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Oct 21. 2023

[다시 가고 싶은 이유]
근면성실한 어른이 되는 법

담대하게 커피워크


[다시 가고 싶은 이유]

근면성실한 어른이 되는 법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어린이집에 살았다. 어린이집이 우리 집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싶은 분들은 일반적으로 어린이집 하면 떠올릴 법한 단독 건물 이미지를 머리에서 지우는 게 편할 것이다. 세상에는 가정어린이집이라는 것도 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개인이 가정이나 그에 준하는 곳에 설치 ・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말한다. 영유아 5인 이상 20인 이하를 보육할 수 있는 소규모의 어린이집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 1층만 쭉 훑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집은 전북 익산시 주현동 한양아파트에 위치한 ‘아가페 어린이집’이었다. 



어린이집에 사는 삶이 상상이 되는가? 아이들이 등원해서 놀고 먹고 배우고 자야 하는 공간에 어떻게 살림이 들어설 수 있을까. 울음과 웃음과 우다다다와 짝짜꿍과 똥과 오줌이 어우러지는 시간에 그 집 식구들은 대체 뭘 한단 말인가. 걱정 안 하셔도 된다. 거기에 없으니까. 사라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늦어도 등원 시간 30분 전까지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증발해 버리는 사람들. 밤사이 축적된 생활감은 일체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지워진다. 창고로, 수납장으로, 신발장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리는 물건들과 함께 우리 가족도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아빠는 일하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위해 어렵게 마련한 임시 거처로. 그럼 방학을 맞아 학교 갈 일도 없는 형과 나는? 그렇게 뜻밖의 도서관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억울했다. 방학인데 늦잠도 못 자다니. 늦잠은 무슨, 주 5일 내내 아침 8시 50분까지 마한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거의 떠먹여 주다시피 한 뭇국을 흡입한 형제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문을 나선다. 15분 정도 걷다 보면 지겹디지겨운 외관의 도서관이 나왔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디지털자료실 앞에 선 나는 얼른 9시 정각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권태로운 표정의 직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쾌적한 컴퓨터실. 내 아이디와 아빠 아이디까지 합쳐 3시간의 이용 예약을 마치고 나면 이제 쇼타임이다. 엄연히 도서관 시설인 만큼 게임은 할 수 없었지만 알 바 아니었다. 원래 나는 게임을 하지 않는 보기 드문 중딩이었고, 웹 서핑만으로 네다섯 시간은 그냥 흘려보내는 상당히 보기 드문 중딩이었다. 



돌아보면 나름대로 일종의 미라클 모닝을 실천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퍼질러 자다 잔소리 폭격과 등짝 스매싱에 못 이겨 억지로 밥을 먹고 PC방이나 운동장으로 달려가 저녁 식사 직전에 귀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PC방 대신 도서관으로 향하는 실로 모범적인 방학을 보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어른들의 하루의 시작을 함께 했던 것이다. 졸리고 피곤하고 이른 시간부터 강제로 나가야 하는 우리 집 현실을 원망했던 건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덕분에 처음으로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다들 참 부지런하게 사는구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과가 지겹고 힘들어도, 아침만 되면 똑같은 풍경 속으로 걸어가는 게 어른인가 봐.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애새끼다. 아가페 어린이집과 마한도서관이 합심으로 키운 건강한 생활습관은 다 어디 간 걸까.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차리고 아이들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던 엄마를 보고서도 배운 게 하나도 없다니. 아침이 오면 똑같은 풍경 속으로 걸어가는 단순해 보였던 일상이 이 30대 초반의 털보남에겐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근면성실한 어른 되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것도 못 버텨, 그렇다고 하루키처럼 스스로 만든 루틴에 따라 일정량의 운동과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도 아냐, 좋아하는 것에 미친듯이 몰입하며 끝장을 보고야 마는 오타쿠 스타일도 못 돼… 언제까지 이렇게 어중간하고 한심하게 살 것인지에 관해서는 나도 나대로 답답한 부분이다. 만화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나태지옥’이 실재한다면 게이트 앞에 비치된 웨이팅 리스트에서 내 이름 석자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장사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던 데는 이런 이유도 한 몫 했을 거라 생각한다.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나 분주하게 오픈 준비를 하는 가게 사장님들을 보고 있으면 나와는 아예 다른 종족 같다고 여겼으니까. 응암동의 카페 ‘담대하게 커피워크’를 운영하는 P를 보는 마음이 특히 그랬다. P는 보통 6시에 기상한다. 가게 문은 10시에 열지만 그 전까지 해야할 일이 많다. 직접 볶은 원두를 제공하는 로스터리 카페인 만큼 로스팅 작업은 오전의 가장 중요한 일과다. 작은 통돌이 로스터기에 생두를 넣고 천천히 돌려가며 볶는다. 원하는 향과 맛을 위해 섬세하게 불을 조절해가며 집중력을 쏟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로스팅을 마친 커피를 테스트하고 실내 청소까지 마무리하면 간단한 아침밥을 먹기에도 빠듯하니, 9시에 오픈하던 시기에는 얼마나 더 서둘러야 했을지 감이 안 잡힌다. 이미 오랫동안 패턴으로 굳어져 휴무일에도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진다는 그에게, 나는 8시에만 일어나도 ‘오늘은 해냈어!’ 쾌재를 부른다는 사실을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담대하게 커피워크는 P가 혼자 운영하는 카페다. 일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는 소리는 손님이 없을 땐 가게 안에 정말 홀로 남는다는 뜻이 된다. 그때부터 그는 기다릴 것이다. 언제 저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 이들을. 6평 남짓의 아담한 공간에서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상상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요한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모습이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지는가? 손님 자격으로 앉아 있다면 그럴 수 있다. 주인 입장이어도 뭐 한두 번 정도라면 괜찮을 테다. 문제는 은평구 응암동은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가 아니라는 것. 성수동이나 한남동, 망원동으로 대표되는 ‘핫플레이스'나 강남역과 광화문 같은 오피스 상권과는 거리가 먼 서울 외곽의 오래된 주거 밀집 지역이다. 주변에 힙하고 트렌디한 매장이 다수 포진해 있지 않으니 근처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올 확률도 적거니와, 여러 카페들을 묶어 이른바 ‘카페투어’를 다니는 이들의 코스에 포함되기도 쉽지 않다. 담대하게 커피워크 한 곳만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건 대체재가 널리고 널린 이 시장에서 불가피하게 높은 문턱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낭만의 자리는 고독에게 위협받기 마련이다. 고독은 머지 않아 불안과 조우하고, 불안은 금세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P도 많이 초조했을까. 자꾸만 시계와 달력을 보고 매출 그래프를 거듭 살펴보며 더 자주 계산기를 두드렸을까. 그러다 ‘오늘도 재료 소진으로 조기 마감 합니다'라는 내용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라도 발견하는 날엔 땅으로 푹푹 꺼지는 한숨만 뱉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기분에 쉽게 굴복되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다 때려치우겠다며 밤마다 숨죽여 울었을 텐데. 물론 그 역시 울었다. 악몽 같은 팬데믹을 지나는 동안 자신의 냉혹한 현재를 직시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괜히 쓸데없이 지난날의 선택과 결정을 되돌아보거나 삶의 기준을 내가 아닌 바깥으로 두게 되는 순간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옛말에 결국 다 이름 따라 간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을 P는 그야말로 담대하게 통과하는 중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커피와 함께,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면서. 실례가 아니라면 담대하게라는 수식어 뒤에 감히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순수하게’. 예전에 그가 쓴 적이 있다. 



