 되어서 돌아와서는 내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이미 자기네들끼리는 내 뒷담화를 주고받다가 내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만나면서 일어난 자잘한 사건 사고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런 가능성들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내가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흔하게 느끼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꼭 이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쯤 되면 이 관계에 대해서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안 만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연락이 오면 약간의 고민을 한 후 만남 요청을 수락하고 또 위와 같은 감정들을 반복한다.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이유에서 일까. 우선 사람이 아쉬운 마음과 거절에 대한 불편함이 크다. 그만큼 시간을 맞춰준다는데 빠질 핑곗거리가 없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만나기 싫다는 의사를 밝히면 서로 좋지 않게 돌아설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들과 내가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조용히 멀어지면 멀어졌지 굳이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 실컷 거부하다가 나중에 내가 사람이 아쉬울 때 먼저 연락한다고 한들 퍽이나 좋은 감정으로 내 연락을 받아주겠다.


그리고 가뜩이나 만날 사람도 없는데 나에게 먼저 연락 오는 사람을 거부하고 싶지 않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면서 거부하다가는 언젠가는 결국 완전히 고립되어 버릴 것 같다. 사람이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때로는 그냥 누구든 만나서 돈 쓰고 밥 사 먹고 고기 사 먹고 술 마시고 노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지인들과 나는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약간은 안면이 있고 얄팍하게나마 정이 있는 사이다. 이 관계의 장점을 찾아서 적절하게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인들을 만날까 말까 고민을 약간 했는데 결국 만나는 쪽으로 결정했다. 어쩌면 이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일 것이고, 사람이 아쉬운 마음에 그저 만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외로울 테니까. 이유가 뭐가 됐든 이왕 만나는 거 어떻게든 좋은 시간을 만들어봐야겠다.


사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불편하다. 아무래도 이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이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먼저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과 잘 지내며 이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해 내고자 어떻게든 노력해 봐야겠다. 물론 이런 노력을 이상한 사람에게 들이게 되면 곤란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지인들은 최소한 상식적인 사람들이라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지인들을 만나거든 적절하게 예의를 갖추고 적절하게 말을 아끼며 적절하게 관계 좋은 유지를 해보도록 시도해 봐야겠다. 계속 만나다보면 정이 더 붙어서 호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지난달에 해외출장으로 인한 남자친구의 부재가 내 일상에 상당히 큰 공백을 만들어냈다. 친구가 없음이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게는 친구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만나야겠다. 일단은. 그게 누가 됐거나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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