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어려서부터 이런 특별한 날은 괜스레 심술이 났다. 365일 매일을 행복하게 지내면 되는데, 무슨 무슨 날이라고 하는 날짜는 왠지 다른 날짜에 비해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미웠다. 그래서, 이런 날의 이벤트는 잘하지 않는다. 다행히 SJ도 이런 것에 무딘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챙겼던 2가지 날짜가 있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였다. 신입사원 때는 여자 선배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직급이 높아지고 팀장이 되면서는 팀원들 관리 차원에서 필요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만 주는 것은 내심 미안해서 퇴근길에 작은 케이크나 초콜릿 같은 것을 SJ에게 주었다. 다른 사람보다 당신을 더 생각한다는 최소한의 마음과 최대한의 진정성을 담아.
하지만, 발리에서의 11월 11일은 내가 늘 원했던 평범한 날 중 하나였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11월 11일을 만들었다.
오늘 아침 식사는 밖에서 사 온 음식들로 먹기로 했다. 매일 아침 햇반이나 빵, 시리얼을 먹는 것도 벌써 지겨워졌다. SJ는 심한 길치인데(길을 묻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알려주면 거의 대부분 알려준 반대쪽이 정답이다.) 이제 사누르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생각과 혼자만의 시간도 보낼 겸 다녀오라고 했다. 나간 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초조하던 찰나 등장한 SJ.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늦게 연다고 한다. 잠시나마 아이 둘을 데리고 찾으러 나가야 할지, 경찰서가 어디 있는지 고민했다.
TIP 1. 대부분의 발리 식당은 주말에 늦게 오픈한다. 프랜차이즈나 큰 식당은 우리나라처럼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가 간 식당들은 작게 운영하는 곳들이 많았기 때문에, 영업시간이 유동적이다.
[엄마 기다리며 책 읽어주는 자상한 오빠]
며칠 동안 수영만 한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에 캐리어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지난여름 옥상에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았던 물풍선. 내 기억으로 이걸 챙길 때 SJ는 분명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루함을 극복해줄 열쇠라 생각하고 모르는 척 짐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하지만,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왜 SJ가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영장 옆 벽에 물풍선을 던졌는데, 터진 풍선 조각을 치우는 게 일이다. 치우거나 말거나 했던 우리 집이 아니라, 잠깐 빌려 쓰는 우리 집이기에 물풍선 놀이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TIP 2. 아이들이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꼭 한두 개 챙긴다. 그 외에 아이들을 위한 깜짝 놀이도 준비하면 좋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벽에 신나게 던졌던 물풍선]
처음에는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들도 며칠이 지나자 암 튜브를 끼고 잘도 허우적거린다. 왠지 불편해 보이는 구명조끼에 비해 암 튜브는 활동하기도 편하고, 입고 벗기도 좋다. 그렇게 하루에 2~3시간 수영은 필수 일정이다.
TIP 3. 암 튜브는 팔과 몸통이 분리될 수 있는 제품이 좋다. 아이들의 수영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면, 몸통을 빼고 팔 튜브로만 사용 가능하다.
[정말 유용했던 암 튜브와 물놀이 장난감]
발리에 와서 마트를 거의 매일 가는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로 특별히 갈 곳이 없었는데 마트는 재미있는 물건이 많았고, 두 번째로 차 없이 구매한 물건을 등에 매거나 손에 들고 걸어와야 하니 살 수 있는 물품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착한 첫날 지인이 여러 정보를 알려주셨는데 그중 마트가 있었다. '하르디스'라고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Hardys라는 조금 큰 몰이었다. 그래, 오늘은 우리의 행동반경을 조금 더 넓혀 여길 가보자.
Hardys mall을 목적지로 Gojek을(스쿠터 택시) 불렀다. 도착한 Hardys mall 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시골의 작은 마트 느낌이다. 그렇지만,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주차장도 넓고, 차도 번쩍번쩍하며, 들어가는 사람들의 인상착의도 왠지 다르다. 특히 입구에서는 철저한 보안 검사까지 하고 있다!(갑자기 인도 여행 중 맥도널드 입구에서 총을 들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보안 검사를 받는 입구에 가방을 맡기고 번호표를 받아가야 한다.
1층은 슈퍼, 서점, 화장품, 베이커리가 있고, 2층에는 옷, 장난감, 장신구, 인테리어 소품 등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먹을 것들이었지만, 발리 스타일의 아이들 옷도 하나씩 계산한다.
TIP 4. 같은 물건이라도 마트별로 가격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큰 마트일수록 진열되는 상품도 다양하고, 심지어 저렴할 수도 있다.
[Hardys Mall 쇼핑]
저녁은 먹어야 하고, 역시나 별다른 계획이 없던 우리는 다시 구글맵으로 주변을 열심히 검색했다. 다행히 식당을 찾는 감각이 발달한 SJ가 결정한 곳은, Hardys mall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평이 좋은 Warung Coconut Tree이다. 아이들이 발리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 중 하나는 식사 때마다 마실 수 있는 과일주스였다. 한국의 식당이라면 오렌지맛 탄산음료 정도만 있기에 아직 탄산음료를 먹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SJ와 나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발리에서는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1인 1 음료다.
쇼핑 후에는 역시 먹어야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지, 아이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밥을 먹는다. 결국 큰아이는 접시까지 들고 먹는데, 음식을 더 시켜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다.
TIP 5. 식당에서는 과일을 직접 갈아 주스로 판매한다. 설탕이나 시럽을 조금 넣고 싶다면 주문 전에 꼭 이야기하자.
시간이 흘러 우리가 이야기할 '오늘'이 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 크고 우리가 늙어 가는 것도 크게 억울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