“심란할 때나 행복할 때나 커피를 들여다 본다.” 



먼 이국에서 건너온 커피 열매를 본래의 향과 맛을 온전히 살릴 수 있도록 천천히 볶는다. 정성으로 볶은 커피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수천 번도 더 만진 그라인더의 세팅을 조절한다. 최적의 온도로 맞춘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며 향을 맡은 뒤, 다시 물을 부어가며 차분하게 추출을 마친다. 일종의 숭고한 의식처럼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P가 커피라는 존재를 얼마나 아끼고 또 조심스러워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기어이 그를 다시 움직이는 건 고민과 불안 틈에서도 희석되지 않는 경외의 마음이라고.



옆에서 지켜본 그는 영락없는 ‘덕후’인데 (이게 더 실례되는 표현인가?) 커피를 향한 마음은 소년만화와 아스날 FC와 레고를 대하는 그것과는 비슷한 듯 다르게 보인다. 커피 앞에서는 단순한 호감을 넘어 단단한 고집과 신념을 세운다.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책임감을 갖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꾀부리지 않고, 열렬히 사랑하는 만큼 한결같은 결과를 내는 데 정진하는 것. 매출이 떨어져도, 부정적인 반응을 목격해도, 때로는 자기 확신조차 흔들리더라도. 묵묵하고 담대하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신념과 책임감이야말로 새벽마다 피로와 걱정을 떨쳐내고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하는 동력일 것이다. 근면성실한 어른 되는 게 제일 어려운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되뇌인다.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면 더 많이 사랑하자. 관심 있고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들을 더 순수하게 사랑해보는 거야. 심란할 때나 행복할 때나 별 생각 없이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성실을 밀어붙일 신념과 책임감이 자리 잡을 때까지.



진심은 다 전해지는 법이라고, P의 정직과 뚝심을 어디서들 그렇게 알아보고 오는 것인지 이 작은 카페는 느리지만 탄탄하게 단골층을 쌓아가는 중이다. 슬리퍼를 끌고 슬렁슬렁 걸어오는 동네 주민들은 처음에는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들어 왔다가 이제는 주기적으로 바뀌는 원두와의 새로운 만남을 반가워 한다. 오직 담대하게 커피워크의 섬세한 드립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작정하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 틈에 자연스럽게 끼어든 나는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훅 들이킨다. 먼저 들어오는 달콤한 과일향 한 번, 다음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초콜릿 뉘앙스 한 번.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연주곡을 닮은 한 잔을 음미하는 시간이 즐겁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다 마실 테다. 잔을 돌려준 뒤, 인사를 나누고 카페를 나오면 나도 뭔가 달라질 거라 믿으니까. P의 성실한 하루하루가 가득 담긴 커피가 내게 근거 없는 기대를 선물한다. 좋아하는 게 많은 나는 오늘 게을렀더라도 내일은 부지런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담대하게 커피워크

서울 은평구 응암로21길 17 1층 커피숍

이전 05화 [다시 가고 싶은 이유] 가장 만만한 식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