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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n 15. 2024

좋은 물건 고르는 법, 박찬용

남들의 사정과 나의 기준을 이해하는 일



개그맨 유세윤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딱 8글자가 적혀 있다. 


‘아구럴수도있겠당’


나는 저 말이 내가 평생 가져가야 할 삶의 자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사건 앞에서 ‘구럴 수도 있는’ 가능성을 한 번이라도 짚고 넘어가는 일. 내가 모르면 틀린 거라 5초 만에 단정 짓는 멍청이들 틈에서 분명 내가 모르는 이유가 존재할 거라 여기고 판단을 미룰 줄 아는 것. 그 인내심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멍청이들이 알아서 자멸하는 동안 손쉽게 편견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훌쩍 넘어서, 세상 도처에 널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러 간다.



박찬용 작가의 <좋은 물건 고르는 법>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고 느꼈다. 초점을 물건에 맞췄을 뿐이다. 이 물건은 대형마트 진열대에, 한남동 편집 매장에, 네이버 쇼핑 랭킹 최상단에 자리 잡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가? 아이디어-논의-테스트-생산-유통-홍보-판매 등등의 지난한 절차 주변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고민과 갈등과 변심과 합의가 얽혀 있다. 거기에는 업계 관행이나 공정 시스템의 고도화, 제작 단가 상승과 마케팅 전략의 변화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붙어 있고. 이 복잡성을 개무시한 채 ‘알빠노’를 시전하며 가성비나 가심비만 부르짖는 건 공허하다. 소비라는 게 원래 사람을 공허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지만 조금이나마 개운한 소비를 하고 싶다면 물건을 둘러싼 저마다의 사정과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고 인정합시다, 하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물론 그들의 사정만큼 중요한 건 나의 사정. 남 사정만 봐주다가 구매의 목적과 의도에 반하는 선택을 저지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테니까. 내 일상의 환경과 생활 습관, 크고 작은 원칙을 토대로 쌓아나가는 소비는 이따금 당혹감을 안겨줄지언정 깊은 허무함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소외되지 않는 선택과 경험이 쌓이면 힘이 생긴다. 유행과 트렌드와 공구와 큐레이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요컨대 남들의 사정과 나의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소비생활의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해, 관찰, 기준, 태도…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은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얘는 좋고 쟤는 나쁘고 같은 소리만 주구장창 외쳐대는 요즘 같은 때에 참으로 귀한 키워드를 던져주는 책이다. 친숙한 물건과 소비생활을 다루니 읽는데 어려울 거 하나 없고,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농담 덕에 킬킬대며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특히 ‘취향’이라는 정체 모를 방패 아래 숨어 내 선택의 이유와 의도를 설명하길 피했던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내가 당사자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좋은 물건 고르는 법

저자 박찬용

출판사 유유

https://m.yes24.com/Goods/Detail/12410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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